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안정이 상당히 갖추어진 현대기아차 노동자들 역시 사측의 해외공장 증설 계획이 나올 때마다 매번 불안한 반응들을 보여 왔다. 해외생산비율제를 요구하기도 했으며, 단협에는 해외공장 우선폐쇄와 같은 조항들을 넣기도 했다.
글로벌 생산 문제, 자동차산업 100년 이슈
1998년(현대차), 2001년(대우차) 정리해고의 고통을 경험한 현대차,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항시적이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지엠 인수 이후 지난 10년간 공장철수, 물량 이전의 불안을 단 한 해도 떨쳐본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0% 대에 불과하던 해외생산비중이 2011년 50%를 넘어선 현대차 노동자들 역시 이러다 한국 물량을 모두 해외로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한다. 글로벌 생산 체제를 확고히 한 현대차에서 울산, 아산 공장 역시 이제 국제 공장 중 하나가 될 터이니, 불안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 완성차 노동자들이 최근 확대되고 있는 글로벌 생산과 이로 인한 물량 변동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자동차산업은 그 태생부터가 국제적 생산을 기반으로 했으며,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 역시 100년 가깝게 이 해외공장 건설과 폐쇄를 둘러싸고 수많은 싸움들을 만들어왔었다.
미국자동차노조(UAW)는 1940년대부터 이미 주요 교섭 의제 중 하나로 국제 공장 관련 문제를 제시해 왔었다. 1930년대 말 GM은 총 판매한 35만대 중 15만대 내외만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었고, 포드 역시 1920년대부터 해외공장을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해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벨기에, 독일, 스웨덴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 공장을 세웠고, 심지어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국가와 인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공장을 건설했었다.
현실성-계급적 단결 모두를 놓치고 있는 금속노조
지난 100년의 자동차산업 세계화 과정 속에 해외공장과 관련해 노동조합이 해외공장 설립을 저지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노동조합들은 해외공장에 대해 인정하는 대신 국내 고용 유지 협약 정도를 맺는 수준에서 대처해 왔었다. 미국자동차노조는 90년대 이후에 수차례에 걸쳐 해외공장 증설에 대해 조합원 고용보장(비조합원에 대한 배제)을 단협으로 체결해 왔고, 유럽의 자동차 노조들 역시 국내 공장의 경쟁력 확보를 단서조항으로 한 고용안정 협약들을 체결해 왔다.
이런 점에서 금속노조가 2010년에 추진한 해외생산비례제와 같은 정책은 어찌 보면 이미 실패한 사례를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나간다는 현대차의 경영전략 전반을 뒤흔드는 요구를 전면전을 각오한 투쟁 계획도 없이 얌전한 교섭 요구안으로 내세웠으니 자본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이야기를 정책 대안이라고 제시한 샘이다.
현대차지부가 2000년대 중반에 체결한 단체협약 42조(해외공장)는 현실성과 더불어 계급 단결의 원칙마저 훼손한 사례다. 단협 42조는 “회사는 세계경제의 불황 등으로 국내외 자동차시장에서 판매부진이 계속되어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국외공장의 우선 폐쇄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해외공장의 노동자와 국내 공장 노동자들을 스스로 갈라놓았다.
현실성 역시 문제인데 공장 폐쇄가 현실화된 상황이라는 건 단순히 어떤 공장 일부를 조정하는 상황이 아니라 국내를 포함한 국제적인 구조조정 계획 차원에서 진행된다. 2009년 미국자동차노조는 현대차와 비슷한 형태의 단협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내 공장 폐쇄와 대규모 정리해고 상황을 막지 못했다. 미국 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었던 독일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오펠은 벨기에 공장 폐쇄와 더불어 독일 국내에서도 1만명 가까이가 해고되고 말았다.
해외공장 우선 폐지를 미국 노사가 합의한다면?
한편,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금속노조와 현대차가 추진한 정책은 극단적으로 보면 조직적 배제에 가깝다. 현대차가 단협으로 맺은 “해외공장 우선 폐지” 조항을 미국자동차노조가 미국 GM과 맺는다면, 그것은 한국GM 노동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자동차노조가 한국금속노조가 추진한 해외생산비례제와 비슷한 개념으로 2009년 소형차 국내 생산 비율을 요구하고 나서, 한국의 소형차 생산 일부가 줄어들며 한국GM 노동자들이 여러 고용불안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최근 금속노조가 완성차 해외공장 사례 조사를 바탕으로 해외공장 수익률이 국내보다 많이 떨어지고, 극단적으로는 해외진출을 위해 국내 공장 이익을 빼내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초국적기업의 국제 거래 관행을 파악하지 못한 것인데, 초국적 기업은 내부 거래 관계를 통해 목적에 따라 이익을 본사 혹은 전략적 거점으로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본사가 납품하는 부품 혹은 완성차를 해외지사가 비싸게 매입하면 본사에 이익이 남는다.
르노삼성 공장과 한국지엠 공장이 이러한 경우다.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은 2008년 이후 차를 많이 수출하면 할수록 한국 법인에 수익률이 떨어지는 구조로 바뀌었는데, 본사가 경제위기 이후 해외공장 이익을 적극적으로 본사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가 이러한 상황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채 해외공장 수익률이 본사 공장보다 떨어진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면 이는 본사 경영진들이 한국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선전을 금속노조가 도와주는 꼴이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국제적 생산과 고용 문제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통제 문제로 몇 가지 정책 요구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150여년 전에 주장한 것처럼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 번 해볼 만한 싸움이다.
당장 이러한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선 금속노조는 최소한 현대차의 해외공장 문제와 초국적 기업들의 한국 공장 문제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정책부터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부터 고려한 정책과 투쟁 의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와 현대차가 추진 중인 정책들은 그다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정책 대안이 현실성을 갖추기 힘든 계급 역관계라고 한다면, 최소한 지향 차원에서라도 계급적 단결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본 이동에 관한 제도적 규제 정책이다.
한국 자본에 의한 해외직접투자, 외국자본의 한국직접투자 양자 모두에 대해 규제할 수 있는 제도 개선 요구를 내걸고, 또한 해외공장 문제로 굳어진 프레임을 국제적 생산에 따른 국내외 노동자의 고용 문제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산별교섭 의제 역시 이러한 문제틀에 맞도록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