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인 정진후 후보였다. 전교조는 대주주로서 <우리교육>사태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나 당시 정진후 집행부는 사실상 사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해고와 사직으로 이어진 <우리교육> 사태에 노동자들의 피해를 방조했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지난 3월29일자 한겨레 칼럼에 당시 우리교육 기획위원이었던 이계삼 선생은 “(정진후 후보가) 20년 역사의 월간 <우리교육>이 졸지에 납품을 위해 연명하는 무가지로 전환되게 하는 일을 주도했고, 끝내 구조조정으로 모든 기자가 사표를 쓰고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침묵과 묵인으로써 방조했다”며 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바도 있다.
이 글은 당시 우리교육 기자였던 사람이 <참세상>에 투고한 글이다. 노동자들이 당시 상황을 어떻게 보는 지 알 수 있는 글이라 게재한다. 성폭력 2차가해자들 면죄부 논란, 술자리 난동에 이어 노동조합이 대주주로 있었던 교육전문지에서 벌어졌던 반노동자적인 행태에 대해 정진후 후보 측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우리교육 2010년 2월호 여는글 |
지난 2010년, 월간 우리교육 2월호 ‘여는 글’ 페이지가 공란으로 인쇄됐다. ‘여는 글’은 편집장의 칼럼이 수록돼야 할 자리였다. 인쇄 사고가 아니었다. 우리교육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하고자 기자들이 결단한 일이었다.
전교조를 대주주로 둔 우리교육, 구조조정을 단행하다
우리교육은 지난 90년,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만든 교육월간지다. 이후 출판영역까지 그 사업을 확장시켰고, 당시 일반 출판과 월간지 사업 두 축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였다. 우리교육의 대주주는 그 이름도 빛나는 ‘전국교직원조동조합’이다. 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정진후였다.
전교조를 대주주로 둔 우리교육은 2009년 말, 월간지 적자를 이유로 기자들과 교육연수사업 담당자, 일부 관리직 노동자들을 편집자로 업무전환하는 구조조정 안을 추진했다. 월간지 기자들은 이 안에 반대하며, 구조조정 대신 자진 임금삭감, 수당 반납, 연차 사용 의무화 등을 제안하고 함께 월간지 생존 활로를 모색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운영상의 책임을 물어 편집부서장을 사직 처리했다.
우리교육 노조는 이를 월간지 편집권에 대한 침해이자 매체 폐간 수순 밟기로 받아들였다. 전교조가 주최하는 참교육실천대회(참실) 연수장에 찾아가 피켓을 들었고, 끝내는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싸웠다.
▲ 우리교육 노동조합의 사내선전전 |
참실 연수장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대주주인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다반사였다. 기자들은 본래 피켓팅만을 준비해갔으나 교사들의 요구로 서명을 받기로 했다. 이날 400여 명의 전교조 교사들이 우리교육 구조조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전교조 조합원게시판과 (주)우리교육 홈페이지에 우리교육 노조를 지지하는 교사들의 글이 올라왔고, 일부 전교조 교사들은 위원장 앞으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기자들이 참실에서 피켓팅을 할 당시 이를 바라보던 정 위원장의 기이하게 일그러지던 얼굴이 떠오른다.
