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금지된 야간 시위 주최, 해산명령 불응, 미신고 집회) 위반, 일반교통 방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주거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위법을 범하였다”는 것이 검찰이 말하는 공소 사실이다. 앞에 세 사람 말고도 희망버스 승객 4명이 불구속 기소되어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함께 희망버스를 탔던 작가들과 시인, 활동가 들이 다시 희망버스를 이야기하는 글을 이어서 실을 예정이다.
‘나 혼자서 나선다고 뭐가 변할까’라며 나서볼 엄두도 못 냈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노동현장에서 들려오는 갈등 소식에도 나 몰라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의지가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괴로워도 참는 데에 익숙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엔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갔단다. 사람은 좋은 경험보다 안 좋은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 2003년 한진중공업, 그 기억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데 또 올라갔단다. 안타까움이고 답답함이지만 역시나 ‘나 혼자서 뭘 어쩌겠는가’라는 비겁한 핑계에 기대고 있었다. 이번에도 술자리 안주거리 울분에 그치고 말 것 같았다.
그런데 1차 희망버스 다녀온 소식이 들렸다. 2차로 또 갈 거란다. 물론 나 혼자 나선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겠지만, 또다시 한진중공업에서 2003년이 되풀이된다면 그 절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동안 용산과 쌍용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익숙해진 패배가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이제는 패배에 길들여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지 행동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좋은 글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작가가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은 세상이 올바르게 되기를 바라는 내 뜻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니, 열심히 좋은 글을 쓰면 세상이 좋은 세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만 써서는 올바른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나 하나 간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지만, 나중에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 나 스스로에게 그 정도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핑계거리라도 만들자.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얽히고설켰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나서는 거다. 같이 할 사람들도 있다니 두렵지도 않았다.
더작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에서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 가족들에게 어린이책을 나눠주기로 했다. 그들에게 전해주는 책 몇 권이 작은 위로라도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소박하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출판사와 작가들이 보내준 책이 천 권이나 되었다. 희망버스에 모아준 희망들 크기이고 양이었다. 영도 집회장에서 천막을 치고 노동자가족들 주소에 적힌 아이들 학년을 고려해서 나이에 맞은 책을 골라 같이 간 작가들이 사인을 하고 봉투에 담았다.
사람들이 ‘어린이책 작가들도?’라며 시선을 주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책 작가는 어린이처럼 순수하다는 이미지로 존재하는 면이 없지 않다.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니까 어린이처럼 순수할 것이라고. 어린이책 작가가 어린이처럼 순수(?)하다 할지라도 세상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아니다. 어린이책을 쓰고 그리기 때문에 어린이들 미래를 더 많이 걱정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2차 희망버스를 다녀오고 나서 책 받은 가족들로부터 참 많은 감사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도리어 감사한 건 그 문자를 받는 작가들이다. 책을 지원해준 출판사와 작가들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부산에 많이 모였다고 해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쉽게 내려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로 내뱉기 민망한 방정맞은 생각과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 될 문제가 아닐 거라는 막막함이 떠나지 않았다. 희망버스고 뭐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무감도 들었다.
3차 희망버스에서는 날이 더우니 부채를 만들기로 했다. 그림 없는 부채를 준비해 현장에서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커다란 의미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그려주는 사람들도 부채를 받는 사람들도 그 날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을 정도만이라도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 이어진 희망버스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여전히 힘들었지만 가면 갈수록 막막했던 마음이 점점 엷어졌다. 우리가 이기게 될 거라는 희망이 점점 커져갔다. 희망적인 소식이라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지만 모여든 사람들 열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라는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을 밟았다. 희망버스가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라도 잘하자는 마음들이 모였을 희망버스가 견디는 데 작은 힘이라도 되었다니 ‘기름진 밥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잠을 자며 희망버스 몇 번 간 걸 가지고 뭐’ 부끄럽기도 했다.
승리도 해본 사람들이 더 잘한단다. 이겨 본 경험은 고난을 견디면 끝내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된단다. 희망버스도 한진중공업에서 승리하였다. 희망버스는 영도에서 피워 올린 커다란 희망을 이제 다른 고통자리로 이어가고 있다. 승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희망버스에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삶에서 느끼는 절망을 떨쳐내고 새로운 희망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들이 모인 것이었다. 그래서 희망버스를 탔던 사람들은 노동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대한 희망운동을 하자한다.
▲ 쌍용차 노동자와 '와락' 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출처: 울산노동뉴스] |
더작가는 쌍용 노동자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와락책 읽기로 희망버스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사회 곳곳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각자가 할 수 있는 희망버스를 띄운다면 우리 모두가 삶에서 승리하는 희망버스가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모든 약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버스를 이제는 세상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기를 꿈꾸어본다.
2월 7일에 희망버스를 같이 탔던 박래군, 정진우, 송경동 승객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린단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수(水) 변에 갈(去) 자가 합쳐진 것이다. 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정작 길을 가로막는 큰 바위는 휩쓸어가지 못하면서 티끌이나 쓸어가는 물이 아니라 세상을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라는 말이다. 물처럼 흐르게 하려고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물처럼 흐르라는 법이 처벌을 한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는가? 상을 받아도 모자랄 사람들을 죄주려 하다니 박래군, 정진우, 송경동 희망버스 승객들에게도 물처럼 흐르는 법 적용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연대하면 저들이 결코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우리가 연대하면 이루지 못할 일도 없다. 물처럼 흐르는 희망연대를 쉴 수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