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를 간직한 제주 구럼비 바위 |
어미 품만큼이나 이토록 따뜻한 구럼비 바위는 파도를 그 안에 품고, 이름 모를 수많은 생명체들을 그 안에 품고, 제주의 사람들 그리고 그 아픈 역사를 그 안에 품은 채 수 만 년 동안이나 묵묵히 살아오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경이(驚異)! 제주의 역사, 그 자체이다. 이 아름답고 신비한 강정마을의 바위는 예로부터 제주도민들과 타지인들의 무한한 사랑과 경탄을 받아왔으며, 올레길 코스 중에서도 단연 제1경으로 꼽혀왔다. 구럼비 바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이 솟아오르는 바닷가 바위이고, 11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며, 구럼비를 비롯한 강정마을 앞바다는 정부로부터 절대보존지역에, 유네스코로부터는 생물권 보전지역에 지정되어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근에서 청동기 유적마저 발견되었으니, 자연과 인간의 모든 역사가 생생히 살아있는 그야말로 보고(寶庫)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그 구럼비 바위 위에는 포크레인이 올라가 있다. 그 육중한 드릴을 바위에 꽂고 드드드드- 구럼비를 깨부수고 있다. 드드드드- 구럼비가 간직한 신비와 생명과 역사를 깨부수고 있다. 드드드드- 구럼비는 지금 울부짖고 있다.
▲ 제주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는 공사현장 |
▲ <잼 다큐 강정>(2011) 구럼비 촬영 현장 |
김태일 감독은 평화롭기만 했던 마을의 기억을 아들 상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바다가 있고, 내가 흐르고, 질 좋은 쌀이 많이 나던 강정. 그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 강정의 노인은 4.3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싸움. 그 피비린내 나는 기억. 제주는 한 번도 온전히 그들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일본의 해군기지였고, 학살의 현장이었고, 관광객들의 놀이터였다. 노인은 다시 한 번 제주가 외부인들의 농간으로 분란에 휩싸일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감독은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하며 노인의 두려움이 이미 현실이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정부는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분란을 조장하였고, 평화로운 공동체였던 강정 마을은 이제 형제 사이마저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갈라지고 분열되어 버렸다. 마을 초입에 있는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서로 가게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가까운 이 두 상점 사이에는 지금, 남한과 북한을 방불케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해군기지 찬성 측 주민과 반대 측 주민들은 라면 한 봉지도 서로 다른 곳에서 사고, 형은 아우를 좌파종북세력이라 부르며 트럭으로 밀어버리려 하고, 시어머니는 빨갱이 며느리가 미워 며느리의 개에 빨간 칠을 해댄다. 평화롭기만 했던 이 한적한 어촌 마을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 <잼 다큐 강정>(2011), 강정마을회장 강제 연행 장면 |
양동규 감독은 그들의 안내를 받아 범섬에 부는 바람과 강정 앞 바다 속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면, “한 순식간에 이걸 다 없애버리려고 하니까, 허무하지.” 한숨 쉬는 감시단원의 넋두리에 동조하지 않을 길이 없다. 그들의 10년 노력으로 강정 앞 바다는 절대보존지역이 되었고,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인정받았지만, 그딴 것들은 정부의 무대포 정신 앞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부는 왜 이런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해군 출신 최진성 감독은 오타쿠적 기질을 발휘해 항공모함 프라모델을 끌고 다니며, 해군기지 건설의 진짜 목적을 캐묻는다. 강정에 건설될 해군기지는 미국 미사일 방어체제의 일환이 아닌가? 그러나 감독은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하고, 어이없이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짓고 만다.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국방부 앞에 주저앉아 프라모델 조립을 하는 감독. 옆에서 락밴드는 절규한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오. 이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 그러게. 왜 우리는 이러고 있어야 하나.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것뿐인데. 이 모든 게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 때문이리라. 밤섬해적단은 구럼비 위에서 한바탕 굿판으로 그들에게 엿을 먹인다. 해적단, 강정가다. 이번엔 범섬해적단이다.
▲ <잼 다큐 강정>(2011) 구럼비에서 공연 중인 밤섬해적단 |
<100일간의 잼(JAM) 다큐멘터리 강정>은 강정을 향한 9개의 시선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관객들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강정은, 구럼비는 지금 울부짖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100일간의 잼(JAM) 다큐멘터리 강정>은 9월 24일, 제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되었으며, 이후 공동체 상영 등 다양한 경로로 만나볼 수 있다. (출처=[ACT! 76호])
* 편집자 주
본문 중 굵은 글씨로 표기된 부분은 <잼 다큐 강정>의 소제목입니다.
- 덧붙이는 말
-
[필자소개] 박민욱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지금은 한국의 어느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간간이 단편 영화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