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하여 지난 8월 3일자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창비주간논평>에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이란 글은 발표했다. 이 글은 인터넷, 제도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누구나 적극 참여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객관적 사실과 진실에 근거하지 않을 경우 해결책을 논의하는 데 많은 혼란과 왜곡이 발생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 김 교수가 제시한 “한진중공업 사태와 연관된 ‘불편한 진실’”이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객관적 사실부터 확인하기 위해 김 교수가 말한 ‘불편한 진실’이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음을 밝히고자 한다.
김 교수는 “먼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를 꼼꼼히 따지지 않아 합리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해법을 논하기 전에 네 가지 ‘불편한 진실’을 밝히고 있는데, 이 모두에서 심각한 사실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주주, 174억 원 만큼 배당은 ‘사실’
첫째, 김 교수는 한진중공업 주주들에게 174억 원이 배당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 교수는 “한진중공업이 400명의 정리해고를 발표하면서 염치도 없이 174억 원의 배당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은 좀 다르다”면서 “결국 주주들에게 실질적 혜택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다수 여론의 이에 대한 비판이 근거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현금배당을 하지 않고 100주당 1주의 주식배당을 실시”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주식배당의 경우 “주식물량이 늘어나면 원칙적으로 그만큼 주가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3만 6000원이던 배당 당시의 주가는 요즘 3만 1000원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이런 주장은 실제 사실과 다르다. 한진중공업은 작년 12월 16일 이사회 결정으로 발행주식 총수 4,781만여 주의 1/100에 해당하는 477,883주를 12월 31일을 배당기준일로 하여 1주당 0.01주만큼 주식배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1주미만의 단수 주에 대하여는 정기주주총회의 전일종가를 기준으로 환산하여 현금지급할 예정”이라고 공시하였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의도적으로 두 가지 사실을 왜곡했다. 우선 비교시점을 왜곡했다. 주가를 비교하려면 주식배당을 공시한 12월 16일과 배당기준일의 전일인 12월 30일의 종가를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 단수 주에 대해서는 12월 30일의 종가를 기준으로 환산하여 현금이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주가는 12월 16일 35,750원에서 12월 30일 37,800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최근 주가가 31,000원으로 떨어진 것은 무상증자에 의한 주식배당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에 의한 것, 예컨대 한진중공업 사태 등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음으로 일종의 무상증자를 통한 주식배당을 해서 “주식물량이 늘어나면 원칙적으로 그만큼 주가가 하락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주식배당이기 때문에 무상증자를 보정할 배당락을 거쳤다. 배당락일(주식을 구입해도 배당을 받을 수 없는 날)이 12월 29일이었고, 따라서 회사의 시가총액을 유지하기 위해 12월 28일의 종가를 1% 증자에 상응한 1% 하락시켜 12월 29일 기준가로 삼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일반적으로도 배당락을 당한 회사의 주가는 대체로 과거 주가를 곧바로 회복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호재로 작용한다. 한진중공업의 경우도 주식배당이 호재로 작용해서 주가가 상승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진중공업의 “주식배당을 당시의 주가로 곱해본 금액”인 174억 원만큼 주주들은 배당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결국 주주들에게 실질적 혜택은 아무것도 없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한진중공업 회사측의 경우에 대한 김 교수의 말은 사실이다. 주식의 액면가인 5000원을 배당주식 수만큼 곱한 24억 원 정도를 잉여금에서 자본금으로 장부처리상 계정만 바뀌었기 때문에 “회사 밖으로 빠져나간 건 아무것도 없다.”
