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영도 해안 길을 달려 함께 저녁을 먹고 영도경찰서로 향했다. 저녁도 못 먹고 갈까 걱정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찰서 입구에서 진달래색 희망버스 손수건을 들고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쳤다. 화기애애했다. 그 때만 해도 며칠 후면 다시 웃는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거라 철썩 같이 믿었다. 상식적으로, 자진출석한 사람한테 ‘도주 우려’가 있을 리 없으니까.
▲ 11월15일 영도경찰서 앞에서 |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접견을 간 날, 시인은 불안정해 보였다. 어느 정도 마음은 먹었겠지만 그도 우리도 ‘구속’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인은 갇혀도 갇힌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나비를 언급했는지 내가 그를 보면서 나비를 떠올렸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쩐지 위태로운 나비 같았다. 그 날이 마침 근처 위생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접견실 안쪽 문틈 너머로 시인과 경찰관이 실랑이를 하는듯한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입구 쪽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 그것이 포승줄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도주 우려’가 있는 사람처럼 팔과 몸 전체를 단단히 묶은 모습이었다.
구속적부심은 방청이 되지 않았다. 나는 재판정 출입구에 귀를 대고 들었다. 복도에 사람이 지나가거나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리면 끊기다가 조용해지면 단어가 띄엄띄엄 들렸다.
"정리해고 문제가 심각한데도...정리해고자들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는..."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으로서..."
그러다가 또렷하게 한 문장이 귀에 들어온다.
"재능(교육)이 천일 넘게 투쟁 중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투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벽 너머로 정진우 실장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났다. “갇혀도 갇힌 게 아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몇 사람은 남아서 석방 소식을 밤까지 기다렸다. 보통은 당일에 나오는 판결인데 다음날 오전에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각’이었다.
구치소 앞에 쭉 늘어선 나무들과 그 아래 노란 낙엽들이 오후 햇살을 받으면 유난히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필 구치소 가는 길이 왜 이리 아름답냐.’고 투덜거리면서, 그 아름다운 계절을 못 느낄 그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
검찰이 공소를 제기했다. 죄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교통방해, 공동주거침입, 집시법 위반 등이었다. 적용법조만 해도 십여 개였다.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아무 상관없게 느껴지는 법과 죄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한 번도 죄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희망버스는, 부도덕한 경영과 막무가내식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 먼저 따져 묻지 않는 구조와 자본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방위였다. 그것은 각자가 오로지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구성원들의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였다.
실정법적으로도 그러하다. 우선, 야간집회금지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또한 ‘미신고집회’라는 혐의 이전에,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되고 있어 ‘집회신고’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 되었던 상황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 한다. 사실상 허가제라는 것은, 당시 희망버스 집회신고가 질서를 혼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려 되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집회신고를 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호해 달라는 취지이지, 감시하고 통제해 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한 행정절차상의 문제가 헌법 위에 존재하는 것도 분명히 아니다.
나머지 죄명도 마찬가지다. 실제 그 현장에 없었던 사람을 ‘공모공동정범’이라며 무리하게 혐의를 덧씌우고 있다. 이런 것을 소위 괘씸죄라고 하던가. 희망버스가 어떤 의미인지, 왜 그 운동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어쨌든 희망버스에 관해서 누군가는 법적책임을 지라고 강요하고 있다.
결국 송경동과 정진우만이 갇힌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같이 갇힌 셈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와 크레인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는 꿈을 꾼다던 위태로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달려간 사람들 모두가 갇힌 것이다. 두 사람에게 죄가 있는가? 있다면 타인에 ‘공감’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있었다는 것이 죄가 되었다.
지난 1월 17일 첫 공판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송경동과 불구속 기소된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명확하게 밝혔다. 이 버스를 출발시킨 것은 조남호이다, 필리픈 수빅 조선소 이전은 몇 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이고, 일감이 없어 정리해고를 했다는 명분을 만들었다는 것, 2003년 김주익 열사가 올랐던 그 크레인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랐을 때에도 회사는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조남호 일당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자비했음을, 그렇기에 정의롭지 못한 노동환경과 여타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만 한다며, 희망버스의 정당함을 당당히 밝혔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재판이 끝났다. 먼 부산에 갇혀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났을 사람들이 송 시인을 떠나보내기를 아쉬워했다. 재판정과 방청석으로 나뉜 그 사이로 안타까운 손짓들이 오고갔다. 마지못해 떠밀려 나가면서도 시인은 주먹 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인사를 했다. 그 뒷모습이 참 멋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진우 실장이 얘기했듯 계속되고 있는 투쟁들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갇힌 두 사람의 몫까지. 두 사람이 어서 석방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구치소 집회도 계속될 것이다. 정진우 실장이 최근 보내온 편지글에 의하면 “<바위처럼>을 간절히 따라 불렀고, (구치소) 동료들이 친구들이 또 찾아와서 석방을 외쳤다고 하면서 함께 좋아”했다고 한다.
벽은 견고하지만 간절한 마음은 가 닿지 않겠는가. 추운 날 따뜻한 커피로나마 잠시 몸을 데우며 반주 없이 노래도 하고, 진심어린 발언도 하고 그렇게 간절히 석방을 외친다.
“송경동, 정진우는 무죄다! 즉각 석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