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 때 그녀를 만나기 천 미터 전, 봉래4거리에서 폭우와 (경찰의 조)남호차벽과 최루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고동락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천주교신자들도 꽤나 있었다. 그 중 몇몇이 3차 희망버스가 있을 시에는 천주교신자들만의 버스를 한번 꾸려 보자는 소박한 꿈을 꾸었고, 천정연(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실무자들의 노고 덕분에 꿈이 실현되었다. 이번에는 한 명이라도 더 같이 가기 위해 아내에게 부산으로 휴가 가자고 꼬셔서 7월 30일(토) 시청 앞에서 3차 희망버스 32호 천주교버스에 탑승하게 되었다.
85호 크레인 맞은편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관으로 정리해고철회와 해고노동자를 위한 생명평화미사가 저녁 8시 반에 있을 예정이어서 천주교버스는 11시경 서울을 출발하였고, 무사운행을 기원하는 기도에 이어 깔깔깔 도우미의 안내로 버스 승객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고교1학년 남학생부터 60~70대의 왕형님들과 왕누님도 여러분 계셨고, 수도회 신부님 한 분, 광주교구 신부님 한 분, 또 다른 수도회 수사님 한 분과 수녀님 한 분 등 4분의 성직자 수도자도 동승하셨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를 포함한 수도권 천주교신자들이 주축이지만 개신교 신자도 있었고, 엠네스티 상근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수의 무종교인들도 함께 하셨다.
▲ "자~ 떠나자, 부산영도로" 부산으로 출발 직전의 희망버스. [출처: 유선근] |
아무 생각 없이 MB 찍은 것이, 정말 미안해서!
버스에 타게 된 동기로는 “잡혀가면 무료급식 받으려고”(월수 1백 만원 미만, 비정규직, 60대), “입대 전에 아무 생각 없이 MB를 찍었는데, 정말 너무 미안해서”(고대생),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해서”(수녀님), “그냥 곁에 있어 주고 싶어서”(신부님), “(양심 때문에 괴로운) 나 자신을 위해서”(7학년 왕형님), “가지 않을 백 가지 이유 중 단 한 가지도 찾지 못해서”(20대 여직장인), “축제를 벌이기 위해서”(합창단원), “해고의 아픔을 겪어 봤기 때문에”(전직 은행원), “해고 취소 소송 중이라서”(OO시멘트 사무직 노조위원장) 등 다양한 이유로 버스에 탔다.
나는 승차 이유를 방송에서 들은 사례를 빌어 이야기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월남군과 월맹군이 한 마을을 사이에 두고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월남 측의 종교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양측에 통보하길, 노랑 옷을 입고 그들이 들어가서 마을주민들을 데리고 나올 터이니 그 동안은 폭격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두 발의 포탄 오발 사고는 있었으나 직접적인 인명 피해는 없이 수백 명의 주민들이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을 두고 한 베트남 시인은 “기쁜 소식은 신문이 만들지 못한다. 기쁜 소식은 내가 만든다.” 라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희망 휴가를 떠나는 우리 자신이 바로 김진숙 위원과 해고 노동자들, 그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승차한 것이라고. 그리고 이 땅에서 더 이상 노동열사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노파심 또한 간절하다.
오후 6시 반경쯤 자갈치 시장에 도착해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적진에 잠입하듯 개별적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봉쇄된 영도대교를 넘어 청학동에서 하차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통과한 얼마 후 영도다리 근처를 점령하고는 어버이 차력사(버스 밑에서 힘 자랑)와 어버이 파이터들(차도와 버스 안에서 폭력 행사), 관제 검투사(죽창 소지자)들이 합심하여 완전 난리를 벌였다니, 그 분들의 확신에 찬 행동들이 핀란드에서 대형참사를 자행했던 극우 청년을 떠오르게 하여, 마음이 몹시 아프면서 앞으로도 심히 걱정된다.
