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는 책 <25일>에서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산1공장 점거투쟁을 기록했다. 박점규는 책머리에 솔직하게 “이 글은 편파적”이라고 고백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듣고 썼다.’고 고백한다.
이 책 ‘23일차(12월 7일)’ 기록엔 지쳐가는 점거 노동자들의 긴장이 묻어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버렸고, 농성장이 무너져 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상수는 ‘아직 싸우겠다는 조합원이 존재하는 한 싸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상수는 때로는 나약했지만 때로는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밖은 어떻게 돌아갔던가. 홍영표, 권영길, 조승수 의원, 김영대 국참당 최고위원 등 야4당 의원들은 교섭지원단을 꾸리고 이경훈 지부장, 이상수 지회장, 강호돈 대표이사를 만나 각 입장을 확인하고 중재안을 비정규직지회에 제시했다.
박점규는 ‘야4당의 중재안’을 “한마디로 ‘선 농성해제 후 교섭’이었다”고 기록한다. 회사와 야4당, 정규직 노조를 믿고 농성을 풀고 내려가서 교섭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국회의원 면담이 끝난 뒤 기다렸다는 듯이 현대차 정규직지부는 농성장을 방문해 “국회의원들의 중재까지 거부하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어차피 정치는 거간질이다. 노동자들 스스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판에 어떤 정당이 이를 자기 싸움으로 여기겠나. 울산공장에서 한솥밥을 먹는 정규직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박점규는 이를 두고 “어떤 활동가도 용기 있게 점거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지 않았고 어떤 현장조직도 1공장에 올라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이 투쟁에서 정규직은 연대의 대상이었을 뿐 투쟁의 주체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2010년 12월, 현대차 사내하청 싸움은 7년이란 길고 험한 세월을 지나왔다. 현대기아차 그룹 본사가 있는 양재동에선 수년째 동희오토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이 이어졌다. 낯설고 외진 서울 땅 구석에서 매일 재벌그룹이 동원한 용역깡패들에게 둘러싸여 린치 당하기를 수십 번. 천막은커녕 바닥에 깔았던 스티로폼마저 자주 뜯겼다. 한 줌의 대학생과 처지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20여 명이 모여 매일 저녁, 공연 하나 없는 야간문화제를 이어갔다. 사회자는 원맨쇼로 1시간 넘게 버텨야 했다.
그 양재동 거리에서 본 정진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라 하기엔 얼굴이 너무 하얬다. 진보신당 비정규노동국장이란 명함이 어색했다. 불과 1m 앞에 있는 용역깡패와 전경버스를 비켜서서 진행하는 기자회견은 늘 아슬아슬했지만 마이크를 잡은 정진우는 한 번도 쫄지 않았다. 나는 정당인 정진우가 양복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를 마징거Z가 나온다는 으리으리한 국회에서 본 적도 없다. 늘 거리에서 봤다.
정동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일상 속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던 정진우는 결국 희망버스에서 그 길을 찾았다. 차수를 거듭할수록 거점을 잡기 위해 부산 영도를 수십 번 돌았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부담도 컸지만 정진우는 늘 회의 때마다 넘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내놓은 회의 자료가 아무도 해독 못하는 난수표 수준이었던 게 흠이라면 흠일까.
<미디어오늘>은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던 그를 인터뷰 하면서 “샛노랗게 염색한 스포츠 머리에 중절모를 삐딱하게 쓴 그 또한 희망버스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간 희망을 찾아다니는 듯 보였다”고 쓴 다음 중절모를 쓴 사진까지 실었다. 말도 안 되는 기사였지만 우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안경이 깨지고 팔이 비틀린 채 경찰에 잡혀가는 희망버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진보정당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갇힌 부산 주례동 부산구치소에서 60일밖에 남지 않은 총선과 진보신당의 앞길을 고뇌한다. 정보의 부족에 시달리는 그에게 “아무 생각 말고 쉬라”고 해보지만 소용없다.
모두가 정치를 한다지만 정진우 만한 정치는 없다. 국민이 무엇에 갈증하는지를 중심에 놓고 움직이는 정진우는 우리 정치의 미래다. 사람들은 정진우와 송경동을 이상주의자라고 하겠지만 둘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싶었고, 그걸 몸으로 옮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