정진후, 사측 손 들어주자 사장은 항복 문서 요구
정진후 전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지도부는 이런 ‘잡음’을 시종일관 불편해 했다. 당시 이계삼, 박복선 등 월간 우리교육 기획위원들은 우리교육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자 사측과 전교조, 노조에 ‘권고안’을 만들어 전달한 바 있다. 기획위원들은 우리교육 사측에는 “노조 측과 대화에 나설 것”을, 노조 측에는 “퇴사의 행렬을 멈출 것”을 권했다. 이들은 또 대주주인 전교조에 문제 해결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 전교조 본부에 “‘우리교육 사태’가 지금까지 이르게 된 책임을 물어 신명철 대표이사에게 퇴진을 권고할 것”을 요구하며 위원장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는 가볍게 무시됐다. 당시 김 모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우리교육노조 위원장과의 통화에서 “우리교육 기획위원이 전교조에 ‘권고’를 하는 게 맞느냐”고 힐난조로 말했다. 어찌 일개 잡지 기획위원 따위가 전교조 위원장에게 ‘권고’를 하느냐는 의미였다. 면담 요청도 거부했다. 이는 정진후 위원장을 위시한 전교조 집행부의 전반적인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 참실 선전전 |
이후 정진후 위원장은 몇몇 기획위원들에게 개인적인 서신을 통해 우리교육 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밝혔다. 이 서신에서 정 위원장은 “<우리교육>의 누구(사직 처리된 편집장. 당시 노조는 편집장 사직처리가 부당하다며 원직복직을 요구했다)는 그만두어서는 안 되고 누구(대표이사)는 즉각 사임시켜야 된다는 내용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구조조정을 단행한 대표이사를 불신임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사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 위원장은, 기자들이 사측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의 업무보고 요구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며 “회사의 운영과 관련해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 노사갈등으로 월간지 발간이 지연되자 우리교육 대표이사를 불러들여 “신뢰할 만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우리교육 대표이사는 기자들에게 월간지를 정상적으로 발간할 것을 약속하라며 이 같은 내용의 확인서에 기자들이 일일이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마치 기자들의 불성실로 인해 월간지 발간이 지연됐다는 듯, 그래서 ‘성실 의무 이행 각서’를 받아내듯 말이다.
노조 파업으로 MBC뉴스, 무한도전 등이 결방되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기자회장을 해임한 김재철 사장에겐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먼저 ‘성실 방송 제작 확인서’ 서명부터 요구한 꼴이다.
정진후와 대표이사가 요구한 확인서는 기자들에게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스스로 봉인하겠다는 일종의 항복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모멸감을 느낀 기자 몇은 항의성 사직서를 제출했고,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 사표를 수리했다.
2010년 2월에서 5월 사이, 30명 남짓한 작은 사업장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세 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안을 받았다. 그리고 아홉 명의 노동자가 제 손으로 사직서를 썼다. 노조는 와해됐다. 출판업계에 세 개 뿐이던 노조 중 하나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 우리교육 2010년 2월호 |
“정진후 씨, 우리교육 노동자들 좀 지지해주지 그랬어”
여담이지만, 우리교육 노조가 2009년 12월부터 2010년 5월까지 근 6개월을 싸우면서, 사장 해임을 비롯한 대책 마련을 촉구할 때 성명이나 논평은 고사하고 성의 있는 답변 한 번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전교조는 2010년 5월 4일 한 편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MBC노조 파업 정당하다. 김재철은 퇴진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이었다.
전교조는 이 성명서에서 “MBC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전 사원의 단결된 힘은 정권과 김재철의 의도를 정면으로 막아내고 있다”며 “전교조는 MBC노동조합의 총파업을 지지하며,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을 철회해 달라는 제 노동자들, 자본에 휩쓸리지 않는 튼튼한 교육정론지를 갖고 싶다는 자기 조합원들의 가까운 열망은 들리지 않으면서 “공정방송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멀리에서도 들렸는가 보다.
전교조의 ‘지지’를 받지 못한 우리교육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해 3월 ‘월간’ 우리교육은 20주년 특별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그리고 지난해 (주)우리교육은 몇 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최근 정진후에 대한 통합진보당 비례 후보 공천에 말이 많다. 민주노총 성폭행 사건의 2차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책임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그를 열렬히 변호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의 ‘업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들은 시국선언과 민노당 후원이다. 사실상 자신들 소유인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침묵으로 동조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입막음에 일조한 업적과 비교해 보자. 어느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까.
이런 사람이 통합진보당에서 어떤 노동자, 어떤 소수자를 대표할 수 있을까. 혹여 그가 국회의원이 되어, 어디선가 쌍용차 구조조정에 대해, 그 노동자들의 절망어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현실은 그저 차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