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너희들이 책임져라

[연속기고] 2011반핵아시아포럼(5) 경제산업성, 도쿄전력 항의방문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지난 8월 2일 반핵아시아포럼 2011 참가자들은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 항의방문을 진행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운영 주체이고, 경제산업성은 일본 핵발전의 추진과 감시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정부부처다. 전날 국제회의를 통해 경제산업성 장관 카이에다 반리와 도쿄전력 사장 니시자와 토시오 앞으로 전달할 요청서를 채택한 100여 명의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은 먼저 경제산업성으로 향했다.

“우리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경제산업성에서는 계장급 이하 젊은 직원들이 항의방문 대오를 맞았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약 15분간 진행된 면담은 항의방문단이 전달한 요청서 항목별로 경제산업성의 입장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관리들은 일본 정부가 최대한의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예를 들어 요청서 3항 ‘사고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사고의 진실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해 주십시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는 사고지에서 수집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방사능 오염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피 문제에 대해서는, ‘제1 핵발전소에서 고농도 방사능이 나와 사람들을 피난시켰다’고만 답했다. 정부의 대응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이 직접 후쿠시마에서 듣고,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일본의 핵발전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경제산업성에서 일본 관료들과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이 면담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출처: 수열]

“핵발전소 수출은 정부의 소관이 아니다”

이러한 경제산업성의 태도는 핵발전 정책과 핵발전소 수출 문제에서도 극에 달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모든 원자로를 폐로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 ‘핵발전소 폐기는 일본 전체의 에너지 정책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라고 답했다. 전체 에너지 정책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식이다.

핵발전소 수출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책임을 민영 기업에게 떠넘기기기까지 했다. 면담에 참여한 정부 관료는 ‘핵발전소 수출은 정부가 아니라 사기업이 진행하는 것’으로서, ‘정부가 뭐라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나 핵기술의 노하우 전수 문제 등에 대해 수출 대상국과 연결하는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핵발전소 수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거래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일본이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짧은 면담을 마치고 나온 대오는 경제산업성 앞에서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후쿠시마 현민들을 비롯해 수많은 민중들이 미흡한 사고 수습 상황과 재해 지역 구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든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경제산업성의 태도에 참가자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대만에서 온 참가자는 ‘일본과 대만은 무척 가까운 나라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원한다’면서 경제산업성의 태도를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도시바와 히타치가 대만에 원자로를 수출’한 상황을 지적하며, 일본의 핵발전소 수출이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 온 참가자는 ‘후쿠시마 사고로 전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이 세계에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항의방문 대오는 약 30여 분간 경제산업성 앞에서 규탄 발언을 이어간 뒤 도쿄전력으로 향했다.

  경제산업성 앞에서 진행된 항의 행동 모습. 피켓을 들고 있는 이는 ‘일본소비자연맹’의 아디치 유키씨 [출처: 수열]

“복구는 로드맵에 따라”

반핵 선전물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대오는 도쿄전력에 다다랐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던 도쿄전력 본사 건물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경찰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면담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별관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면담장에는 도쿄전력 홍보 담당으로 보이는 3명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면담에 참가한 도쿄전력 직원은 ‘혼란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반핵아시아포럼 여러분의 요청서를 회사로 가져가서 매우 주의 깊게 검토할 것’이라 덧붙였다.

면담 참가자들은 경제산업성에서 동일하게 요청서 문항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도쿄전력 측은 2011년 5월 20일자로 배포된 보도자료를 제시하며, 도쿄전력이 설정한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사고 복구를 위한 로드맵’에 따라 사고 수습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항의방문이 이루어진 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와 2호기 사이에서 치명적 수준의 방사선량(시간당 10Sv, 노출 시 즉사)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세운 로드맵에 따른 수습 절차를 믿으라는 식이었다. 도쿄전력 측은 또한 ‘후쿠시마 지역과 도쿄 지역의 상황에 대해 매일 알리고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빨리, 갖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과 도쿄전력 측이 진행한 면담 장면 [출처: 수열]

“핵발전소 수출은 중단하겠다”

핵발전소 수출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필리핀에서 온 참가자는 도쿄전력이 필리핀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려 하고 있는데, 향후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다. 도쿄전력 측은 후쿠시마 사태 수습과 사고 보상을 위해 해외 자본과 인력을 모두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후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의 수준과 방식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도쿄전력이 감당해야할 몫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 수준의 지분 매각이나 해외 자본 철수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도쿄전력이 핵발전소 수출을 시도하고 있던 대상국으로서는 도쿄전력의 이러한 입장이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 차원에서 핵발전소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볼 때 도쿄전력이 아니라 다른 전력회사에 의한 핵발전소 수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향후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기업은 핵발전소로 이윤을 얻지만, 민중은 피해를 당한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던 대오와 합류해 면담 내용을 공유하고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인도의 반핵운동 전국동맹(National Alliance of Anti-Nuclear Movements)의 S.P.우다야쿠마 박사는 ‘핵발전소를 통해 도쿄전력은 이윤을 얻지만, 민중들은 모든 피해를 떠 안는다’면서 ‘도쿄전력은 악의 기업(evil company)'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도쿄전력 측의 핵발전소 수출 철회 얘기로 희망을 얻게 되었다는 필리핀 참가자는 ’필리핀의 핵발전소 수출 저지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에서 핵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진행된 항의행동. 한 참가자가 ‘멈춰라! 멈춰라! 핵발전소를 멈춰라’라는 피켓을 도쿄전력을 향해 흔들고 있다. [출처: 수열]

후쿠시마 사고의 수습, 핵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소중한 연대의 경험을 한 반핵아시아포럼 참석자들은 1시간 여 가량 함께 항의 행동을 지속한 후 히로시마로 향하기 위해 일본 참석자들과 작별했다.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에 보내는
반핵아시아포럼 2011의 요청서(전문)

* 수신 : 경제산업성 장관 카이에다 반리, 도쿄전력 사장 니시자와 토시오


우리, 아시아 국가(대만,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인도) 20개 조직을 대표하는 50명과 반핵아시아포럼 일본 참가자들은 체르노빌 핵 사고와 같은 수준에 다다른 후쿠시마 핵 사고의 발생에 책임이 있는 여러분에게 아래와 같은 요청을 하는 바입니다.

1. 방사능의 해양과 대기 오염에 대해 아시아 국가 민중들에게 사과하십시오.

2. 환경에 더 이상의 방사능이 포지지 않도록 재빠른 해결책을 마련하십시오.

3. 사고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사고의 진실에 대한 명백한 설명을 해주십시오.

4. 반핵아시아포럼 2011에 참가한 우리는 후쿠시마 지역 민중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습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들에서 모든 아이들과 임산부들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공식적으로 지정된 피난 지역 외의 지역으로 자가 피난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 주십시오. 후쿠시마 사람들과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사고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피폭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정기 건강 검사와 질병 발생시 치료를 위해 보상해 주십시오. 또한 일상생활을 영유하는 데에 있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과 농업, 어업 생산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모두 보상해주십시오.

5. 이런 거대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모든 원자로를 폐로하고 핵발전으로부터 완전히 철수해 주십시오.

6. 후쿠시마 핵 사고가 일어난 일본이 다른 나라에 핵발전소를 수출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작년에 일본이 설립한 “국제원자력개발”(國際原子力開發)을 해체하십시오. 일본이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한 핵발전소 수출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 주십시오.


2011년 8월 2일
반핵아시아포럼 2011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