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들어 왔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이 무자비한 탄압으로 꺼진 후 이마트에서도 술집에서도 미국산 소고기가 팔리고 있다. 광우병의 공포는 사라지고 국적을 알 수 없는 고기들이 우리들의 식탁을 점령해 버렸다.
그건 그렇고 그 다음은 뭘까. 아마도 마이클 무어의 식코(SICKO)가 돌아올 것이다. 정동영 의원과 남경필 의원 간의 이완용 언쟁과 무관하게 광우병의 공포가 의료민영화의 공포로 되살아날 것이다. 잘라진 손가락을 붙이는데 드는 비용 5천 만 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잘린 손가락을 새에게 먹이용으로 던져주는 식코 영화의 한 장면은 한미 FTA 발효 이후 늦어도 5년 안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돈이 많아 손가락이 잘라져도 그것을 이을 돈이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도 유럽계 병원들이 수도 모스크바에 들어오면서 진찰비로만 5만 원이 나간다. 우리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최근 정부의 약값 인하 발표로 제약사가 반발하고 있지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결정하던 약값을 제약자본도 참여하는 ‘독립적 검토기구’라는 곳의 의견을 받아야 한다. 없던 것을 새로 하게 되었으니 결국 약값은 올라간다. 게다가, 전 세계 제약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계 제약사들은 한미FTA에 있는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더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가 출발선은 아니다. 한미 FTA가 시작되면 의료민영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의료민영화는 이미 가동되고 있고, 노무현 정권 이후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미 FTA 발효를 위한 토대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 추진된 서비스시장 선진화 사업이 그것이다. 이미 삼성생명에서는 의료보험 상품을 팔아 서울에서 고급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나타난 상태다. 문제는 한미 FTA가 이제껏 진행되어 온 의료민영화를 국제법적으로 확인해주고 그것을 더욱 더 노골화 시킨다는 것뿐이다.
순진한 국민들이야 건강보험증은 없어지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미국의 생명보험회사가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증을 그냥 놔둘 리 없다. 삼성생명 보험회사와 지분을 나누는 한이 있더라도 건강보험증을 보험으로 대체할 것이다. 이른바 분쟁 처리제도인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따라 미국의 생명보험회사는 이익 침해를 이유로 대한민국이라는 한 주권 국가를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로 끌어낼 수 있다. 한미FTA에 있는 ‘자동동의 조항’ 때문에 미국의 회사가 한국을 제소하면 좋건 싫건 중재재판소에 끌려가서 판결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의 10배 되는 땅에서 유전자조작 식물이 재배되고 있다. 미국은 그 중에서 거의 절반 되는 땅에서 유전자조작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미국 땅에서 재배된 콩의 87%, 옥수수의 62%가 유전자조작된 것이다. 콩과 옥수수만 그럴까. 면화 등 유전자조작 식물 품종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콩과 옥수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미국인들이 다 먹어 치웠을까. 아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국으로부터 5천만 톤의 콩을 수입해 왔다. 그 콩은 이미 우리 식탁에도 올라와 있다. 2004년 기준으로 미국산 유전자조작 콩 86%, 옥수수 46%가 일본 식탁에 올라가 있다. 2008년 촛불 때에도 미국산 유전자조작옥수수 3만9천 톤이 군산항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들어 왔다.
한미 FTA가 발효하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프리온 병과 유전자조작 원인 병 등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투자자보호라는 미명으로 사실상의 의료민영화가 되어, 병원이 공공성을 잃고 사유화되면서 민간보험이 건강보험증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병에 걸려도 노동자 민중은 병원 문 앞까지 가지도 못할 수 있다. 이처럼 한미 FTA는 식코를 들고 대한민국 영토를 침범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이 노리는 꼼수는 다른데 있다. 그것은 소고기도 유전자조작 식물도 아니다. 미국의 꼼수는 생명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소위 인지자본주의라는 최첨단무기를 한미 FTA를 통해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데에 있다. 인지자본주의는 자동차나 물건 같은 상품을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기술(G), 나노기술(N), 로봇기술(R)이라는 GNR혁명을 기반으로 해서 생명, 신체 자체를 상품화하여 이윤을 축적한다. 2010년 기준으로 바이오산업 시장 규모는 1경을 넘어섰다. 그 중 대다수를 미국 바이오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의 바이오산업 벤처 숫자는 1274개로 60개에 불과한 일본이나 716개에 이르는 유럽의 벤처 숫자를 압도한다. 미국산 소고기는 두 번째 문제일지도 모른다. 대학-기업-정부의 삼각동맹 아래 미국이 전 세계 시장을 거의 휩쓸고 있는 인지자본주의는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이어 과학패권주의를 미국에게 안겨다 줄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시험대일 뿐이다. 커져가고 있는 탄소배출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2050년 이후를 내다보면서 대한민국에 한미 FTA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ISD타령에 총선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미국은 ISD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노리는 꼼수고 매트릭스다. 대한민국은 그 매트릭스에 낚이고 있다. 소고기든 유전자조작식물이든 건강보험증 파괴든 미국은 대한민국의 전 국민과 전 국민의 건강을 시험대로 삼아 인지자본주의라는 최첨단 무기를 이 땅에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미 FTA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동안 진행되어 왔던 물 사유화, 철도 민영화, 국립대 법인화 등 온갖 민영화 논리가 더욱 더 탄력을 받을 것이지만 시민을 포함한 이 땅의 노동자 민중들은 묻지 마 식 정리해고에 이어 식코의 공포 앞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한미 FTA는 미국과 미국의 금융자본, 카길, 몬산토, 타이슨 푸드 등의 세계적인 농축산자본, 의료자본, 국내의 삼성 같은 대자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되돌려주고 시민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에게는 생명에 대한 공포를 안겨다주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는 광우병에서 식코까지 오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할 한미 FTA를 저지하고 제 2의 촛불이 타올라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미 FTA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 따라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대한민국을 미국 생명산업의 식민지로 삼는 제 2의 을사늑약이다. 일본의 을사늑약이 땅과 재산을 강탈해간 사건이었다면 한미FTA는 대한민국의 생명을 약탈해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잘린 손가락을 새의 먹이로 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꼼수를 저지할 것인가. 전국적 수박 재배로 유명한 경상도 고령 땅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지하수 유입 때문에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한미 FTA도 미친 4대강 사업의 효과처럼 수년 안에 돈이 없어 약을 못 먹고 수술을 받지 못하는 미친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분노와 저항에 불을 댕기는 길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인가. 한미 FTA를 저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