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월초순경 구청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오는 각종 안내장은 결코 나에게 좋은 소식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 이런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아니 적중보다는 충격이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귀하는 자녀의 소득조사에서 부양의무기준에 부합됨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 7월부터“수급중단” 예정이라는 안내문이었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나로서는 항시 외줄을 타고 있는 듯 불안정한 상태의 생활을 지속해왔으나 사전예고도 없이 발송된 안내문을 받아보는 순간 그야말로 한순간 억장이 무너지는듯했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청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하는 일 뿐이었다. 감정을 추스리고 통화를 시도했고 담당 공무원에게 자초지종을 문의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부양의무 총 조사를 실시하는 중에 귀하의 자녀소득이 많아 부양의무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답변과 함께 소명자료를 제출하면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존치냐 탈락이냐를 고지해 주겠다는 형식적인 멘트였다.
나는 IMF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한순간에 실직자로 내몰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가정불화는 가증될 수밖에 없었고, 끝내 누구든 피하고 싶어 하는 가정의 붕괴를 맞게 되었다. 그러면서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딸과도 12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제대로 아버지 노릇도 하지 못하며 단절된 채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오늘에 와서 딸이 제도적으로 자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요한 나이에 제대로 아버지 노릇도 못한 나를 부양해야 하는 부양의무자라고 딸을 하루아침에 패륜아로 몰았다. 그리고 지병을 앓고 있는 나에게 그래서 수급을 중단하겠다고 한통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 동안 수급자로 살아오며 나라에 감사하며 살아온 나로서도 이번 정부의 처사는 각 개인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행정편의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소명의 기회가 있고 설령 이것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나와 딸에게 지운 이번 상처는 오히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더욱 어색하게 하고 멀어지게 할 것이다. 언젠가 떳떳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딸 앞에 서고자 했던 나의 작은 꿈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 지난 21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공동행동(공동행동)’은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급자를 대거 탈락시킨 보건복지부를 규탄했다. |
나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1
얼마 전 정부관계기관을 통해 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부양의무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뉴스를 접하였다. 나는 내심 2009년 부양의무자로 사위가 지명되어 실질적 부양을 못 받으심에도 불구하고 수급이 탈락되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도 잠시, 부양의무 총 조사에서 나 또한 부양의무기준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과연 결과가 어떻게 종결 지워질지 부정적 생각이 앞선다. 또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5년 전 입주한 임대아파트에서 3개월 이내로 퇴거해야 하며 지병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의료문제 또한 대안이 없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생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77세의 연로하신 어머니는 어찌되는 걸까? 2009년 이후로 지금까지 1인생계비로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 또한 절망적이다 이러한 모든 고통과 만감이 교차하며 머리를 두드린다. TV의 광고를 도배하는 보험광고는 늙고 병든 이들에게도 보장이 된다고 떠들지만 나는 이러한 대책에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 걱정이다. 7월 급여중지로 공과금조차 납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정말 앞이 캄캄하다
나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2
부양의무기준이 1촌 직계혈족과 배우자라고 알고 있다.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가 넘으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능력이 있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며느리, 사위가 직계혈족의 배우자라는 조건만으로 부양의무의 기준에 포함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단지 이는 부양이지 의무를 법제화 한 것은 이로 인해 또 다른 가족해체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직계혈족의 근간은 가족이라는 것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됨은 즉 결손가정이 되면 부모나 자녀나 온전한 혈족관계가 아닌 비정상적 혈족일 수밖에 없다. 부양의무자는 그 배경과 과정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본다. 혈족관계라 함은 무릇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을 함께함으로써 비로소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그 척도가 된다. 또한 자녀는 성인이 되어 부모를 공양하고 받드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척도인 것이다. 그것을 결손가정의 부모나 자녀를 혈족이라는 생물학적 관계 틀만으로 관계단절을 합리화 하려는 것은 부양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표적 케이스라고 본다. 이런 일들이 심화되면 종국에는 사생아, 고아, 병들고 재산 없고 미혼인 이들만이 안전한 수급자로 생존할 수 있다는 공식도 성립된다.
이번 일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이들 또한 많다. 어떤 이는 아직 통보가 오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통보가 올 것을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어렵게 수급자로 살아가며 거리노숙에서 빠져나와 그나마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내 이웃들은 이번 일로 또다시 거리로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대안은 그것뿐이다. 아니면...
나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3
또한 잠재적 노숙자이다. 결코 사회에 떳떳한 모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수급중지라는 예고문이 아니다. 수급중지라는 것이 슬픔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큰 비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존재감과 자존감이 나로 하여금 마음을 슬프게 하고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무차별적으로 남용한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먼 하늘을 쳐다보며 나의 마음을 다스려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이 왜, 나는 왜, 목숨을 끊어야 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정신질환자가 되어 가는지를... 이러한 모든 일탈은 나만, 나만이 주장하는 이기주의적 발상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기초생활 수급자고 어쨌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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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길(가명) 님은 서울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며,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