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모 업체를 통해 지엠대우에 발을 디뎠다. 대공장이고 옷과 신발도 정규직이 입는 것 그대로 받았다. 옷도 신발도 똑같고 내가 하는 일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정규직이 하던 일이었다. 밥도 같은 식당에서 먹고, 쉬는 시간도 같다. 일하는 장비도 장소도 작업메뉴얼도 모두 원청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명찰정도랄까? 정규직은 흰색명찰이고 비정규직은 진한 남색명찰이었으니까! 내가 그전에 다니던 공장에서도 정규직은 흰색하이바, 비정규직은 노란색 하이바였다. 별게 아닌 색깔의 차이는 적어도 비정규직에게는 묘한 위축감을 심어준다. 그 색깔차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차이가 나니까.
파괴되는 인간관계
공장에 들어온 후 나의 인간관계는 협소해졌다. 친구 아들내미의 돌찬치에도 특근이 잡혀 갈수가 없다. 연말에 친구들이 송년회가 잡혔으니 꼭 참석하라고 하여도 근무일정부터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장이 돌아가는 한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차 월차는 돈으로 받는 게 상식이다. 적은 임금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여유인원이 없어서 월차나 연차를 쓰려면 동료의 눈치부터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처럼 빠진 인원수만큼 라인속도를 조정해주면 좋겠지만 업체는 그런 권한이 없다. 한번은 야간조일때 동료작업자가 아버지 제사 때문에 조퇴를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제사를 자식이 모시는 것은 당연할진데 그 친구는 관리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결국 가지 못했다.
개거품을 물수록 동료들은 줄어 든다
라인속도는 해마다 빨라지는데 인원은 해마다 줄어든다. 신차다 뭐다 개발하면 공정수를 줄이기 때문이다. 두 명이 했던 일을 한명이 하고 세 명이 했던 일을 두 명이 하게 된다. 잔업까지 하면 입에서 개거품이 생길정도다. 남아있는 사람은 개거품이 생기고, 떠난 사람은 생계를 걱정하겠지.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여유인원이 없다. 그래서 라인에서 일을 할 때 가장 힘든 게 화장실 문제이다. 소변이야 참겠지만, 갑작스런 아랫배의 천둥소리는 도저히 참을 길이 없다. 그래서 관리자를 부르지만 관리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바지에 실례를 할 수 없으니 주변동료들에게 잠깐 자기의 일을 부탁하고 다녀온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루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인원을 줄이는 이유가 된다. 세 사람이서 일을 하던 걸 두 사람이 하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모양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권한은 업체에는 없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노동조합 결성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일도 너무 힘들고, 수시로 사람이 짤려 나가는 것도 보기 힘들었다. 연월차도 쓰고 싶었고, 라인작업 중에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보고 싶지 않았다. 조합을 만들고 나서 노동조합 결성을 식당 앞에서 알렸다. 그러면 제일 먼저 업체관리자들이 둘러싸고 사람들이 못보 게 시야를 막는다. 그러면 뒤에 있던 원청 노무팀직원들이 와서 유인물과 플래카드를 뺏는다. 그 과정에서 적절하게 조합원들을 안보이게 때린다. 발로 찬다던지, 복부를 가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업체관리자들은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같이 매일 개거품물고 일했던 동료를 차마 때릴 순 없었을 것이다. 주도면밀하게 하청업체관리자들을 통제하면서 폭력을 사용한 것은 원청노무팀이었다.
계약해지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면 탄압수순이라는 게 있다. 바로 업체의 계약해지이다. 업체는 조합원을 없애거나 활동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계약해지를 당한다. 그래서인지 이때부터는 업체관리자들도 사활을 걸고 조합원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일자리도 보장받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나 그렇듯 본보기로 한두 군데의 업체는 계약해지를 당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비조합원은 새로운 업체에 입사를 하고 일을 이어가지만, 조합원은 새로운 업체가 입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솎아낸다. 그런데 업체를 계약해지하는 권한도,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는 권한도 모두 원청에게 있다. 원청은 맘만 먹으면 업체를 계약해지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조합원을 탄압할 수 있다.
우리는 유령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만큼, 노동강도가 세지는 만큼 회사의 수익은 증대했다. 우리가 개거품을 물고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라인작업 중에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을 정도로 참을성이 늘어가는 만큼, 소리소문없이 동료들이 해고되는 만큼, 회사는 흑자의 폭을 넓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존재가 사람으로 부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람은 사람일진데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유령일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때 부평공장에서만 천명이 넘는 비정규직노동자가 공장을 나와야만 했다. 몇몇 업체는 계약해지했고 몇몇 업체는 부분적으로만 계약해지 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원청사에 막대한 이익을 만들어 주었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유령일 뿐이다.
사장 맞아?
업체관리자들은 작업자들의 불평불만을 원청사로 돌린다. 여유인원이 부족한 것도, 노동강도가 늘어나는 것도, 노동강도가 늘어나는 만큼 사람이 줄어드는 것도 원청사가 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하청업체수준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원청이 해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라인속도부터 작업메뉴얼까지 모두 원청에서 관리하니까! 공구도 기술도 작업장도 모두 원청 것이니까! 하청업체가 하는 것이라곤 한정된 장소에서의 업무지시 같지 않은 업무지시와 월급명세서를 나눠주는 것일 뿐. 부가서비스로 입바른 소리 하는 작업자들 골탕먹이는 것도 추가하자. 이게 현실인데 이상하게도 사장도 아닌 것이 사장행세를 하고 사장인 것이 사장이 아닌 것처럼 행세를 한다.
진짜사장은 왕서방!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갔다면 곰의 사장은 왕서방일 것이다. 여기에 업체사장을 김서방이라고 치자. 김서방은 원래 왕서방이 채용했어야 할 곰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중간수수료를 가져간다. 물론 나머지는 왕서방 몫이다. 곰의 사장은 왕서방일까? 김서방일까? 여전히 재주는 곰이 넘었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 것이므로 당연히 왕서방이 사장이다. 아무 권한도 없는 김서방이 수수료를 떼 간다고 해서 그를 사장으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권한도 능력도 없이 사람만 대주는 업체사장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호주머니는 가벼워지고 노동조건은 열악해진다. 모든 권한과 능력을 가진 진짜사장은 우리를 유령취급하며 우리 노동의 열매만 가져가려고 할뿐 어떠한 책임도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이상 유령으로 살수가 없다. 진짜사장이 비정규직 노동의 열매를 먹은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가짜 사장들은 사라져라! 진짜사장이 책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