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희망을 가두면 다른 희망이 피어난다

[기고] 사람을 사랑한 죄, 잡혀가야 하나요?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아프니? 나도 아프다.”
드라마 <다모>에 나오는 대사이다. 명대사로 인정받으면서 세간에 꽤나 회자되었다. 십여 년이나 지난 드라마 대사가 요즘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밥을 먹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아이와 놀다가도 누군가 내 귀에 입술을 바투 들이대고 솜털이 파르르 흔들릴 만큼 명징하게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고 속삭인다.

세상을 보는 문은 트위터다. 한미FTA 발효를 앞두고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글들은 걱정과 한탄과 분노가 가득하다. 말 붙일 틈이 없다. 그 사이사이 FTA와 상관없이, 물론 FTA가 그들을 더 치명적으로 만들 테지만, 그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정, 재능, 유성, 쌍차.,. 아프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소리치고 결의하지만, 사실은 많이 아프다. 아픈 자는 아픈 자를 알아본다. 그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 얼마나 아픈지, 말 안 해도 다 안다.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해고자로서, 같은 피억압자로서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자신의 육신이 먼저 아파온다. 그래서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걸 잘 안다.

여기, 그 자신 노동자가 아니면서, 해고자가 아니면서 잠시도 현장을 떠나서 살지 못하는 시인이 있다. 송경동. 가난 때문에 일용직 노동자로도 살았지만, 시와 접신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시인이 밥 먹여주는 직업이 아니긴 해도 아무나 될 수는 없는 폼 나는 직업이긴 하다. 그러나 송경동은 폼 나는 시로 폼 나게 살아도 되는 길을 버렸다. 혁명시인들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그에게 시는 살아있는 증거이면서 또 다른 세상을 꿈꾸기 위한 무기이다. 그는 아마도 통점이 남달리 발달했을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당사자보다 더 크게 느끼며, 좀 쉴 만할 때도 어디 아픈 사람 없나 찾아다니는, 참으로 ‘징한’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한테 늘 미안해했다. 나 같은 사람한테 글 한 편 써달라면서도 미안해했다. 때때로 나는 그의 미안함이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요구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라면 자발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동료 문인들이 실망스럽고 화가 날 텐데, 그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다. 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고 나니, 알 듯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참 웅숭깊은 사람이구나. 좀 더 잘났건 좀 더 못났건 결국 99%에 불과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후배 문인들에게조차 공손해지는 거구나. 분노하고, 미워하다 결국 부둥켜안으며 용서하고 화해하고 쓰다듬는 그 성정을 그제야 알 듯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에서 우리는 같이 일을 했다. 공교롭게도 대추리 옆 동네에 사는 바람에 나는 가장 빈번하게 대추리를 들락거리는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송경동은 나에게 그 중대한 임무를 턱 맡겨놓고 자신은 가끔씩 내려왔다. 물론 오래 전부터 함께 싸워오던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도 있었고, 박영근 시인 추모제도 목전에 닥쳐 있었고, 하여간 내가 다 꿸 수도 없을 만큼 일이 많긴 했다. 그런 현장에 비하면 그에게 대추리는 하룻밤 몸도 마음도 다 내려놓고 편한 사람들과 편하게 술 한 잔 걸치고 노래 한 자락 부르고 푹 잠들 수 있는 고향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농지를 파헤치러 들어온 굴삭기를 막으려고 격렬한 몸싸움도 마다 않았고, 현수막을 목에 걸고 흙구덩이에 뛰어들었다가 경찰들에게 질식 직전까지 끌려가다 응급차에 후송되기도 했다. 정말 그럴 줄 몰랐던 거다. 현수막을 목에 걸자고 했던 사람도, 따라서 걸던 사람도, 주위에서 응원하던 사람도, 숨이 막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보고도 그렇게 질질 끌고 갈 줄은 몰랐던 거다. 우리는 언제나 착했고, 순진했고, 인간의 양심에 대한 일말의 믿음은 버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리고 늘 뒤통수 맞고 처절하게 당했다.

