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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밖에서 판을 만드는 것, 그게 희망광장이야”

[희망광장 인터뷰](2) 인권운동가 박래군, 희망광장을 응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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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온 날의 절반을 고스란히 인권운동에 바친 사람이 있다.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래군. 지금껏 박래군을 만난 곳은 차마 이곳이 대한민국이라고 여기고 싶지 않은 곳들이었다. 평택 대추리, 용산 남일당, 쌍용자동차 공장 앞, 구로 기륭전자 농성장,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앞... 사람이 죽어 나가고, 노동자가 곡기를 끊고, 공권력의 폭력에 시민들이 피 흘리는 현장, 바로 그곳에 박래군이 있었다.

그를 마주친 공간 때문일까? 꽤 오랜 시간 만나왔건만 그와 술은커녕 차 한 잔 나누지 못했다. 물론 그의 고향은 물론 나이조차 모른다. 다만 그가 90년대 초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과 한 공간(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에서 먹고 잤듯이 나도 한때 이소선이 지어준 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잤던 시절이 있어 그와 한 어머니를 둔 형제처럼 여겨지는 착각에 빠진다.

박래군을 만난 날은 서울광장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의 희망광장(희망광장)’이 시작된지 엿새째인 3월 15일 점심때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래군은 요즘 대권 후보로 오르내리는 안철수와 통한다고 한다.

“안철수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말하잖아. 나하고 딱 맞더라고. 난 상식의 전도사라 말하고 다니거든. 인권은 상식이잖아.”

인권이란 공기와 같아야 한다. 사람이 살려면 꼭 존재해야 하나 사람이 그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인권’을 배우거나 주장하지 않아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 그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아닐까. 인권운동이란 바로 당연히 존재해야 할 상식이 통하지 않거나 실종될 때 이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을 찾는다. 희망은 행복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잠자던 집에서 쫓겨나고, 생계를 꾸려가던 일터에서 쫓겨난 그 현장에 ‘결사’ ‘투쟁’ 이라는 구호와 함께 신기루처럼 적혀 있다.

희망광장에 일터에서 쫓겨나고, 비정규직이라 차별 받고, 특수고용직이라고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 살아가지 못한 이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지 엿새가 흘렀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여전히 두툼한 외투 차림의 노동자를 떨게 한다. 희망의 봄 햇살은 쉽게 노동자의 삶을 비추지 않는다. 아니 햇살은커녕 해꼬지의 강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엊그제 경찰은 자신의 밥줄을 빼앗길수 없다고 자신이 평생 일하던 일터에서 냉각수의 녹물을 받아먹으며 77일간 공포의 낮과 밤을 보낸 노동자를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방패와 곤봉으로 내리친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 진압을 사죄는커녕 ‘베스트 5’ 사례라고 자랑했다.

“용산에서 (공권력이) 사람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죽였잖아. 이 정도면 대통령이 나서서 사죄해도 부족하거든. 그런데 국민들이 묵인하고 넘어간 거거든. 무리한 진압 보여줬잖아. 자신감 얻은 이들(공권력)은 용산 방식을 가지고 쌍용자동차에서 진압했어. 이걸 베스트 파이브에 올려 논 거야. 그 소식 듣고 진짜 열 받았어.”

경찰의 이 발표에 노동자의 분노가 희망광장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 분노는 서울광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바야흐로 선거 국면이다. 정치권은 정책과 이념 대신 후보자 공천을 서바이벌 연예 프로그램으로 연출하며 유권자에게 흥행 성공을 구걸하고 있다.

각 정당의 정체성도 투표를 눈앞에 두고는 모호해졌다. 노동자에게 냉혹했던 정당조차도 총선을 맞이하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도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는 상황에 와 있어. 진보 세력이 잘한 것도 있지만 (양극화 문제 등) 너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어서 어째든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기도 해. 그럼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할까? 여소 야대가 되어도 그때 가서 타협이 이뤄질 거야. 여소야대가 되어도, 야당도 지금 비정규직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지는 않을 거야. 여전히 정치권 압박할 수 있는 힘은 의회 바깥에서 있을 거야. 난 지금 시민들의 열기가 희망광장으로 향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희망광장이 정치권의 타협을 막기 위한 터잡기라고 생각해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 그래서 정치권이 짜논 정치일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판을 미리 만들어야 해. 그게 희망광장이야.”

국회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입법기관이 아니냐고 묻자 박래군은 “그런 게 어딨어” 라며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박래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해결하겠다고 정당들이 앞다투어 말하지만 그 해결은 선거 뒤 국회 의사당에서 알아서 해줄 거라 믿으면 착각이다. 의사당 밖, 거리의 정치가 있어야 한다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고 박래군은 힘주어 말한다.

지난해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머물지 않았다.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장에 평화가 무너지는 절망, 환경이 파괴되는 절망, 무너지는 비정규직의 삶과 같은 숱한 절망이 희망의 화살을 쏘아 올린 것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를 1년 뒤에 복직시키겠다는 합의가 나오고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내려오자 그 숱한 절망들은 바늘구멍을 뚫고 비추는 희망의 빛을 본 거다. 그래서 희망버스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쌍용자동차로 향하고 재능교육으로 가자고 했다. 희망비행기가 떠서 저 외로운 섬 제주도, 강정마을로 날아가기도 했다.

‘희망광장’은 지난해의 희망의 잉걸을 모닥불로 피어내는 일이다. 오는 17일에는 희망광장에 비정규직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아직은 휑한 희망광장에 한 사람 한 사람 희망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서울광장이 무수한 절망의 발걸음이 이어져 가득 메워질 때,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 바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 길에 자칭 ‘상식 전도사’ 박래군도 있으리.

“썰렁한 희망광장을 어떡하면 메울 수 있을까?”

박래군이 내게 묻는다.

‘상식’이 서로 통하는 안철수와 서울광장에서 대담을 한 번 하라고 하자, 박래군은 요즘 바쁘단다. 그러려면 안철수 책도 읽으며 공부해야 하는데, 세상의 절망이 잠시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아 시간이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