김대중 정부, 정리해고와 신자유주의 정책 수용한 건 역사적 사실
둘째, 김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정리해고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강변함으로써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정리해고가 없을 수 없으며”, “비정규직도 모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존재한다”고 하면서 “다만 정리해고가 무분별한지 어떤지, 그에 따른 고통분담이 공평한지 어떤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비정규직이 남발되는지 어떤지,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행해지는지 어떤지가 나라별로 다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추상적 일반론으로서 현실의 맥락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런 추상적 일반론에 근거해서 “많은 진보파들은 IMF 사태 이후 김대중 정부가 정리해고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IMF사태 이전엔 판례에 의해 정리해고가 실시되었으며, 판례가 생기기 전엔 기업 측이 멋대로 노동자 목을 쳤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말한 대로이다.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로 지난 14년 동안 정리해고가 잇따르고 비정규직 고용이 남발되고 있다. 재계와 사용자 쪽은 정리해고를 앞세워 부당해고를 일삼으면서도 사내하청, 용역, 파견 등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왔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서 근로기준법 상의 엄격한 정리해고 요건과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등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IMF-미국-초국적 자본 세력은 당시 외환위기를 빌미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협박하여 이른바 노동유연화 관련 법 개정을 관철시켰고, 그 후 김대중 정부는 법 개정뿐 아니라 4대 부문 구조조정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수용한 것이 객관적 사실인데, 이것이 무슨 “오해”인가!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87년 이전에는 근로기준법상의 엄격한 정리해고 요건은 법률상의 요건일 뿐이었고, 현실에서는 다른 노동법과 마찬가지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무권리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재벌은 자의대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도성장기여서 고용이 계속 확대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재벌은 필요할 때는 일상적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리해고제 자체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리해고제가 사회적 문제로 된 것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이 등장해서 사회적 세력관계가 바뀌게 되었고, 따라서 근로기준법 상의 엄격한 정리해고 요건이 살아서 법원의 판례를 통해 법적 규정력을 발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도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파산한 경우가 아니면 정리해고를 못하도록 판례를 통해 규제되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된 사회세력 관계에서 재벌과 김영삼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신경영’ 전략과 ‘신노동’ 정책을 통해 정리해고․비정규직화 등 노동의 유연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말에 재벌과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 개정을 날치기 통과해서 정리해고제 완화를 시도했으나 노동계의 총파업 투쟁으로 일시 저지되었던 바 있다.
이처럼 사회세력 관계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리해고제․비정규직화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면 김 교수처럼 관행만을 근거로 엉뚱한 추상적 일반론을 만들어 역사적 사실을 그럴듯하게 왜곡하게 된다.
한진중공업의 수빅 조선소로의 해외이전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아
셋째, 김 교수는 공장 해외이전을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은 기계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보아 기계도입을 반대한 19세기 초반의 영국의 숙련 노동자들의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했듯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러다이트 운동이 역사발전을 거스르는 운동이어서 실패했듯이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이전 반대도 역사발전에 거스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김 교수의 논변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을 전도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지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비판을 대신하겠다.
▲ 한진 수빅 조선소 정문 왼쪽, 높은 담장 때문에 안을 볼 수 없다 [출처: 김승호] |
하나. 러다이트 운동으로 성과를 얻지 못한 노동자들은 이후 기계 도입에 반대하는 운동으로부터 자본과 자본의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전환했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운동을 펼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을 펼쳤다. 기계화를 수용한다고 해서 자본과 자본주의를 긍정한 것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의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사용가치 생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기계화를 통한 생산성 발전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 기계화를 이용하여 노동자를 실업, 장시간 노동, 탈숙련, 저임금으로 몰아넣는 자본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지, 자본주의 발전이 역사발전이므로 자본을 거스르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 아니다.
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지금 반대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기계화가 아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쟁점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계화를 할 것인가 아닌가, 기계화에 따른 인원감축을 실시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쟁점은 생산기지 해외이전에 따른 정리해고에 대해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러다이트 운동이 부딪쳤던 상황과는 맥락이 다르다. 여기에는 생산성의 진보라고 하는 긍정적 요소가 매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셋. 이러한 공장 해외이전 문제를 맥락은 다르지만 기계화와 같은 성격의 문제, 즉 역사진보로서 긍정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 자본수출도 산업혁명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진보적이므로 그것을 일단 긍정하고, 그것이 수반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만 최소화해야 하는가? 자본수출은 잉여가치 생산 측면에서는 즉 초과이윤 획득에는 기여할 수 있음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자본축적과 자본주의 발전에는 일면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사용가치 생산의 측면, 생산성 향상의 측면에서는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생산성은 영도조선소보다 낮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이 더 숙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한진중공업 자본은 왜 영도조선소를 버리고 수빅으로 가고자 하는가? 생산성은 몇 십% 낮지만 임금은 열 배나 적게 지급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높은 착취도와 높은 이윤율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노동자에게는 실업을, 필리핀 노동자에게는 초과착취와 무권리를 부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으로서, 결코 진보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이전과 같은 탈산업화 형태의 자본수출은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부정적으로 평가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사회적, 국가적으로 통제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이러한 자본수출과 자본의 세계화를 맑스도 강조한 “자본의 범세계성”이라면서 역사발전으로서 이것을 긍정하고 이에 굴종하라고 말하는 것은 맑스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강변이다. 이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근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종류의 자본주의/제국주의 변호론일 뿐이다.
김기원 교수의 ‘견강부회’식 비판
넷째, 김 교수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요구를 억지떼인 것으로 은연중에 매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지 않는 부당한 정리해고라는 주장”에 대해 “판단이 쉽지 않다”면서도 “상식에 입각해서” 보면 “한진중공업은 도산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영도조선소의 일감이 앞으로도 계속 부족하다면 어찌될까. 필리핀에서 번 돈으로 일하지 않는 영도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먹여 살리라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수주가 확대돼 간다면, 회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고용을 늘린다. 반대로 일감이 변변찮으면 남은 인력도 해고된다”고 답한다.