나는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고, 화가 나서 내 자신이 미워질 지경이었는데, 송경동은 병원에서 웃으며, 그 상황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어디, 그게 하루 이틀인가? 그래도 죽을 뻔했잖아. 그래도 사람 하는 일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가겠냐? 그러나 그렇게 갈지도 몰랐다. 주위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몸으로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 모른다. 그는 늘 낭만적이었고, 희망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궁핍하고 힘들게 살았으면서 늘 낙천적인 그가 이해가 잘 안 됐다. 미루어 짐작컨대, 가난이 그를 단련시키고, 죽음에 가까운 절망과 자책이 그를 단련시켰을 것이다. 그가 뛰어다니는 현장은 그렇게 늘 위험했고, 내가 마라도로 시집을 간 이후 들려오는 소식도 다리가 부러졌네, 교통사고가 났네, 수술해야 되네, 병원비 좀 걷자, 목발 짚고 집회 다니네, 하는 소리들이었다.

행정대집행.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아닐까 한다. 공권력을 동원해 싸그리 몰아내고 부숴도 된다는 말이다. 거기에 저항하면 누가 다치든 누가 죽든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군부대까지 동원된 대추리 행정대집행, ‘여명의 황새울’. 방송3사에서 생중계를 했으니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지금도 썩었지만, 그때의 방송3사도 썩을 대로 썩어서, 마치 재미난 스포츠 중계하듯 찍어 송출했다. 주민과 도우미들은 폭도요, 땅값 올리려는 욕심쟁이들이요, 그 땅을 강제 접수한 군인들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경들은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비추었다. 그 사태의 책임자가 바로 지금 제1야당 대표로 있는 한명숙이고, 야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이듯이, 우리가 바라는 것도 그들의 반성과 사과이다. 지금 대추리보다 더 외롭고 위태롭게 싸우고 있는 강정도 그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들은 줄곧 한 마디 말이 없다.

아무튼 그날, 대추초교에서 1만5천 명의 전경들과 맞서다 그야말로 작살이 난 2천여 명 중 송경동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옥상으로 대피해 멋있게 짱돌을 날리다가 다시 돌아온 짱돌에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었는데, 부상자들은 학교 밖으로 피신토록 해주었음에도 워낙 방방곡곡 전적이 많은지라 아는 형사놈의 눈에 딱 걸리는 바람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상처가 심해 한밤이 되어서야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아마도 그때가 하루도 육신이 편할 날 없는 송경동 투쟁사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그날부터 대추리 진입이 차단되자 서울 한복판에서 한 달 동안 예술공연을 펼치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너무나 외로운 싸움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주었으나, 더 많은 국민들이 강 건너 불구경했기에 그 막강한 국가권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추리는 ‘적군’의 손에 넘어갔고, 그와 나의 공동투쟁도 막을 내렸고, 나는 마라도로, 그는 예전처럼 노동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때 난 많이 부러웠었다. 반백수로 살면서 유유자적 시 쓰는 삶을 살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딱히 연고도 없는 평택으로 내려갔더니, 그 옆 동네가 하필이면 대추리더라. 그래도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싸웠다. 그런데 너무나 무참하게 지고 나니, 거대한 국가권력의 실체를 눈앞에서 보고 나니, 자괴감과 무력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라를 뜨고 싶었다. 내상이 너무 컸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안간힘을 쓰던 중이었다. 그런데 송경동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그에겐 돌아갈 곳이 많았다. 언제나 투쟁현장은 슬프고 아프니까, 그에게 대추리에서의 패배는 특별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나는 도망가려고 안간힘인데, 저 인간은 또 싸우러 가려고 안간힘이구나. 내상을 견디는 힘이 참 많이 부러웠었다.

몇 년이 흘러, 우리가 동지로서 다시 만난 건 희망버스였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으로 송경동은 희망버스를 기획했고, 나는 두 차례, 희망버스를 탔다. 나는 평택에서 출발했고, 3차부터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사실 희망버스에서 그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무튼 희망버스는 예전에 없던 희망을 기적처럼 만들어냈다. 전국에서 깔깔깔 웃으며 희망을 싣고 달려간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김진숙은 포기하지 않고 견뎠다. 그리고 결국 승리해서 내려왔다.

비정규직 900만 시대, 노동현장에서 내쳐진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분노와 한숨이 온 나라를 뒤덮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갔다. 절망의 그림자, 죽음의 그림자가 하루하루 짙어져가던 때였다. 그런 때, 송경동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깔깔깔 웃자니? 힘들어죽겠는데, ‘죽을똥 살똥’ 싸워도 질 텐데, 웃고 떠들고 놀자니? 아마도 너무 힘들어서, 그 자신이 정말 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절망을 잠시 잊고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그저 신명나게 놀자고, 대신 서로 만나자고, 만나서 서로를 다독여주자고, 그 속에서 자신도 좀 즐겨보자고 한 짓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연대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소주 한잔 걸치면서 설렁설렁 꺼낸 얘기인지도 모른다.

