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는 무효화됐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해당 법률 개정에 직접 참여한 국회 교과위 소속 국회의원인 권영길 의원은, 정책 논평에서 “초중등교육법 8조가 ‘법령의 범위에서 학칙을 제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령’에는 지방자치 조례가 포함 되는 게 당연한 법 상식”이라고 밝혔다. 교육감의 학칙인가 절차만 없어졌을 뿐이지, 학교장이 학칙 제개정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할 의무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와 다른 견해, 즉 “법령”에 조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초중등교육법 8조에 따라 학교장의 학칙 제개정을 할 때 조례를 얼마만큼 준수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순전히 법리적 측면에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순전히 법리적’으로 접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하게도, 초중등교육법에서 교육감의 학칙인가권이 폐지된 것이 곧 학생인권조례의 무효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육감이 학교의 학칙을 인가하는 절차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교육감이 학생인권 보장에 긍정적인 경우에 학교들의 학칙 내용을 강제할 수단이 약화되었을 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만일 교육감이 학생인권에 부정적인 경우에도 학교들의 학칙은 거기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이번 초중등교육법 개정으로 인해 학생인권조례가 바로 무효화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 동아일보야말로 ‘허위사실 유포’ 중이며 법체계를 우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무효화되려면, 해당 조례가 상위법을 위반하므로 효력을 상실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거나,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조례가 폐지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전까지 여전히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청의, 학교의, 학교장의, 교사의, 학생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유효한 법이고 기준이다. 조례는 여전히 학교장이 지켜야 할 법들 중 하나인 것이다. 교육감의 학칙인가권 폐지를 놓고서 일부 학교장들이 “나는 조례든 법이든 다 쌩까고, 교육청에서 직접 날 징계하려 들지 않는 한은 학생인권을 침해하겠다”고 고집을 피울 생각일 수야 있겠지만, 그 행위가 학생인권조례를 위반하는 ‘불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학교장들이 학생들에게는 “규칙을 지켜라”라고 떠드는 게 얼마나 교육적인 일일지도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어도 학생인권 보장은 학교의 의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이러한 호도도 문제지만, 마치 “학생인권조례만 무효가 되면 학교들은 학칙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식의 동아일보의 논조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일부 학교장들의 모습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더라도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학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과 기관들에게는 인권을 존중할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의무가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 권리,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경우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국가의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존중.보호.실현의 의무를 지고 있다. 존중은 국가가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보호는 사람들의 인권이 타인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며, 실현은 인권이 실질적인 권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자원과 조건을 제공하고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일부인 공교육 시스템인 학교 역시, 유사한 의무를 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학교 교육 과정에서 체벌이나 자의적 소지품검사 등으로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존중의 의무이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다른 학생에 의한 폭력.차별.괴롭힘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호의 의무이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하는 데 경제적으로나 무엇으로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이를 지원하고 교육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실현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조례가 없어도, 헌법과 법률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학교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야만 했다. 한국 정부가 비준하여 국내의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도 아동의 권리, 예컨대 동아일보 등에서 집요하게 문제제기하고 있는 “집회 결사 사상의 자유”라거나 “사생활의 자유” 등을 똑똑히 밝히고 있으며, 제28조에서는 직접적으로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 협약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애초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엄격하게 상위법으로서 적용했다면 과거 체벌을 허용했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같은 것이야말로 상위법 위반이 됐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오랜 학생인권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초중등교육법 제18조 4항에서는 학교가 헌법과 국제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학교 규칙이나 학교 운영 등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교육청, 교육부, 개별 학교들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시정권고, 정책권고를 개진해왔으며,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제25조에서 “권고를 받은 관계기관 등의 장은 그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국민의 권리”를 선언한 여러 조항들에 대해서는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러한 법적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징계의 위험 등을 무릅쓰고 저항하는 행동에 나서야만, 또는 지역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에 긍정적인 교육감들이 취임해야만 학생인권 상황이 개선되곤 했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운동을 벌이고 학생인권조례를 입법시켜야만 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 보장을 원활히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인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진다거나, 교육감의 학칙인가권이 사라진다고 해서, 학교가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마치 철도가 영업을 정지한다는 게 이동의 자유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곽노현 흔들기’ 도구화를 그만둬라
나는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외면하고 학생인권조례가 무효화되었다는 식으로, 그리고 학교장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기에 급급한 동아일보의 보도가 명백한 왜곡 보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판단한다. 일부 학교들에서는 학교장이나 교사들이 동아일보의 이런 왜곡 보도를 가지고서 학생인권조례를 지킬 필요가 없다거나 학칙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동아일보에 주장에 속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왜곡 보도를 일삼는 동아일보만 보지 말고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판단을 해보라고, 특히 인권에 대해 교육도 좀 받고 공부 좀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만일 알면서도 그러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매우 기만적인 행태이고 교육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해야 할 것이다.
요즘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들을 보면, 솔직히 동아일보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공격하기 위해서 무작정 선정적인 기사들을 투척하거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vs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구도를 만들기에만 여념이 없어 보인다. 정작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나 학생인권에 관련된 법적 교육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동아일보가 학생인권 보장에 대해 조심스럽거나 부정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학생인권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깊이 있는 탐사 보도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되고 담론의 수준이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그러기보다는 이를 ‘곽노현 흔들기’ 도구화하는 데만 급급하다. 나도 여러 사정상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란 인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학생인권이 곽노현이라는 인물 하나의 것인 양 엮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의 행태가 불쾌하다. 10만 서울시민들의 주민발의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서울학생인권조례, 6년동안 지역에서 소통하고 힘쓰며 만들어온 광주학생인권조례, 전국 최초로 만들어져 지난 1년여 동안 학교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온 경기학생인권조례 등과 더불어, 수많은 학생들이 십 수년, 아니 수 십년을 요구하고 운동하며 만들어온 ‘학생인권’을, ‘인권이 꽃피는 학교’에 대한 꿈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며 왜곡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