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와중에 관악 진보신당 등이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와 최저임금 전액 적용 서명 작업 등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추운데, 열심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확정(12월 21일)된 바로 그 시점에 사업을 시작한 점에 아쉬움이 들었다.
추운겨울 고생하고 있는 사업이 일회적으로 끝나질 않길 바라면서 나의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나처럼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미화원과 경비원의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한 명의 주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이나 전면적용 등의 법개정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 있어야만 경비원의 노동조건 개선은 가능하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고, 이후 감시단속 노동자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평소 경비원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아파트 경비원 수는 약 40만 명, 대학 등 대형건물경비, 청원경찰 등은 37만 명 정도라 한다. 우리는 이분들은 내가 사는 아파트, 내가 근무하는 건물 등 곳곳에서 매일 마주한다.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우리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미화원, 경비원들의 임금이 얼마인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솔직히 나 자신은 동대표가 되기 전까지는 경비원이나 미화원들이 임금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본 적이 없다.
감시단속 노동자는 1987년 최저임금이 생길 때부터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 후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말,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서 최저임금 적용이 결정되었다. 즉 2007년 최저임금의 30% 감액 적용,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20%의 감액 적용, 2012년부터 전면 적용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전면 적용을 앞둔 2011년 하반기,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경비협회, 경비 당사자 등에서 전면 적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달았고, 고용노동부는 몇 차례의 토론 이후인 11월 7일 최저임금 90% 감액적용을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그리고 12월 21일 개정령이 발표되었다. 이로써 2012년 1월부터 2014년 말까지 감시단속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은 90% 감액 적용된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 노동조건은 어떠한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17평형, 24평형대로 800세대에 8명의 경비와 4명의 미화원이 근무한다. 이들은 모두 용역업체에 소속된 파견노동자로 간접고용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상시적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의 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무려 30명의 경비를 교체했다고 한다. 인사를 안 한다느니, 근무시간에 졸았다느니,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2년여의 임기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을 교체할 수 있을까? 경비원,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나는 그렇게 많은 경비원이 교체된 것을 동대표가 된 다음에 알았다.
진보신당 실태조사 관련 기사에서는 감단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못 받고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용역업체들은 법망을 피해가는 방법을 쓰면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등 노골적으로 법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저임금의 근거는 아마도 휴게시간에 있을 것이다. 현재 감시단속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휴게와 휴일 적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 감액 적용이 아닌, 전면 적용이 이루어진다 해도 감시단속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경비원의 휴게시간 증가가 임금인상 효과를 감소시키게 되는 것이다. 경비원의 휴게시간은 휴게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임금삭감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야간에 경비실에 불이 꺼져 있다면 아마도 그 시간만큼 경비원의 임금은 삭감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비원은 점심을 먹다가도 택배가 오면 받아야 하고, 야간 휴게시간에는 교대로 순찰업무를 한다. 휴게시간에 온전히 휴게를 하지 못한다.
2011년 현재 우리 아파트 경비원은 주간 2시간, 야간 4시간으로 휴게시간이 6시간이다. 내년 90% 감액 적용과 최임 인상을 앞두고 우리 아파트에서는 휴게시간을 7시간으로 늘이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또한 중기적으로 경비원을 줄이기 위해 CCTV 설치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휴게시간을 7시간으로 늘이면 2011년 임금 대비 약 14% 인상된다. 관리실 직원의 임금인상, 미화원의 최임 인상 등이 겹쳐 관리비가 만만치 않게 올라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휴게시간을 7시간으로 늘이되, 즉 경비원에 대한 약14%의 임금인상 효과에 만족하며, 나의 동대표 임기 동안에는 경비원 숫자를 줄이지 않는 것에 동의해야만 했다. 한겨레신문 초창기 얘기를 다룬 기사에서 “나는 광고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입이 닳도록 떠들어댔으나 정작 광고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몰랐다”는 대목이 생각난다.
이처럼 법이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법의 여러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감시단속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의 온전한 적용을 위한 보완조치가 필요함을 절절히 느낀다. 이러한 보완조치가 없다면 감시단속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은 결코 고용보장이나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내가 생각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휴게시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즉 감시단속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온전히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감시단속 노동자는 연차와 야간노동 규정은 적용받지만 휴게와 휴일 조항은 적용받지 못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인상될지라도 휴게시간 증가를 통해 임금인상의 효과가 삭감된다. 물론 휴게시간이 증가한다고 해서 휴게시간에 온전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둘째, 아파트 세대수 기준으로 경비원 의무 채용을 고려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개최한 <감시단속적 근로자 최저임금 적용관련 토론회>(2011.10.27.)에서 부산대 권혁 교수는 “아파트 세대수나 지역장소범위를 기준으로 감단노동자의 채용 비중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보완조치가 없다면 최저임금 인상이 경비원의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기 힘들다.
경비원의 임금인상 요인이 고용에 어떠한 영향을 얼마나 미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들마다 입장이 다양하다. 하지만 CCTV, 출입문 자동화 장치 등을 설치하고 경비원을 줄이는 것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비 업무에서도 정보화에 따른 기술실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우선 야간 1명만 줄여보고 경비원의 임금인상을 더 많이 하자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했다.
현재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공동주택 건축시 경비실을 건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세대별 기준 등은 없는 상태다.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을 통해 공동주택에서 세대수별 경비원 배치 등의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고용노동부에는 아파트 경비원 계속 고용을 위해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고령자다수고용촉진장려금’, ‘고령자신규고용촉진장려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경비원을 직접 지원하거나 고령자가 일하는 아파트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중개업체에 불과한 용역경비업체를 지원하는 것이다. 책정된 기금은 얼마이고, 용역업체에 지원된 액수는 얼마인지, 그 실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2012년 상반기 법령이 정비된다고 한다. 고령 경비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방향을 바꾸어나가야 한다.
넷째, 24시간 맞교대 노동은 철폐되어야 한다. 인간의 리듬을 깨트리는 24시간 노동,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24시간 노동은 폐지됨이 마땅하다. 교대제전환지원금을 현실화하고 24시간 노동 폐지 운동을 전면적으로 벌여 나가야 한다.
다섯째, 진보진영에서 지역사업의 고리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를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대표회의는 청소, 경비, 관리사무소 등 다양한 용역업체와 계약관계에 있다. 계약과정에 비리가 없으리란 법이 없다. 비리는 정권만, 거대권력자들만 저지르는 게 아니라, 규모가 작을 뿐 우리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입주민은 누구나 입주자대표회의를 참관할 수 있고, 각종자료도 열람 가능하다. 동대표를 한다면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활동력이 있다면 미화원, 경비 등에 대한 직접고용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아파트도서관 사업 등 사업의 매개 고리는 아주 많은 듯하다. 활동가들이 자신이 주거하는 곳에서 활동가임을 커밍아웃 하고 주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과정이 쌓여가면서 진보진영은 주민들과의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우리가 얘기하는 공동체의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