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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 희망버스, 깔깔깔 웃으며 꽃 병들고 갑시다

[4차 희망버스](1) 김진숙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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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정직한 한 노동자의 길

3차례에 걸쳐 진행된 희망버스에 한 번도 타지 못했습니다. 200일이 넘게 85호 크레인이 있는 현장에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 집권시절 김주익 열사를 비롯해 28명의 열사가 죽임을 당했는데 뻔뻔스럽게 희망을 만든다며 정동영도 가서 민주당 깃발 휘날린다는 그 현장엘 한 번도 못 갔습니다.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만 들었습니다. 김진숙 동지를 두고 오는 발걸음에 눈물이 났다는 우리지회, 아산사내하청 조합원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내 나이 일흔여섯에 김진숙 같은 양반처음 본다는 어르신의 말을 들었습니다. 왜 민주노총은 지침을 내리면 희망버스처럼 되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김진숙 동지가 지난 1월 6일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가기 전에 썼다는 그 편지를 본 이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바보처럼 정직한 한 노동자가 만들어가는 생존의 길이 땅위에 없는 현실이 나는 싫습니다.


끝내 죽어 열사가 된 분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답답하던지요. 남들 다 하는 거, 조합원을 핑계로 투쟁을 회피하는 것, 더 큰 싸움을 준비한다고 지금 벌어지는 싸움을 무시하는 것,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며 정당을 기웃거리다 금뱃지 달기위해 표를 구걸하는 그런 것 못했던 사람들, 그런 것은 고사하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힘없는 자들은 비굴한 일상을 누추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진리인 것처럼, 그리하여 아무리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도 사람처럼 좀 살자, 그러기 위해 싸워보자 하면, 아직도 꿈꾸고 있냐고 현실을 정확히 보라고 호통치며 현재와 함께 미래까지 자본에게 넙죽 상납해 버리며 잘난척하는, 그런 것 못했던 사람들이 끝내 차라리 죽더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의 길을 밀어 열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금쪽같은 동지들을 열사로 뒤로하며 우리는 언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꿈에라도 나타나 김주익 열사가 그러던가요. 왜 너만 따듯한 방에서 자느냐, 너도 보일러 키지 말고 양말을 신어도 시린 발로 살아 나를 살려내라, 조합원들이 짤려 나가는데 왜 너는 눈뜨고 보고만 있느냐, 너는 지금 잠이 오느냐, 부릅뜬 눈 감지 못하고 김진숙 님을 불면의 밤으로 내몰며 흔들어 깨우던가요. 김주익 열사는 죽어서도 넋이 살아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김진숙 동지가 등 따신 방에서 배불리 먹으며 허리 펴고 살기를 바랐을 사람 아닙니까. 찬바람 속에 김주익 열사가 낸 길을 따라 김진숙 님이 85호 크레인으로 오르던 새벽, 어쩌면 김주익 열사의 넋은 한 번 더 소처럼 하염없이 울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언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김진숙 동지가 지난 1월 6일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가기 전에 썼다는 그 편지를 본 이후 나는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바보처럼 정직한 한 노동자가 만들어가는 생존의 길이 땅위에 없는 현실이 나는 싫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원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다는 글을 읽으며 울컥 화가 치밀었습니다.

‘나는 우리 조합원이 없어도 살거야. 나는 우리 조합원이 없어도 살 이유를 만들거야. 나는 김진숙 처럼 나이 쉰이 넘어 새해 벽두부터 스스로 불나방이 되어 가파른 85호 크레인에 기어오르며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거야.’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한진중공업 사측의 정리해고, 이 땅의 자본이 만드는 야만적인 착취질서 속에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왜 김진숙 이라는 한사람이 모두 둘러메고 불나방이 되어 크레인을 올라야 한단 말입니까.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도대체 김진숙이 모질고 독하게 마음먹어 불나방이 된다는 결심을 할 때까지 뭘 했단 말입니까. 금속노조는 뭘 하고 민주노총은 뭘 하고 그리고, 나는, 나는 뭘 했단 말입니까.

야만의 땅에 발붙이고 진흙탕을 구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아직도 김진숙 동지가 제 발로 걸어 내려 오게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워 85호 크레인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벼랑 끝에 올려놓고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비탈길인데 깔깔깔 웃으며 날나리 소풍을 가는 희망버스를 조직하는 대한민국은 참 강심장입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하지 못하는 희망을 깔깔깔 웃으며 실천하는 모든 분들이 고맙습니다.


강심장 희망버스가, 김진숙 동지의 가파른 삶에 희망이 되고 죽어 엎드린 조합원들의 어깨를 두드려 일으켜 세우고, 내 새끼들과 오늘 하루를 먹고 사는 것 외에 분노할 줄 모르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실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희망버스가 일본에 숨어있던 조남호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와서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게 만들었으나, 끝내 정리해고는 철회 못한다는 그 입을 닥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삶의 비탈길 오른 사람, 김진숙이 마지막이길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서 더위와 추위와 바람을 견디며 삶과 죽음의 고비를 하루하루 넘기는 것은 계획이 아닙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을 위해 먼저 가신 열사들처럼 온몸과 영혼을 모두 내놓아 불나방이 되겠다고 선택한 벼랑 끝, 김진숙 동지. 85호 크레인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 어떠합니까. 스스로 시대의 깃발이 되고 지침이 되어 살고 있으니 몸은 고단해도 맑고 투명한 동지의 정직한 영혼이 숨 고르고 편안하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스스로 사람이고자 하는 우리의 투쟁을 땅위에 발붙이지 못하게 밀어붙이는 자본의 공세를 막지 못해 다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사람이 이제 김진숙 동지를 끝으로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조남호 회장의 입에서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그동안 죽어간 열사들에게 사과한다는 말이 기어코 나오게 만들어 부디, 김진숙 동지가 가벼운 걸음으로 85호 크레인 그 계단을 스스로 내려올 수 있길 바랍니다. 언제까지 이 야만의 땅에서 무릎 꺾여 사는 강요된 삶을 살다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김진숙 동지가 아직, 크레인 위에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4차 희망버스는 27일 서울로 모인답니다. 부디 시민들이 깔깔깔 웃으며 손에손에 꽃병 들고 참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