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가 집집마다 설치되면서 어느 날, 그 우물 위는 나무로 덮여져 버렸다. 엑스자로 단단히 못까지 박아버린 그 우물을 다시는 열 수 없었다. 내가 건져 올리지 못한 희망들. 나는 자주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날은 마을 근처 간이역 앞 공터에 남아 있는 우물로 나가곤 했다. 그 우물 역시 봉합된 세월이 오래되었는지 단단한 나무 두껑으로 덮여 있고 나는 건져 올리지 못한 나의 희망을 애도하며 자주 그 우물가 주변을 맴돌곤 한다.
답답했던 마음이 다시 뚫린 건 삼년 전 이맘때였다. 백 미터도 넘는 굴뚝 위에 새처럼 손짓하던 두 사람이 있었다. 너무 높아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렵지만 가끔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 때는 마치 새의 날개짓 같았다. 그들은 울산 미포조선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굴뚝 위로 올라갔다. 전해의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한달이 넘도록 내려오지 못한 그들이 세상과 닿아 있던 단 한줄의 희망은 밧줄이었다.
밧줄을 자르려는 구사대와 밧줄을 기필코 당겨 올리려던 굴뚝 위의 사람들. 두 힘의 대결을 결정하는 건 아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쇠파이프가 날아다니고 물대포의 물살에 몸이 밀려도 지켜야 한다. 밧줄에 매단 희망. 굴뚝 위의 생명을 지키는, 그리고 수천만 노동자들의 희망을 지키는 이 줄을 지켜야 한다. '와' 하는 함성에 하늘을 보니 팽팽하게 밧줄을 당겨 올린 희망이 그들에게 닿았다. 신기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두고 온 두레박을 떠올려도 더 이상 마음이 답답하지 않았다.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야겠다. 희망은 구호가 아니다. '희망'처럼 벅찬 단어가 있을까 싶다가도 '희망'처럼 답답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은, 단어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감정이다.
희망은 스스로 내화되는 것들이다. 희망버스에 올랐다고 해서 희망도 덩달아 내게 오르는 것은 아니다. 김진숙이 살아서 내려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의 희망으로 살아 온 건 아니다. 희망은 내 것에서 온다. 내 것이었던 삶, 내 것이었던 염원, 그것이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을 만났을 때 희망이 되는 거다. 내 것이 없으면 희망도 없는 것이다.
희망버스를 탔고 김진숙은 살았다. 그리고 또다른 희망을 위해 평택으로 버스가 출발한다고 시동을 걸 때도 나는 여전히 내 것을 찾고 있다.
희망버스에 실린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의 배후 세력이라며 시인 송경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희망과 나를 이을 수 없었으며, 송경동과 희망과 나는 더더욱 이을 수 없었다. 온 우주에 희망이라는 비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내 속에서 그 비를 만나는 싹이 없다면 희망은 내게는 없는 것이다.
칠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답할 질문이 아니라면서도,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전에도 있었느냐'는 나의 물음에 소년원 시절을 이야기한다. 시인 송경동은 나와 동갑이다. 그가 소년원에 머물 무렵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내가 자주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흘리던 시절에 그는 심하게 더듬던 말 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묻었을 것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탔다. 해운대역을 지나면서 기차는 바다와 평행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전날 들른 포항 구룡포 바다 앞에서 만난 한 상인은 바다는 그래도 끝이 없다고 한다. 나는 그게 바다의 끝없는 길이와 넓이를 뜻하는 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곧 그는 구룡포앞 시장에 붉게 쌓여 팔려나가고 있던 대게를 가리킨다. 씨알도 남기지 않고 인간들은 잡아 들이기 바쁜데 그래도 바다는 또 저렇게 대게를 품어 길러 낸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그렇게 아프면서도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던 내 이웃들의 바다같은 삶을 떠올렸다.
그는 지금 소년원에서 용산, 기륭, 그리고 한진중공업을 향해 내달린 희망버스를 타고 지금 부산 변두리의 구치소에 갇혀 있다. '문학이 내 삶과 잘 만났다'는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도 끝없이 그는 자신의 삶을 구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전혀 부담스럽지도, 무겁지도 않았던, 돌이켜 생각해보면 추억처럼 쌓일 만큼 아름다웠던 투쟁이, 역설적으로 어떻게 그토록 무거운 고통에 빠진 삶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나의 물음이 다시 그에게 되던져졌을 때는 겨우120초 정도의 시간을 남겨둔 때였다. 귤 한 줄과 우유 다섯 개를 사식으로 넣어 달라던 그의 말이 끝나자 일분이 남았다. '일분이나 남았네'라며 그는 남은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희망 버스가 주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즐거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 즐거움이 타인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다.'
아직도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내 안에서 떠도는 희망.
백미터 굴뚝 위로 당겨지던 그 밧줄에 실려, 내가 묻어 두고 온 어린 날의 두레박도 함께 올라왔다. 언젠가, 어느 길 위에서일지 알 수 없지만, 내 안에 묻혀 있던 또 다른 그리움들은 분명 희망을 만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부단히 나를 흔든다. 나를 깨운다.
'문학이 내 삶과 잘 만났다'던 송경동 시인의 말처럼, 그리움이 내 삶과 잘 만나서 희망이되는 그날까지 나는 나를 흔든다. 나를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