▲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경찰에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사진/ [출처: 유선근] |
85호 크레인 맞은편으로 가기 위해서 신도브레뉴 아파트 방면으로 가려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진입이 어려웠다. 영도 주민인지 확인되지 않으면 접근을 통제하였다. 이렇게 통제가 강화된다면 4차 희망버스가 다시 영도에 갈 경우, 아예 영도로 주소지를 옮기는 것도 고민해야겠다. 어차피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될 능력은 못되지만, 요즘 공직자들처럼 불법 주소지 이전 경력이 출세에 도움이 될지 누가 아나? 그리고 한 2만 명쯤 영도로 주소를 옮긴다면 영도구청이나 주민들도 좋아할지 모를 일이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과 신부님들의 줄기찬 항의로 30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미사 장소에 도착했고 안도의 숨을 쉬면서 집사람을 챙겨 보니, 아뿔싸! 집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혼잡한 상황에서 놓친 것 같다. 윽! 이제 나는 죽었다. (가뜩이나 컨디션이 별로 여서 힘들어 했는데. 쩝!) 집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 없어서, 찾으러 경찰에게 나가겠다고 해도 못 나가게 하고, 졸지에 견우와 직녀 신세가 되어 미어캣(meerkat)처럼 목만 길게 빼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40분 가량 지나서야 겨우 집사람과 수사님, 몇몇 분들이 합류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아주 짧은 생이별이었지만 동행과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면서 210일이 넘게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김진숙 위원과 오랜 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4인의 사수대 동지들을 생각하니 명치끝이 송곳으로 찌른 듯 몹시 아파왔다.
왜 경찰은 그토록 지나칠 정도로 과잉 방어를 하는가? 도로를 완전 봉쇄하여 부산과 영도 주민들을 힘들게 하고 불편을 극대화하는가? 그것은 모든 원인을 희망버스 때문으로 몰아가 여론을 호도하고 악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남호차벽과 겹겹의 봉쇄를 통해 희망 휴가자들에게 공포와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 이면에 진실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잉 경비는 결국 그들이 떨고 있고, 겁을 먹었다는 반증이리라.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우리 속담에 ‘무서운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라고 했던가?
▲ 미사 도중에 스님들이 불법(佛法)을 설했다. [출처: 유선근] |
진정한 불법집회
종교 집회 장소에는 대낮부터 준비를 하셨던 분들과 150여 명 넘는 여러 종파의 신자들이 있었고 수녀님들도 몇 분 계셨다. 개신교 기도회를 주관하실 몇몇 목사님들이 경찰에 막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신 목사님들이 서둘러 기도회를 진행하셨다. 이어서 불교 법회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스님들도 못 들어오셔서 할 수 없이 ‘함께 살자’라는 주제로 미사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주례를 맡은 장동훈 신부님(인천교구)은 인사말에서 “반갑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안녕하세요?’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어렵사리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반갑다는 말로 대신한다” “힘겹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많은 의인들과 하느님 가까이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사수대 동지들, 많은 해고노동자들과 이 시대의 고통 받는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자”고 하셨다.
말씀의 전례를 하기 직전, 천신만고 끝에 실천불교승가회 퇴휴 스님 등 세 분이 도착하셨고, 불가피하게 미사 도중에 법회가 열리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었다. 퇴휴스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격려와 당부의 말씀을 하셨고, 미사 도중에 법회를 하게 된 것에 대해 고마워하시면서 ‘미사를 더 빛내기 위해 당신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오셨다’고 하셔서 참석자들의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연학 신부님(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회)께서 강론을 하셨는데, “이 자리가 불법집회가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스님들이 도착하셔서 미사에 동참하신 것을 보니 불법(佛法)집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셔서 또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이어서 “동지들의 죽음에 대한 김진숙 혼자만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이제 수많은 부끄러움을 들불처럼 일깨운다”며 황석영 씨의 말을 인용하여 “누군들 잠자고 먹고 일어났을 때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잊을 수 있겠냐”고도 하셨다. 미사 후에는 김진숙 위원을 향해 함성과 불빛으로 마침 인사를 했고, 김 위원도 불빛으로 응답해 주었다. 비록 불빛만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어서 몹시 안타까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크나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종파의 집회였지만 김진숙 위원과 해고노동자들의 안위와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마음만은 하나가 되는 뜻 깊은 자리였다.
