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하에서 우리 모두의 시계는 어쩌면 2009년 1월 20일 새벽 7시경에 멈춰서 있습니다. 함께 연대했던 <작가선언 6.9>의 선언처럼 용산참사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이 있지 않는 한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 역일 것”입니다.
다큐 <두 개의 문>은 잊혀 질 수 없는 그 날의 기억을 냉정한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습니다. 차분하지만 진실을 향한 집요한 눈길은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어떤 극영화도 이렇듯 차갑고 뜨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미스터리 물도 이보다 답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공포물도 이보다 긴박하고 무섭진 않을 것입니다. 미친 늑대들 같은 용역깡패들이 달려들고, 테러 진압대인 경찰특공대들이 몰려오고, 헬기가 날고, 물대포가 나는 속에서 조그만 망루에 갇힌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집단 몰이를 당하는 어떤 짐승들보다 그들은 더 처참했습니다. 진실은 이렇게 간단한데 최초로 공개되는 법정의 물음들은 의미 없었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보고, 직접 경험했던 국가폭력 중 가장 큰 규모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대추리 때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었습니다. 물론 이 때는 워낙 까발리고 나온 국가폭력의 실체가 컸기에 1만 5천여 명의 전경, 군 헬기 등 현역군 일부에 눌려, 수 백명 규모의 용역 깡패들과 공무원들은 무슨 귀여운 마스코트 인형들 같았습니다.
가장 잔인하고 폭압적이던 경우는 용산 때였습니다. 이때는 아예 경찰특공대들과 용역깡패들이 드러내놓고 공동작전을 펼쳤습니다. 용역들이 문을 따면 경찰들이 들어가고, 밖에서는 컨테이너로 경찰들이 오르고, 안에서는 용역들이 계단을 치고 오르는 식이었죠.
가장 밀집된 형태는 기륭전자 공장 앞에서 보았습니다. 2008년 10월말 마지막 망루를 쌓고 사람들이 올라갈 때였습니다. 망루 하나를 놓고 지키려는 사람은 한 무리였는데 덮치는 무리들은 세겹이었습니다. 회사 구사대까지 포함해 경찰과 용역깡패들이 무슨 더블버거마냥 압착해 들어왔습니다. 망루 곁에 있는 촛불 시민들과 연대온 사람들을 경찰이 뜯어내어 공장 안으로 넣어주면 후미진 공장 담벼락 밑으로 먹이를 받은 용역들이 끌고가 무지막지하게 짓밟아 놓았습니다.
여기에 ‘용역검찰’과 편파적인 사법부까지 곁들여지면 정말이지 환상적인 민중탄압 구조의 틀이 완성됩니다. 대추리에서도, 기륭에서도, 용산에서도, 금번의 한진에서도 단 한명의 경찰도, 용역깡패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물리력도 없이 맨 몸으로 저항했던 사람들. 이웃을 돕고자 한 사람들만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됐습니다. ‘특수공무방해 치상’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런 우리 시대의 폭력의 A,B,C,D가 <두 개의 문> 다큐를 보다보니 순차적으로 다시 떠올라 잠시 숨을 골라야 하기도 했습니다.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살아남아 이 잔인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용산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용산이라는 시대의 트라우마에서 이제 잠시라도 놓여나고 싶을 때, 계속해서 그 진실규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홍지유 감독과 여섯분의 만화가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씨께 용산에 함께했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때로 아픈 건 일어났던 일보다, 그 일이 잊혀져 버릴 때 오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우리 모두가 망각하지 않게끔 기억의 끈을 잡아주고 그 실낱같은 기억에 분명한 형상들을 입혀준 분들의 노력은 그 어떤 가치로도 쉬이 갚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일 터입니다. 성남 단대동 철거민으로 2009년 1월19일 용산에 잠깐 연대 갔다올게 하고 나갔다가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3년째 징역을 살고 있는 김창수 씨 이야기를 다룬 김홍모 씨의 ‘갈 곳이 없다’는 이 시대 철거민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김창수 씨의 부인 수영 씨와 아직 어린 두 아이, 은찬이와 은수는 지금도 성남 단대동 재개발 아프트 공사장 앞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김성희 씨의 ‘꿈결 같은’에는 상도 4동 철거민으로 당시 용산에 갔다가 현재 김창수 씨와 함께 3년여의 실형을 살고 있는 천수석 씨의 이야기를 쫓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김영희 씨는 상도 4동 무허가촌에서 결혼 후 20여년 세를 살았습니다. 천주석 씨는 재단사였고 김영희 씨는 미싱사였습니다. 그 곳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오토바이 가죽장갑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김영희 씨가 두 아들과 함께 철거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상도 4동은 싸움 중입니다. 이감 간 대구까지 가는 길이 멀어 화상접견을 하면 “겨울 되니깐 망루에서 쇠파이프로 맞은 다리 한쪽이 계속 아프다”고, 당신은 “용역 들어오면 무조건 싸우지마”라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망루에서 떨어져 간신히 살아났지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지석준 씨와 김영근 씨는 대여섯번씩의 수술들을 받고도 지금도 완쾌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이런 부상당한 폭력 희생자들까지 몸이 다 나으면 징역살이를 하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구속된 용산구 신계동 철거민 김주환 씨 이야기는 유승하 씨의 ‘니 편한 세상’에 아프게 담겨 있습니다. 두 가구만이 남아 완공된 ‘e-편한세상’ 아파트 앞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용산은 이렇게 실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근래 박원순 서울시장과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용산 참사 관련 구속자들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다큐 <두 개의 문> 개봉과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출간에 맞춰 그나마 다행인 소식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용산참사 진압 당사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반성은커녕 일본 오사카 총영사를 거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는 가증스러운 일들이 있고, 당시 재판장이었던 양승태 씨가 대법원장이 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용산 참사와 관련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은 그것이 언제일지 시간의 문제일 뿐 역사적으로 불가피합니다. 책임자 처벌은 영원히 이명박 대통령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죄과를 조금이라도 그가 덜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용역경비업법과 강제퇴거금지법까지야 바랄 바 아니겠지요. 이 또한 우리가 싸워 이뤄내야겠죠.
자, 이제 다시 우리들 앞에 용산참사의 진실을 향한 <두 개의 문>이 다가와 있습니다. 하나는 망각으로 흐르는 문이고, 하나는 다시 진실을 찾는 문입니다. 하나는 굴종으로 향하는 문이고, 하나는 자유를 향한 문입니다. 하나는 과거의 늪으로 향하는 문이고, 하나는 조금 밝고 평등한 내일로 향한 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문의 손잡이를 돌릴 것입니까? 용역깡패들과 폭력 경찰들에게만 진입이 허락되었던 <두 개의 문> 안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