여기서 김 교수는 자신이 애초에 “합리적 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하면서 ‘불편한 진실’, 즉 불편하지만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따져보겠다고 했던 자신의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는가 여부 문제는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면서, 오히려 해결방안과 관련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사실관계 대신에 강변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나중의 논의에서 “시장원리를 인정하되 그에 따른 폐해를 시정”하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그러한 자신의 입장에서 일감의 증감에 따라 고용되고 해고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번 돈으로 일하지 않는 영도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먹여 살리라는 게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즉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억지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의는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판단인 것이다.
김 교수는 이에 앞선 논의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불편한 진실’인 것처럼 강변했다. “희망버스를 주도하는 분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다. 국가가 계획에 의거해 노동력을 배분하는 사회주의체제다. 먼 장래엔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날 상황에선 사회주의체제가 비효율적이어서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런 구호는 접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마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반대하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은 매카시즘(빨갱이소동)을 연상시키는 주장이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강변한 것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김기원 교수의 올바르지 않은 해법
다섯째, 이상 김 교수가 ‘불편한 진실’로 제시한 네 가지 문제에서뿐 아니라 해결방안에 관한 나중의 논의에서도 사실왜곡이 두드러진다.
김 교수는 한진 노동자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기업 총수의 책임지는 자세와 결단”을 촉구하면서 그런 사례로 “아이어코카는 크라이슬러 위기 때 1달러의 연봉만 받았고, IMF 사태를 맞아 재벌총수들은 사재를 털었다”고 들고 있다.
우선 ‘1달러 연봉’ 사례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영자가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책정한다’는 드물지 않은 사례는 실제로는 그 반대급부로 엄청난 스톡옵션을 받는다. 즉 기업경영이 회복되면 받게 되는 엄청난 양의 주식으로 정상적인 연봉의 수 십배가 되는 액수의 보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다. 그 ‘1달러 연봉 신화’의 최초의 사례가 바로 아이어코카다. 그런데 아이어코카의 사례는 단순한 스톡옵션을 뛰어넘는 큰 보상이 걸려 있었다. 1978년 파산위기에 몰린 크라이슬러사의 오너인 존 리카도 회장은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하기 위해 아이어코카에게 사장 자리에 오르고 2년 후에 회장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옵션을 걸었다. 아이어코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도 ‘1달러 연봉’이라는 희생을 감수했다. 그리고 그는 ‘1달러 연봉’을 발판삼아 대규모 구조조정, 즉 인원감축, 임금삭감, 계열사 매각 등을 잔혹하게 실시함으로써 3년 만에 크라이슬러사를 위기에서 구출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말하자면 아이아코카는 오늘날의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형을 창출한 그 전도사였다. 따라서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하여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아이어코카를 ‘기업 총수의 책임지는 자세와 결단’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마치 조남호 회장이 구조조정의 칼을 휘둘렀으니 ‘연봉 1달러’의 희생을 보여라는 식이다. 이는 사실관계를 전도시킨 것이다.
다음으로 1997년 외환위기 시 재벌들의 사재출연은 재벌들의 경영 잘못으로 부실화된 계열사의 부채 상환을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삼성은 1999년 4조 3천억 원의 삼성자동차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비상장회사인 삼성생명의 주식 400만 주를 주당 70만 원으로 계산해 2조 8천억 원을 삼성자동차의 채권단에 내놓기로 했다. 외환위기 때 어느 재벌이 정리해고한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재를 털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기업 부실화로 인한 손실을 자본간 관계(기업과 은행)에서 분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지, 노사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재출연 규모가 매우 컸다. 그런데 조남호 회장에게는 ‘껌값’에 해당할 푼돈을 내서 “정리해고 노동자의 생활을 돕고 재취업을 지원”하라는 것은 결국 한진 노동자와 국민을 기만할 전시용 희생이라도 보이라는 주장인 셈인데, 이런 식의 눈가리기용 희생은 자본의 탐욕으로 인한 정리해고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뿐이다.
이처럼 김 교수는 사회문제화 된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불편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객관적 사실, 즉 ‘불편한 진실’을 따져보자고 ‘올바르게’ 문제제기해 놓고, 정작 자신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실이 아닌 것을 ‘불편한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오히려 “합리적인 논의”를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을 모색하는 “합리적인 논의”를 위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진실, 즉 이 사태를 둘러싼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겸손한 양식부터 갖출 것을 김 교수에게 역으로 촉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