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에서 일반인인 우리들은 경찰의 강제수사가 원칙이 아니며, 예외적 경우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만큼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바로 이 예외적 경우에 행해져야 할 강제수사에도 신종방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성기업 사태 사례와 같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체검증’ 역시 신종방식의 강제수사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경찰은 이미 다양한 신종방식을 통한 강제수사를 진행해 왔다. 예를 들면, 기지국 수사라 하여 특정 기지국 범위에 있던 모든 휴대폰 사용자의 인적 사항을 통째로 압수하는 방식의 수사도 그러한 것이다. 또 한 개인의 7년 치 이메일을 통째로 압수수색한다거나, 트래픽 감청이라 하여 인터넷 사용내용 자체를 감시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수사 방식 자체도 문제이지만, 수사과정에서 수집된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역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사용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 이런 정보들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 노동사회단체는 경찰의 강제수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경찰은 이번 신체검증을 ‘3D 입체 영상 채증’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는 최신 기술이 안면인식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시위현장에서 채증한 사진을 컴퓨터를 통해 실제인물과 대조해 범죄행위자를 지목해 내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안면인식 기술을 CCTV에 적용하는 방안이 경찰청의 의뢰에 의해 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만일 이러한 기술이 현실에 적용된다면 SF에서나 보았음직한 일이 실제 일어날 수도 있다. 경찰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지나는 모든 이들의 신원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CCTV를 통해 그 각자를 감시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후 벌어질 일들은 각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지난 7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이미 적어도 2만3천명의 집회 참가자의 채증사진을 영상판독시스템에 입력 관리해왔고, 이 영상판독 시스템엔 판독 대상자의 사진과 함께 집회 이름, 일시, 장소, 참가인원, 불법행위 내용 등이 입력돼 있으며, 두발과 체형은 물론 옷차림까지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심지어 경찰은 합법 집회조차 불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참가자들을 채증을 하고 이를 관리해 오고 있다고 했다.
대법원 판례는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고,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상당한 방법에 의하여 촬영을 한 경우”에 한해 영장 없는 촬영을 허용하고 있지만, 경찰은 이런 판례조차 무시하고 있다.
이같은 경찰의 채증 및 채증자료의 보관, 영상판독 방식 등은 그 자체로 심각한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다. 경찰은 집회의 참가자를 잠재적 범죄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초상권은 물론이거니와, 집회 시위의 자유가 현저히 침해될 수 있다. 게다가 경찰은 보관중인 사진 자료와 영상판독 방식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2만3천명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경찰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3D 입체 영상 채증’을 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후에도 의심이 나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마구잡이 소환을 통해 ‘3D 입체 영상 채증’을 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당연히 촬영을 당한 이들은 정당한 의사표현과 집회 시위의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자체가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어떠한 법률적 근거도 없이 또 다른 감시기술의 기초데이터로 쓰이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는 조끼나 몸벽보를 부착하고 인도를 따라 이동하면 그 이동장소가 식당이든 버스정류장이든 상관없이 불법집회가 된다. 도로에라도 내려서면 교통방해죄라고 하고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공무집회방해가 된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면 진단서를 끊어 3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공무집행방해치상죄를 적용한다.
현실은 경찰의 태도에 따라 합법 집회가 불법 집회가 되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의 집회시위에 대한 탄압의 사례는 최근의 사건만도 들춰봐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6월22일 유성기업 앞에서의 충돌 또한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까지 주로 경찰의 채증, 채증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영상판독과 나아가 이번 신체검증의 문제를 주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했다. 그러나 이글을 읽는 ‘나는 집회에 나갈 일이 없어...’라며 안심해 하는 모든 분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만일 경찰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강제수사와 법적근거가 없는 채증과 채증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등을 내버려 둔다면, 범죄예방이라는 이름아래 당신의 삶 전체는 하늘에 있는 신이 아니라, 근대의 ‘판옵티콘(panpoticon)’을 대신하는 최첨단 감시센터에 앉은 그분에 의해 낱낱이 기록될 날도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분에게 시민은 주권의 원천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