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받고, 또 다른 공장을 떠돌고, 다시 핸드폰으로 해고당했던 노동자들.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면서, 훨씬 힘들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절반의 임금을 받아야 했던 가슴 아픈 노동자들의 이름. 비정규직!
우리는 더 이상 노예도 아니고, 일회용 종이컵도 아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지난 10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치열한 싸움을 해왔다. 그 결과 우리의 투쟁은 해도 해도 너무한 절망 사회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펴왔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1895일만에 정규직화를 쟁취하고, 동희오토와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천일을 넘는 싸움 끝에 공장으로 돌아가게 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은 2010년 7월 22일 현대자동차와 올해 7월 1일 금호타이어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대법원 판결을 끌어냈다.
▲ 기륭분회 조합원들 |
희망의 불씨가 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우리 시대 민주와 변혁의 새로운 희망을 깨우고 있는 ‘희망버스의 뿌리에도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녹아있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과 94일의 단식농성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넘어 다양한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이 울림이 실천으로 움직였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기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면서 일상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갖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해 보자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가 만들어 졌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를 통해 희망버스의 기본 정신인 자율, 희생과 헌신, 발품손품정신을 다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7월 18일 ‘정규직 0명 공장’인 현대모비스를 시작으로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 5박 6일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만든 희망버스를 아래로 확산하기 위해서, 우리의 희망이 한 지역 한 공장 한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이고 전 사회적이며 전체 민중의 문제임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는 ‘비정규직 희망버스’를 탔다.
한진 희망버스의 ‘희망’을 전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1996~7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과 1998년 IMF 구제금융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잉태했다. 기업별노조를 넘어선 산별노조와 진보정치가 희망을 심어주었다면, 정리해고와 파견노동이 절망을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그 후 십년이 조금 넘은 지금 희망은 희미하거나 비틀거리고, 절망은 사회를 빈곤과 차별의 지옥으로 만들었다.
정리해고를 수용한 민주노총은 역사적 죄인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에게 아무 잘못 없이 해고를 수용하라는 노예 제도의 도입이었다.
정리해고를 통해 우리는 졸지에 수백 년간 투쟁으로 만들어 온 “잘못 없이 잘릴 이유가 없다”는 사회적 권리를 반납했다. 법이 있어도 요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권리를 빼앗는 것이 자본의 세상인데 권리 자체를 반납한 이들에게 자본의 온정이나 법적 보호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리해고가 도입된 초기에는 부도, 적자 등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해고를 했다. 당시 논리는 ‘다 같이 그냥 죽을래?’, ‘일부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회사를 살려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다시 구제할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의 논리도 없이 회사가 흑자여도 구조조정, 해외이전 등을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회사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어려워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정리해고
더욱 기막힌 것은 정리해고와 함께 파견노동이 도입된 것이다. 해고된 사람들의 갈 길이 파견노동, 비정규직 노동이라는 것은 그때 이미 확정됐다. 그리고 무수한 피눈물이 무수한 비극이 우리 사회를 폭격했다.
상시 노동, 정규 노동의 반대말이 임시 또는 비정규일 텐데 생산 현장에서 상시와 정규노동이 사라져가는 상황, 정리해고라는 두려움 속에 정규직이라는 이름에 매달리며 연대를 포기하는 노동,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에 분노하지만 나만이라도 살자는 체념과 배반의 노동이 판을 쳤다.
‘사람, 대의, 헌신, 의리, 연대, 더불어 함께’ 라는 인간의 언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 이기, 경쟁, 눈치, 배제, 배타’라는 노예의 언어들이 자리 잡았다. 그 사이에 전 사회는 소수 재벌만 살고 전 민중이 죽는 단군 이래 최대의 빈부격차와 차별사회가 만들어졌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그래서 하나의 뿌리에서 발생한 두 줄기 가지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빈곤과 차별의 뿌리가 되었다.
인간의 언어가 사라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 파업은 정리해고의 야만성, 정리해고의 반생명성을 우리 사회에 제기했다. 왜 정리해고가 없어져야 하는지 세상에 알리는데 15명의 생명을 저 세상에 바쳐야 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라는 열사의 피눈물이 있는데도 10년에 걸쳐 두 번의 정리해고를 당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폐라는 근본적 해결 없이는 평생 불안정한 노예노동을 감수해야 함을 보여 준다.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자본가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있고 나라도 산다고 말하던 이들이 값싼 노동을 위해 조국을 떠나기 위해 자행되는 정리해고와 그 빈자리를 채우는 비정규직 노동은 어느새 100% 비정규직 공장이라는 괴물을 보편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정리해고의 ‘반생명성’을 알리기 위해 바쳐진 생명들
정리해고가 있는 한 일자리 창출은 거짓이다. 일할수록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이 만들어 내는 이윤은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을 만들 뿐이다. 열심히 일을 할수록 자기 일자리를 줄이는 어리석은 노동을 끝내지 않는 한 어떤 해결도 다 거짓이다.
실태가 이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쉼 없이 비정규 파견노동을 확대하려 하고, 폐차지원금, 법인세 감면, 고환율정책으로 수조원의 세금을 재벌들의 곳간에 쏟아 부을 뿐이다.
그 결과 정몽구 회장도 아니고 그의 아들 정의선이,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작년 한해 주식 배당금으로 사내하청 노동자 수만 년의 임금을 한 번에 가져가도 도덕적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명박이 만든 재벌의 세상
우리가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 순회를 하는 것은 나쁜 일자리를 없애고 좋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며, 정리해고 ‧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7월 18일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는 현대모비스를 출발하여 현대차 울산공장, STX조선, 광양 포스코,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금호타이어, 현대차 전주와 아산공장, 기아차 화성공장과 쌍용차 평택공장, 시그네틱스 안산공장 등을 돌면서 각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한다.
7월 22일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임을 대법원이 확인해 준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몽구 회장은 아직도 외면하고 있지만 우리는 시민들과 함께 신나게 불법파견 노동의 정규직화는 물론 모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의 중심, 지배의 중심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돈 중심의 세상을 깨기 위해, 신자유주의 재벌 정권에 대한 발랄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촛불의 중심, 양심과 민주주의의 상징 광화문으로 간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신나고 통쾌하게 시대의 어둠을 걷어 내려고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저 높은 하늘에서 채소를 키우는 마음으로 우리 시대 어둠의 심장을 뚫고 생명과 해방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 씨앗을 품은 우리의 싸움은 모든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가슴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광화문에서 확인하려고 한다.
연대의 마당에 당신을 초대하며
신나게 연대하는 우리는 다양한 하나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초대한다. 정규직 노동자, 학생, 시민 모든 분들을 참여와 연대의 마당으로 초대한다.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이 만든 희망의 불씨를 함께 나누고 퍼뜨리는 행복의 장터에서 만나자.
대학등록금이 없는 학교, 비정규직이 없는 공장, 정리해고가 없는 세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연대의 따스한 손길을 내밀고, 함께 비를 맞으며, 광화문 광장에서 청계천 개울에서 함께 어루어져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7월 22~23일 광화문에서 당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