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뿌리깊은나무, 이름없는 들꽃과 우리시대의 밀본들

[기자칼럼] 한글 반포와 공유, ‘한자’ 지식 독점에 맞선 민중의 대안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옛날 작품들을 역사적으로 연기하는 것이네. 다시 말해 우리 시대와 강한 대조를 이루게 하는 것이지. 그것은 우리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만이 비로소 그 인물들이 옛날 인물들로 나타나기 때문이고, 또 나는 이런 배경이 없다면 그 인물들이 과연 인물로 나타날지가 의문스럽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사극 이론> 中

브레히트는 서사극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가 관객을 극에 몰입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관객에게 극의 해결 열쇠를 쥐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낯설게 하기’ 한발 더 나아가 바흐찐은 삶과 문학의 연결, 문학 외적 영역에 속하는 시대적 상황들이 어떻게 문학에 들어오게 됐는지 바라보게 한다. 22일로 SBS드라마 <뿌리깊은나무>가 종영했다.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방영 중에도 현실 상황과 종종 비교되기도 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사라진 이름 없는 들꽃들

정규 교과과정을 배운 이들에게 한글은 세종이 창제한 글자이다. 때때로 ‘세종은 그저 반포만 했을 뿐이지, 한글을 만든 이들은 집현전 학자들이었다’는 입장도 있어왔다. 뿌리깊은나무는 역사서에 비어있는 한글 제작 과정에서 소이, 강채윤, 정기준 등을 등장시킨다. 세종과 집현전 사이에서 오가던 한글 제작자논쟁에서 역사서에 이름 한 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죽음을 앞둔 강채윤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백성은 늘 고통으로 책임진다. 보십시오, 다미와 똘복이” [출처: SBS<뿌리깊은나무> 캡쳐]

세종은 정기준의 “백성은 자신의 일에 책임지지 않는다. 이도, 백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한글 반포에 흔들렸다. 이에 강채윤은 세종에게 “백성은 늘 책임지며 살고 있다. 자신의 몸이 고됨에도 나라에 꼬박꼬박 세금내며 고통으로 책임진다”며 정기준의 말에 반박했다. 마지막 회에서도 목숨이 끊어지기 전 강채윤은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백성은 늘 고통으로 책임진다. 보십시오, 다미와 똘복이”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한글 반포를 위해 이름 없이 사라져간 소이와 강채윤이 있다. 자동차 생산을 위해 노동으로 책임을 다한, 쌍용차 노동자들이 평택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나섰다. 반도체 선진국이 되기 위해 목숨을 잃어가며 노동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이석채 회장과 주주들의 이익 배당을 위해 인력퇴출프로그램 속에서 죽음으로 몰린 KT노동자들, 자정이 넘어서 철길 보수를 하다 죽어간 철도 노동자들.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소이와 강채윤 등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종영까지 저들이 죽지 않길 바랬을테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나 역사에 이름 한 줄 안남은 저들이 세종의 ‘한글’ 반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가 사는 시대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이 사망했을 때 ‘철강산업역군’ 등의 수사를 붙였다. 포항제철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보상과 맞바꾼 졸속적 한일협정에서 얻어낸 차관으로 지어졌다. 또한 건설 과정에서 죽어간 노동자의 땀으로 지어졌다.

소이는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한글 반포를 위해 필사적으로 해례를 찢어낸 속옷에 옮긴다. 강채윤, 윤평, 궁녀들, 연두 등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마지막에 세종은 궁궐을 거닐며 들꽃의 이름을 묻는다. 세종은 이름 없는 들꽃이라는 궁녀의 대답에 “수 십 년 동안 수 천 번을 바라보았을텐데 저런 꽃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독백한다.

한글 반포, ‘한자’독점에 맞선 대안

정기준은 한자를 무기로 지닌 사대부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한글 반포를 막아내고자 한다. 이에 공식적 반포가 당분간 어렵다고 판단한 세종은 궁녀들을 밖으로 보내 한글을 유포시키고자 했으나 해례인 소이를 없애 반포를 막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기준은 성공하지 못했다.

