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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과 한진중공업, 누가 외부 세력인가?

[기고] 비정규직과 야간노동 철폐, 나와 내 아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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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대집행이 가까웠다는 말을 들으며 무겁게 강정마을을 나선 뒤 새로 맞는 월요일 아침, 뉴스를 검색하다가 유성기업의 노사 만남이 또 어그러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회사 측의 불참으로 무산되었다는 기사였다. 문득 2차 희망버스 때, 부산역에서 영도로 가던 길 내내 가장 힘차고 가장 유쾌한 행진을 하던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아저씨들의 힘찬 구호와 유쾌한 농담에 즐거워진 우리 아이들은 신이 나서 유성 아저씨들의 뒤를 따르며 "야간 노동 철폐"를 따라 외쳤다. 그러나 아이들은 "야간 노동 철폐"가 왜 유성 아저씨들에게 그토록 절실한 것인지, 한진 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아줌마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아이들은 그 행진에 함께 한 사람은 모두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 희망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도 똑같이 인권이 보장되고 노동권이 보호되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고, 누구나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빗속에서 유성 아저씨들과 그 꿈을 꾸고 있었다. 야간노동철폐, 비정규직 철폐를 이뤄내지 못하면 그 짐이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갈 터였다.

29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대학병원에 행정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내가 배치 받은 부서는 환자들의 진료비를 정산하는 수납이었다. 큰 종합병원의 수납은 24시간 근무가 필수였다. 그런데 야간 근무자가 따로 있지 않고 신입사원들이 주야간 근무를 번갈아 한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오후 5시 30분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퇴근하는 일이 격주로 이어졌다. 집은 인천이고 직장은 서울인 탓에 아침 8시에 칼 퇴근을 하더라도 인천 집에 오면 아침 10시였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어느새 오후 3시. 억지로 몸을 일으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집을 나서야 5시 반까지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환한 대낮에 잠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밤에 일을 하기 위해 억지로 눈을 붙였고, 야간근무를 할 때는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두세 잔씩 먹어대야 했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면 잇몸이 흔들리고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져 환자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잦았다. 겨우 일주일을 버텨내고 주간 근무가 시작되면 처음 이틀은 야간 근무의 후유증으로 아침 시간도 멍해 있기 일쑤고 밤에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때 나의 소원은 어서 1년이 지나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그 야간 근무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격주 야간근무에서 벗어난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위장병과 잇몸질환이었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은 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업을 나가거나,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한다. 뒷배 없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야간 일이다. 편의점, 피시방, 커피전문점.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내 스무 살 시절처럼 야간 노동을 되풀이 하는 현실에 슬프고 화가 난다.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아이들의 몸이 망가져가는 게 아프다.

이미 유럽에서는 100년 전에 사라진 야간노동이 이 나라에서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지금 직장폐쇄로 노사의 대화가 막혀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근무 형태는 29년 전 내가 겪은 것과 똑 같다. 그러다보니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살인적이라고 할 만큼 강도가 높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2,200-240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것은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야간노동은 노동자들을 우울증,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장애, 산재위험에 시달리게 한다. 실제 유성기업에도 야간노동을 하면서 5명의 노동자가 산재,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과 돌연사로 사망했다. 유성 노조를 비롯한 금속노조가 야간 노동 철폐를 위해 싸우는 일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야간노동철폐는 자동차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 서비스 분야의 노동자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뿐만 아니라 커피전문점 까지도 24시간 매장을 늘리고 있다. 대형마트들도 마찬가지다.

12년 전, 유럽에 갔을 때 저녁 7시가 되었는데도 모든 상가가 문을 닫아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막는 것 같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것이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고 감동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1956년부터 유통업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휴식권과 가정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상점영업시간규제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독일 수면의학협회의 자료에는 야간 교대노동자의 80%가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일반적인 노동자의 평균수명이 78살인데 비해 야간 교대 근무하는 노동자의 평균수명은 65살이라고 보고했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IRAC)는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야간노동을 자동차 유해가스나 유해물질인 다이옥신보다 더 높은 발암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OECD 10위권을 오르내린다는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암보다 더 위험한 야간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심야노동철폐와 생활임금의 확보다. 유성기업 노조는 이미 2009년 노사의 합의를 토대로 주간연속 2교대와 월급제실행을 위한 단체교섭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회사 쪽에서는 계속 주간연속 2교대를 반대해오다가 2011년 5월 19일 예정돼 있던 13차 교섭을 타당한 이유도 없이 연기했다. 그리고 5월 18일 직장폐쇄로 13차 단체교섭을 사전에 차단해버렸다. 그뿐 아니라 십 년 넘게 진행해온 노동활동마저 방해하고 있다. 유성 기업의 직장폐쇄는 노조의 쟁의 행위가 본격화 되지도 않았는데도 단행을 한 불법 행위이다. 게다가 용역깡패를 동원해 야간 조 조합원들의 출입을 봉쇄하고 조합원들을 차량으로 위협했다.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시나리오에 현대자동차가 개입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보수 언론에서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고임금 노동자들이라느니, 한진중공업처럼 외부세력이 개입되었다느니 문제를 호도한다. 그들이 말하는 외부세력이란 금속노조, 민주노총이거나 인권단체, 시민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것은 야간노동과 비정규직 철폐가 바로 내 문제, 내 아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싸움을 남의 일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말

* 김중미님은 동화작가이며, 기찻길옆작은학교의 교사다.
* 이 글은 비정규직없는세상 카페에 게재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