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바뀌었어요. 들어가는 입구마저도. 전혀 딴 세상이에요. 제가 일하던 설비는 다 없어지고. 딴 라인이 생겨가지고. 저한테 이렇게 일을 했냐, 이걸 사용했냐 묻는데 전혀...모르겠고 기억도 안 나고. 제가 납 도금을 했는데, 아예 그 자체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녀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혈액세포 생성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병이다. 그녀는 이것이 직업병이라 생각했다. 반도체 공장에 다닐 때, 이미 악성빈혈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직원과 전문가들을 따라 자신이 일했던 반도체 공장에 간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자신이 사용했던 설비는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처음 보는 설비 앞에서 전문가들은 자꾸 무언가를 물었지만,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제야 그녀는 직업병 인정이 쉬운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껏 움츠러든 그녀는 자신의 병이 직업병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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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입사, 96년 납중독, 97년 악성빈혈
“저희 때는 삼성 1순위였고, 2순위는 백화점. 삼성하면 그때는 알아줬잖아요. 그래서 돈이나 벌어보자 들어갔는데...”
93년, 고3 겨울 현숙 씨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들어갔다. 당시 반도체 선두주자 삼성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직장이라 여겨졌다. 갓 신설된 온양공장에 배정받은 그녀에게 주어진 업무는 반도체 칩에 납을 도금하는 일이었다.
“칩이 기계에 들어가서 납 도금이 돼서 나오는 거예요. 기계로 한다지만 냄새는 다 풍겨요. 칩이 들어가는 문이 있고 나가는 문이 있으니까요. 그게 문이 아니라 그냥 구멍이었어요. 세차장 가면 고무 같은 걸로 커튼처럼 치렁치렁 해놓잖아요. 구멍에 그게 달린 것도 있고 없던 것도 있고. 또 불량 보느라 수시로 기계 뚜껑을 열었으니까, 냄새야 늘 났죠. 저는 그게 몸이 해로울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일할 당시에는 언니들도 마스크도 안 쓰고 하니까, 해롭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죠.”
납은 발암물질이다. 그러나 현숙 씨가 해로움을 깨달은 것은 2년을 보낸 후였다. 그녀는 건강검진에서 납중독 진단을 받았다.
“건강검진이 있었어요. 기억하기에, 검진 결과에 납중독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때는 납중독이 뭔지도 몰랐어요. 회사는 별 이상이 없데요. 그래도 중독이라 나오니까, 납이 몸에 안 좋구나... 그래서 제가 조장님한테 공정을 바꿔 달라고 말을 해가지고, 트리폼 공정으로 옮겨갔죠.”
현숙 씨는 바로 옆 공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납 도금 공정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곳이다. 여닫는 문을 통해 도금 약품 냄새가 옮겨왔다. 그래도 직접 일하며 맡는 것보다는 덜했다. 그녀는 트리폼 공정이라 불리는 곳에서 반도체 칩을 절단하는 일을 맡았다.
“어우, 힘들었죠. 트리폼 공정 같은 경우는 한 사람 당 맡는 기계가 앞뒤로 4개였어요.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제가 일복이 터졌어요. 그때는 사람도 많지 않아가지고 각자 맡는 기계가 많았어요.
게다가 도금 공정보다 냄새는 덜했는데, 에폭시 가루가 있잖아요. 반도체 칩을 절단하면 검은 가루가 나오는데, 그걸 에폭시 가루라 불러요. 그 검은 색 가루가 주변에 떠다녔어요. 그거 말고도 칩이 깨지거나 하면서 나오는 이물질 같은 게 엄청 많았어요. 칩마다 에어건을 쏘아서 이물질을 제거하는데, 그럼 이물질이 사방에 다 날리는 거예요.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면 답답하잖아요. 그래서 다들 마스크를 안 썼어요.”
검은 분진을 먹으며 트리폼 공정에서 일했다. 이번에는 악성빈혈 진단이 내려졌다. 그녀는 사내 의사에게 상담을 했고, 철분제와 레모나를 복용하라는 말을 들었다. 달리 취해진 조치는 없었다.
2005년 혈소판 감소증, 2008년 재생불량성 빈혈
1999년, 현숙 씨는 퇴사를 했다. 퇴직 후, 여러 일을 하며 지냈다. 반도체 공정에서 반복되던 단순작업이 지겨웠던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현숙 씨는 남편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다고도 했다. 그녀가 미안해하는 이유는 자신의 병 때문이다. 그녀는 임신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악성빈혈을 넘어, 혈소판 수치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애를 갖고 알았어요. 혈소판 감소증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골수 검사 두 번에 거쳐서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진단이 받았고요. 놀랐죠. 저는 피가 지혈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나아야하나 고민을 했죠. 결국 낳았는데, 낳길 너무 잘했죠.
낳을 때 고생을 하긴 했는데... 지혈하는 약을 5병인가 맞았어요. 둘째 때는 그래도 지혈이 안 되가지고, 분만실에서 한 시간 정도 못 나왔죠... 피가 확 쏟아지더라고요. 끔직했어요. 속으로 ‘아... 이렇게 가는구나’ 불안했죠.”
현숙 씨는 아이를 낳다가 자신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인신고를 뒤로 미루자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도 남모르게 걱정을 한다.
“남편도 그렇고... 항상 걱정이죠. 애들도 나 따라 아프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가족사진 속 큰아이는 엄마를 빼다 닮았다. ‘아이들을 낳길 너무 잘했다’는 말하는 현숙 씨의 얼굴은 환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더 아프지 말고 이대로만 지내자고 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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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한 결과
6년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떠올리던 현숙 씨는 말했다.
“일하고 자고 일하고 자고 그 생활 밖에 없었으니까. 지금 들어가라고 하면... 어우. 알고는 못 들어가는데, 일단 들어가면 나오긴 힘들고. 일, 잠, 일, 잠. 진짜 힘들었던 거 같아요. 퇴직하고 다른 일 할 때도, 삼성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딨어’가 머리에 딱 박혀서, 그 생각으로 했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현숙 씨는 여전히 일을 구한다. 그녀 옆에는 조리자격증 기출문제집이 놓여 있다. 일자리를 구하려면 자격증이라도 여러 개 따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일을 하지 않고는 벌이를 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언제 깊어질지 모르는 자신의 병을 늘 염려하는 사람이다. 골수 이식까지 준비하고 있으니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언젠가 현숙 씨와 같은 공정에서 일한 엔지니어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도금설비에 약품을 투입하고 설비를 점검하는 일을 했다. 도금에 쓰이는 납과 화학약품은 냄새도 지독했지만, 닿으면 옷과 장갑이 녹아내릴 정도로 독했다. 그도 악성림프종에 걸렸다. 그는 말했다. 자신도 문제이지만, 설비 앞에 늘 상주하던 오퍼레이터 여직원들은 더 위험했을 거라고. 그의 우려가 현숙 씨를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것도 증명 받지 못했다. 회사에 다닐 당시 아팠던 기록조차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0년이 지난 기록은 파기한다고 했다. 그녀는 15년 전,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그녀가 일한 공정도 사라졌다. 반도체 설비는 끊임없이 가동되고, 빠르게 노후한다. 설비교체 역시 빠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의 이상이 중대한 질환으로 드러나는 일은 몇 십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결국 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어떤 증거도 가질 수 없다. 증거도 없이 직업병 판정을 기다릴 뿐이다. 산재신청을 한 박현숙 씨는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직업병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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