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위(안)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처의 영향력을 축소하지 못하는, 즉 그 동안 과학기술 현장의 염원이었던 범부처 차원의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
출연연 지배구조를 일원화한다는 기본 취지가 무시된 것은 물론,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정부 부처의 조급함과 욕심으로, 오히려 출연연이 양분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부처에 잔류하는 출연연도, 그리고 국과위로 이관하는 출연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기부 정통부 폐지 등, 무모하고 혼란스러웠던 과학기술정책의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MB 정부는 마지막 최악의 ‘닭짓’을 한 셈이다. 정권 말기의 혼란한 틈을 타서 국과위의 생존과 부처 관료들의 영역 다툼은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킨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출연연 법인 단일화다. ‘단일화’라는 용어로 외피를 씌우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출연연 통폐합이다. 구조조정이다. 준비되지 않은 선무당에게 칼을 맡기는 꼴이 되어 버렸다. 중복 연구, 중복 행정, ‘중복’이라는 핑계와 ‘융복합 연구’라는 허울을 무기로 연구 현장은 초토화되기 일보 직전이다.
김도연 국과위 위원장은 “현대과학기술을 관통하는 단어는 융합”이라며 “연구소 간, 부처 간의 벽을 허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발표대로 출연연 간에 벽을 허무는 게 목적이라면, 부처 간의 벽과 이기주의를 허물기 위해 모든 부처를 하나의 행정부로 통폐합해야 하는 것일까? 진단을 잘못하고 있으니 처방이 엉뚱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 8월 국과위가 “국책 연구, 유사 중복 심각하다”고 발표했던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과위는 “로봇 분야 역시 ETRI·생산기술연구원·KIST·국방과학연구소·기계연구원·전자부품연구원·KAIST 등 17개 연구기관이 참여, 약 200억 원부터 수 억 원짜리까지 연구 프로젝트를 잘게 쪼개 나눠 맡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국과위 주장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들 연구 분야들이 국과위 산하로 통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KIST와 기계연구원만 국과위로 통합된다. 나머지는 여전히 부처가 쥐어 차고 있다. MB정부 들어서서 비논리적이고 상식에 벗어난 정책들은 이렇게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변주된다.
분야가 같으면 유사 연구라고 명명한다. 추론이 다르고 연구 방법론이 다르더라도 연구과제 이름만 비슷하면 이들 눈에는 중복으로 보인다. 결과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그 다양함 속에서 ‘우연에 의한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창의적인 발명이 그 다양함 속에서 이루어져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들의 딱딱한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MB정부의 ‘철학의 부재’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출연연 통폐합의 이유로 유사 중복 연구를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연구 현장을 모른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모르면 그냥 가만히 계시라. 다음 정권에 넘기시라. 통폐합의 목적은 출연연 규모의 축소다. ‘효율적이고 작은 출연연’, ‘작은 정부’, 공공부문에 대한 국가 역할의 축소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본질과 나란히 궤를 같이 한다.
2011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가운데 대기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보다 무려 108%가 증가한 1조 2,330억 원이다. MB정부 들어서서 국가 R&D 예산의 배분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편중 지원되어 왔음을 방증한다. 대기업을 위한 사랑, 한미FTA와 같이 1%를 향한 소망은 MB 정부의 국가연구개발 사업에서도 그 빛을 발한다. 그 빛 뒤에 그늘진 과학기술계 출연연은 “유사 중복연구”라는 허울에 뒤덮인 채 조용히 침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