희망버스는 송경동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정말 멋진 작품이다. 그는 김진숙도 연민했지만, 다들 사는 걸 견디고 있는 평범한 이웃들을 연민했다. 자신들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그 슬픔이 무엇인지 알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 연민하고 사랑할 줄 알게 만들었던 것이다. 김진숙에게 희망을 주러 갔다가 그들 자신이 도리어 희망을 얻고 돌아오게 만든 희망버스. 그래, 그는 천상 시인이고 예술가다. 예술가의 머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버스를 상상하고 현실로 만들어낸 시인 송경동. 그가 잡혀갔다.

자진출두 후, 바로 구속되었다. 김진숙이 불구속이었으니, 설마, 하는 마음이 컸겠으나, 역시나 너무 순진한 탓이었다. 구속의 이유는, 어쩌면 희망버스의 다음 목적지가 쌍차여야 한다는, 나 같은 사람들의 발언과 언론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획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가만히 지켜볼 걸 그랬다. 괜히 떠들고 이슈화시키는 바람에, 검찰에서 제2의 희망버스를 애초에 막고자 송경동과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정진우를 풀어줄 수 없다고 한다.

시인이 잡혀간 뒤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책이 나왔다. 저자도 없는 출판기념회가 열렸고, 그 후 신동엽창작상, 민주시민언론상특별상, 구본주예술상을 줄줄이 탔다. 복인지 아닌지, 잡혀가니 상복이 터졌다. 복이라도 참 기구한 복이다. 그래도 그동안 땡전 한 푼 벌어주지 못하던 가계에 얼마간의 상금이라도 쟁여주고 갔으니, 좀 덜 미안했겠다. 뒤늦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구속된 지 석 달이 되어간다. 1차 공판이 열렸고, 2월 7일 2차 공판이 예정되어 있다. 그동안 목과 발의 통증이 심해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재수술 진단이 나왔다. 계속되는 통증에도 변변한 치료 없이 아내가 한 달에 한 번 넣어주는 약으로 버티고 있다. 병보석을 신청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아프지도 않은 대기업 회장들은 툭하면 휠체어 타고 마스크 쓰고 다 죽어가는 포즈로 기어 나오는데, 정작 가난하게 아픈 사람은 구제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그를 면회 갔다. 부산까지 4시간, 구치소까지 1시간, 그리고 면회 단 10분! 유리벽이 가로막혔고, 구멍도 하나 없이 기계로 서로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참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절절하게 손을 꽈악 붙잡고 싶었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고, 우리는 기계에 찍힌 숫자가 줄어드는 걸 힐끔거리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계속 웃었고, 마지막 할 말을 생각해내었는데, 채 다 맺기도 전에 시간이 종료되었다. 참, 지랄 맞은 면회였다. 서로의 문을 열고 나가면서 인사를 할 때, 나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았다. 그도 내 눈시울을 보았으려나 모르겠다.

김진숙은 1년 6개월의 구형을 받았다. 송경동과 정진우에겐 얼마의 구형이 내려질까? 그 전에 두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검찰은 제발 이걸 알아주길 바란다. 송경동과 정진우가 없다고 희망버스가 움직이지 않던가? 희망을 한 번 맛본 사람들은 그 유쾌하고 달짝지근하고 따스한 맛을 잊지 못한다. 금세 중독되어 버린다. 버스를 못 가게 하면 뚜벅뚜벅 걸어서라도 가고, 엄동설한이라면 난로도 피우고 옹기종기 몸 붙여 밤을 지새우게 텐트라도 치면 된다. 다들 보고 있지 않는가?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노동자들은 더는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 평택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대전으로, 전라도로, 부산으로 서로가 서로를 찾아다니며, 격려하고 포옹하고 사랑한다. 몇몇 사람을 가둔다고 그 수많은 해고노동자들의 비명소리가 묻히는 게 아니다. 그 수많은 희망과 열망이 가둬지는 게 아니다.

송경동, 정진우. 그들은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 검찰 당신들조차도 사랑할 사람들이다. 그만 풀어줘라. 한진노동자들이 매주 부산구치소 앞에서 촛불집회를 한다는 소식 못 들었는가? 그렇게 가두면 또 다른 촛불이 피어나고, 그 촛불을 가두면 다시 다른 촛불이 피어난다. 그만 풀어줘라. 그들은 다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