  감금된 소이가 연두를 통해 한글 배포를 하고자 한다. 연두는 "저는 걱정없겠네요. 이미 글자를 알려줬다"고 대답한다. [출처: SBS<뿌리깊은나무> 캡쳐]

밀본에 의해 감금된 소이는 강채윤이 말했던 왜나라의 환전설을 떠올리고선 연두에게 “연두 네가 쓴 글자 있잖아. 근데 그 글자 알면 온 몸에 부스럼 생긴다. 부스럼 안 생기게 하려면 적어도 3명한테는 알려줘야 해”라고 말한다. 연두는 자신은 이미 글자를 여기저기 알려줘서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문자를, 배움을 권력의 독점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강채윤의 환전설 언급은 소설적 필요장치일 뿐 아니라, 지식·자본 등의 독점에 대한 위험성을 제기한다.

강채윤이 가져온 문서를 백성들이 받아들자 한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다. 한글은 누군가가 독점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퍼져 나간다. 정기준은 한글 독음 소리에 빼냈었던 칼을 집어넣고 사라진다. 지식과 정보의 독점은 가진 자들에게 권력을 준다. 하지만, 한글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알려지자 그 글자를 나누고 더 편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왔다.

예컨대 병원에서 과잉진료에도 쉽사리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려운 의학용어와 기술이 가진 정보 독점 때문이다. 뿌리깊은나무에서 한글 반포 이유로 언급됐던 ‘언로’의 확보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민중들은 독점하고 있는 정보와 언로를 지닌 보수언론의 독점에 맞서 SNS라는 새로운 언로를 퍼뜨리며 대안을 만들고 있다. 한미FTA협정문 공개요구도 같은 의미다.

우리시대의 ‘밀본’들

  한명회와 성삼문, 박팽년의 마주침 [출처: SBS<뿌리깊은나무> 캡쳐]

뿌리깊은나무 마지막회에서 ‘한 가’의 실체는 한명회로 밝혀진다. 역사에서 한명회는 세종의 차남인 수양대군(세조)을 왕에 오르게 한 계유정난의 주동자다. 한명회는 이후 영의정 자리에 오르고, 뿌리깊은나무에도 등장한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을 제거한 인물이다. ‘밀본’이 허구적 설정이기 때문에 한명회와 밀본은 관계가 없다. 다만 역사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한명회의 권력이 뒤바뀐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로 엿보인다.

드라마에서 밀본은 삼봉 정도전의 뜻인 재상총재제 실현을 목표로 하지만 왕권과의 권력싸움일 뿐이다. 드러내놓고 사대부의 권력유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바꿔 말하면 세종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왕권을 내어놓지 않는다. 다만 “백성들이 자신의 길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는 말처럼 백성들이 아래에서부터 스스로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역사에서 사육신은 왕권에 대한 충정을 지켰기 때문에 이들을 지사적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의 명분은 왕권세습의 ‘정통성’이었을 뿐이다. 지배계층 내부의 싸움은 엄청난 명분을 가지고 싸우는 듯 보여 지지만 실제로는 지배계층 내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에 불과하다. 관직 없는 한가도 권력을 쥔 한명회가 될 수 있고, 왕의 총애를 받던 사육신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날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으로 향한 국민참여당 세력의 한미FTA에 대한 입장이 과거와 달라진 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은 여당이었고 현재는 야당이다. 이들의 목표는 다시 국회권력과 대통령직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의 뒷조사를 하는 것과 정권교체 후 이명박 대통령을 감옥에 넣자고 주장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때 등장한 컨테이너박스 산성이 2008년 촛불집회 때 등장한 명박산성에 감흥을 준 것, 2007년 한미FTA 반대를 요구하며 故 허세욱 열사가 몸에 불을 질러도 꿈쩍 않던 국회와 2011년 한미FTA 날치기 통과시킨 여당의 모습이 겹쳐진다.

“지지자와 빠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대상에 대한 비판에 보이는 태도다. 지지자는 대상에 대한 비판이 대상에게 이로울 경우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빠는 대상에 대한 비판에 무작정 반발하며 증오감을 드러낸다. ‘나에 대한 모욕이자 공격’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노무현 지지자는 박근혜 지지자보다 나은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빠와 노무현 빠는 같은 병을 앓는 환우일 뿐이다” 칼럼리스트 김규항의 13일자 칼럼인 ‘지지자, 빠, 파시즘’의 일부분이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는 주장 속에 반MB는 밀본과 왕권의 싸움, 사육신과 한명회의 싸움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