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죽음’조차도 콘크리트 같은 쌍용차 정문을 열지 못했고, “함께 살자”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회사가 살기 위해 너희들은 못 들어온다”는 악질 기업주들의 흘러간 옛 노래만 들려온다. “회사 안에 금속노조가 들어오게 할 수 없다”며 그들이 신봉하는 시장경제의 한 축인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초헌법적 발상을 하는 쌍용차 이유일 사장의 독기어린 말만 들려오고 있을 뿐이다.
19명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이제 살기위해 공장으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이제 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
그들이 이 사회를 향해 ‘살기 위한 손’을 내밀고 있다
그들이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희망의 텐트촌을 만들겠다고 한다. 지치고, 외롭고, 절망의 벽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건 공동체다. 머무는 것이다. 2009년 공장 안에 갇혔던 그들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 앞으로 행진해오는 모습을 도장공장 옥상에서 바라보며 행복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장한 공권력과 무장한 구사대에 쫓겨 오던 길을 되돌아 갈 때, 그들이 느꼈던 그 끔직한 고립감. 그래서 이들은 왔다가 등 돌리고 가는 그런 연대가 아니라 함께 머물며, 함께 어울리고 싶어한다. 함께 말하고 함께 웃고 울고 싶어 한다.
텐트촌(村)은 연대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마을이다. 1박도 좋고, 2박도 좋고, 이 희망의 마을을 풍성하게 꾸며줄 그 무엇으로도 연대할 수 있는 그런 열린 연대의 마을일 것이다. 그들이 꾸미고자 하는 연대의 마을, 바로 희망의 텐트촌이다.
기억하자, 결국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막았다
거짓말과 편법, 불법, 꼼수, 탄압으로 일관한 한진재벌의 조남호 회장이 사실상 무릎을 꿇었다. 재벌들의 이익사수 모임인 경총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그 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철화하거나 후퇴하고 싶어 했겠는가?
“한진중공업이 희망의 버스에 밀려 정리해고를 철회하면 두고두고 안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라는 경총의 우려와 협박은 사실상 무위로 끝났다. 이제 우리는 그 반대로 희망의 버스가 정리해고를 철회시켰다는 것이 단 한번의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쌍용차에서, 재능교육에서, 전국 곳곳에서 제2, 제3의 희망의 버스가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 세상이 실제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희망의 텐트촌’은 제2의 희망의 버스다
희망의 버스는 기획자도 주동자도, 지침도 없이 모두가 주체가 되어 5차까지 이어졌다. 희망의 버스를 보면서 희망버스를 움직이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돌이켜 본다. '희망의 버스에 누가 탑승했는가'는 이 나라 경찰들의 관심사일뿐이다.
크레인 위에서 309일을 버틴 김진숙 지도위원이 진정한 희망의 버스의 원동력인가?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니면 날라리 외부세력이나 이른바 소셜테이너가 희망 버스의 원동력인가?
그런데 진짜 희망버스의 탑승자들은 “도대체 이런 분석이 왜 필요한 거야?”라고 되묻는다. 우리는 한진이라는 악질 재벌기업에 대한 분노와 쌍용차로부터 확인된 “정리해고는 살인”일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공분으로 희망의 버스에 탑승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동안 유보시켜왔던 사회적 양심을 단지 양심이 아닌 “희망의 연대행동“으로 나서게끔 희망의 버스가 그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들이 다시 듣고 싶은 말, “아무도 여러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 안에 갇혀 있던 2009년 7월 어느 날을 기억한다. 수천 명의 공권력이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고, 구사대가 쏘아대는 볼트는 귓전을 스치고, 경찰 헬기가 내리꽂는 최루봉지에 살갗이 타들어가던 어느 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집회대오가 공권력에 밀려 공장 정문을 뒤로하고 밀려 나가던 바로 그 날.
구사대의 확성기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여러분을 버렸습니다”라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말이 지난 2년 6개월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혀 있다. 이제 그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할 때다. 그들의 가슴에 꽂혀 있는 그 아픔, 절망감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금속노조도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고 한다.
그 출발은 사람살리는 희망의 텐트촌을 제대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촌장이 있고, 텐트촌 마을총회가 있고, 어우러지는 마을문화제가 있고, ‘우리가 이긴다’는 선전이 있고, 함께 나누는 급식봉사가 있고, 닫힌 쌍용차의 담벼락을 포위하는 사회적 연대야 말로 바로 희망의 텐트촌이다. 누가 이기는가? 우리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