미사 후 청학성당 이면도로 인근(한진중공업 동문 방향)의 5천여 명이 넘는 희망 휴가자들과 합류하였다. 2차 희망버스 때는 폭우와 최루액, 폭염 때문에 힘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3차 집회 장소는 85호 크레인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고, 바닷가 바로 근처라 간간히 부는 바람이 시원해서 즐길만했다. 다만, 화장실이 공원 인근에 하나 밖에 없어서 많은 남녀가 “참말로 욕 많이 봤데이~~”
▲ 노래패 '참좋다'의 공연. [출처: 유선근] |
[출처: 유선근] |
외롭던 노래가 합창이 되고 함성이 되고 뇌성벽력으로 새 세상을 열어간다
남호차벽을 몇 십미터 앞두고 여러 구호와 함성이 이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자주 외쳤던 구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리해고를 철회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그 전에 고민해 볼 것이 있다. 모든 노동자가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아야 마땅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 철회 이전에 반드시 정리해고를 시키고 싶은 몇 사람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을 주식회사로 알고 함부로 전횡을 일삼는, 재임 1년 반 남은 이명박 사장님이다. 두 번째는 탐욕에 눈이 먼 무능력한 조남호 회장이고, 세 번째는 재벌과 권력의 몽둥이가 되어 불법을 자행하고 불편과 공포를 조장하는 조현호 경찰청장이다. 마지막으로는 먹을 것 갖고 차별과 편가르기를 선동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이 네 명을 지금 당장 정리해고시킨다면 다음 번 희망버스 4차에 동참하여 복직투쟁에 앞장서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밤새도록 문화제가 벌어졌는데 그 중 오전 2시경 연결된 김진숙 위원과의 전화통화는 감동적이었다. “2차 희망버스 때 최루액과 물대포를 맞는 고통을 당하고도 다시 방문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머지않아 우리 모두 함께 웃게 될 것이고, 함께 얼싸안을 날이 올 테니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이어서 김덕진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우리가 김진숙의 배후다”라고 목청껏 외쳤다.
구호를 외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210여일 전 몹시도 추웠던 날, 외롭게 혼자서 부르기 시작했던 그 노래. 가냘프기 그지없어 들리지도 않았던 그 노래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합창이 되고, 떼창이 되어 우리나라를 넘어 전세계로 메아리 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치 굳게 닫힌 채 나오는 자도 없고 들어가는 자도 없던 예리코의 굳건한 성벽을 커다란 함성으로 무너뜨렸듯이(여호수아기 6,1.16~20), 작고 외로웠던 그 노래는 점점 커져서 엄청난 함성으로 변하여 한진중공업을 감싸고 있는 남호차벽을 무너뜨리고 광화문 명박산성을 무너뜨리고 여의도 무능의사당을 무너뜨리고 노동자, 농민, 서민이 주인되는 대동세상을 여는 뇌성벽력으로 변해가기를 나는 간절히 희망한다.
▲ 문화제가 열렸던 공원 근처 조선소 벽면의 담쟁이>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담쟁이' 중에서 [출처: 유선근] |
내가 생각하는 외부 세력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조남호 회장이다. 조 회장은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이번 사태를 고의로 조장하여 자기 손해는 하나도 안 보면서 정부와 경찰의 손을 빌어 해결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재벌과 대기업 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해고를 당연시 하고 경찰과 검찰, 보수 신문들과 방송사들을 통해 통제와 왜곡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 하느님이 진정한 외부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이, 억울한 이. 아프고 서글픈 이. 헐벗고 굶주린 이, 감옥에 갇힌 이, 울고 있는 이’가 바로 주님이요 혈육이니 약자를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 유성기업 노조원들, 그 밖의 여러 곳에서 탄압 받는 노동자들, 강정 마을 주민들, 명동과 구룡마을의 재개발 주민들, 4대강 유역의 농민들, 그리고 전국에서 신음하는 서민들. 이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라고 요구하시니 하느님이야말로 가장 큰 외부세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서 빨리 이러한 외부세력을 구속하기 바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너희는 고립되었다’라는 손피켓으로 부산 경찰청을 에워싸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3차 희망버스 휴가는 마무리를 하였다. 무박2일의 참으로 피곤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마치 감동적인 성지 순례를 갔다 온 것 같기도 하고, 신나고 재미있는 소풍이나 즐겁고 유쾌한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마음은 한편 뿌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매일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 김진숙 위원과 해고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을지, 우리는 돌아가지만 그들은 어찌 되는 것인지? 또 앞으로는 어찌 해야 할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부산을 출발하여 청도 휴게소에 들렀는데, 와~우~ 세상에나! 전경버스가 일반 차량보다 2~3배나 더 많이 가득한 것이다. 예쁘고 발랄하게 보이는 여경들은 왜 그리 많은지, 앳돼 보이는 고만고만한 청년들은 어디서 그리 많이 왔던 것인지…… 장비를 벗어 던진 그들을 가까이서 보면 아들 같고 딸 같고 조카 같은 친근한 젊은이들인데, 결정권자 잘못 만나 “니들이 정말 고생이 많다~”
잠시 후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들도 돌아가 깨끗이 씻고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쉴 수 있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겠지. 모두들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는데, 오로지 영도 한진중공업에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외로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겠구나. (기사제휴=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