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을 두고 말들이 많다. 1이 무려 6번이나 겹친다며 천년에 한번 찾아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는 한 제과업체의 주장에 대해 네티즌들은 2211년 11월 11일도, 2311년도 모두 같다며 지나친 장삿속이라고 꼬집고 나서고 있다.
한국에서는 길쭉한 초콜릿 과자가 넘쳐나는 가운데, 중국에서 11월 11일은 ‘독신자의 날’로 불린다. 11이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의 모양과 같아, 11과 11이 겹치는 날이 독신자들이 만나는 날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11이 한 번 더 있어 백 년만에 찾아 온 독신자의 날이라며 더 들떠하고 있다. 중국 각 성에서는 혼인신고나 결혼을 하겠다는 커플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충칭에는 독신자들과 1111번의 허그를 하겠다는 “총각 맨”까지 등장하고, 중국 지하철에서는 ‘독신자의 날’을 맞아 11명의 독신 남성이 솔로 탈출을 위해 눈물겨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도 11월 11일은 중국과 같은 독신자의 날이다. 명시적으로 ‘독신자의 날’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러시아 젊은이들은 11월 11일을 길일로 보고 이날 결혼하면 행복이 오래갈 것으로 믿고 있다. 모스크바시 관계당국에 따르면, 1200쌍 이상이 11월 11일 혼인신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평상시보다 두 배 가량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다양하게 11월 11일을 기념하고 있다. 11월 11일이 사람이 서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서서 마시는 날’로 일본 기념일협회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빼빼로 데이처럼 일본 술집들이 술 팔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든다. 연어를 많이 먹는 일본에서는 이날이 ‘연어의 날’이라고도 불린다. 연어를 뜻하는 한자에 圭(규)자가 들어가는데 이 글자가 十一과 十 一을 합쳐 놓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11월 11일 때문에 다소 특별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이집트다. 이집트에서는 얼마 전부터 인터넷에 2011년 11월 11일, 1이 한 줄로 늘어선 날, 이집트 대피라미드에서 ‘수상한 의식’이 거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 때문에 이집트 고고학 최고평의회는 11일에 대피라미드를 폐쇄할 것을 결정했다.
최고평의회는 피라미드 보수작업을 폐쇄 이유로 들었지만 이집트 당국자는 ‘기묘한 의식이 거행된다고 하는 인터넷에서 퍼진 소문들’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라고도 불리는 대피라미드는 카이로 외곽 기자에 있는 3대 피라미드 중에서 최대의 피라미드로 지하통로 등 내부가 공개되어 있다.
우리는 어떨까? 빼빼로 데이라는 상업적인 판촉이 판을 치는 가운데, 정부에서 한자로 十과 一을 위 아래로 이으면 흙토(土)가 된다며 이날을 농민의 날로 정했다. 또 1자가 가래떡처럼 길다고 가래떡 데이로 부르고 있다.
또 이날은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지체장애인협회는 장애인들이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직립을 의미하는 숫자 1이 들어간 11월 11일을 지체장애인의 날로 정했다.
한편, 1자가 6번이나 겹치는 날이라서 출생신고를 11월11일에 맞춰서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에 첫 자리가 111111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기 쉽고 보기에는 좋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주민번호를 받아 봤자 유출 가능성만 더 높아질텐데 과연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11월 11일을 다양한 의미로 다양하게 기념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에게 11월 11일은 또 다른 의미로 기억된다. 11월 11일은 지금부터 16년 전 1995년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총연맹인 민주노총이 탄생한 날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국적으로 민주노조 건설운동이 시작되었고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만들어 지고, 다시 5년이 지나 전국의 노동자들의 단결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이날 건설되었다.
어용노조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조가 되어 당당하게 두 발로 선 날이 바로 이 날이다. 민주노총은 출범과 동시에 많은 노동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지난 16년 동안 쉼없이 노동자들의 권리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왔다. 하지만 민주노총에 대한 따가운 비판이 어느 때보다 높다. 민주노총의 역할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지만 기대만큼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두 발로 당당히 서 나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민주노총에 대한 기대는 뜨거운 비판만큼이나 여전한 것이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11월 11일에 하나가 되었듯, 꺾인 무릎을 펴고 두 발로 당당히 서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들어 간지 309일 만인 11월 10일 오후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그는 걸어서 내려 갈 것이라 했고 약속을 지켰다. 김진숙 위원에게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딱 하루만 더 있다가 다음날 내려 왔으면 했다. 그랬다면 우리는 그날을 ‘김진숙 데이’라며 기념하지 않았을까 한다. 살아서 그리고 두 발로 걸어서 내려오는 날로 말이다.
“사랑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난다”는 어느 시인의 얘기가 귓가에 울린다. 11월 11일은 그렇게 각자 두 발로 선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나는 그런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