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재개발 3구역 농성자인 '카페 마리'를 용역들이 강제철거하는 과정에서 내팽개쳐진 십자고상이 그 자리를 지키는 촛불시민들 곁에 놓여 있다. [출처: 정현진 기자] |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세입자와 서민의 처지를 도외시한다면 그 정책은 보완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민에게 혜택을 줄 거라는 뉴타운 재개발이 오히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이런 정책은 분명히 변해야 하고 보완되어야 합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고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물질주의는 현대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또한 자신에게만 피해가 없으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는 더 큰 문제입니다.”
상당히 진보적인 발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에 대한 쓴 소리를 마다 않는 재야 또는 시민사회단체나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발언일까? 바로 2009년 7월 19일에 서대문구에 위치한 가좌동 성당을 방문해 주일미사를 집전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발언이다. 가좌동 성당은 ‘가재울 뉴타운 4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대 사회적 현안에 대한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정 추기경의 성향으로 본다면, 정부의 특정 정책과 관련해 지역 본당을 방문한 것이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개발을 도맡아 시행하고 있는 국토해양부 산하 ‘도시재생사업단’ (www.kourc.or.kr)에 따르면, 재개발 즉 도시재생은 “도시커뮤니티 유지 및 활성화 과정적 활동으로서 이해관계자간의 합의형성 등 의사결정시스템을 중시하며, 기존 거주자의 지속적 생활여건 확보의 물리적인 측면, 사회·문화적 기능회복의 사회적 측면, 도시경제 회복의 경제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방식의 정비개념”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이해관계자간의 합의형성 등 의사결정시스템을 중시” 그리고 “기존 거주자의 지속적 생활여건 확보”라는 내용이다. 이는 재개발을 바라보는 교회의 기존 시선과 다를 바 없다. 특히 “기존 거주자의 지속적 생활여건 확보”라는 측면은 표현만 다를 뿐, 앞서 언급한 정추기경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현재 명동성당은 ‘명동관광특구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편입된 상태다. 서울시는 올 6월 8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명동성당 일대 4만8845㎡를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명동관광특구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 내 명동성당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을 심의, 가결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도시관리과 노경래 주무관은 “명동지역은 국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며 “2006년 서울시에서는 명동지역에 대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했다. 명동성당은 관광특구 내에서도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기 때문에 특별 계획 구역으로 묶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명동성당이 명동일대 재개발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앞뒤가 다른 명동성당 개발 목적..관광효과 극대화
명동성당 개발의 목적은 무엇일까? 2010년 12월 15일자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명동성당 개발은 벌써 20년 이상, 김수환 추기경 때부터 추진해온 중요한 사업 중 하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또 다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를 “10여년 숙원 사업, 열린 공간 만들기이며, 개발을 통한 성직자들의 업무 공간 확대야 말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 전 이루고 싶어 하는 염원”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또 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교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애초 구상은 6-7층의 저층 건물 신축이었는데, 고층 건물 신축과 대규모 지하 공간을 조성하기로 방침이 바뀐 것은 임대 수입 등의 영리를 의식할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복수의 관계자도 “명동성당이 명동관광특구 한 가운데 위치해 있기에 관광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라고 시인했다. 다시 말해서, 명동성당 개발은 전문가들의 역사성, 상징성, 안정성에 대한 염려를 뒤로한 채, 결국 수익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이쯤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발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정추기경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세입자와 서민의 처지를 도외시하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개발은 돈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오히려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이런 정책은 변화해야 하고 보완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어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질책하면서 “자신에게만 피해가 없으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는 더 큰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추기경의 발언과 사목지침은 빈말인가
정추기경이 가좌동 성당을 방문한 직후, 서울대교구 문화홍부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기본권이나 생존권 등에 대해서는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그래서 내년 (2010년) 사목교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아 설정될 것”이라고 덧붙이기 까지 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라는 제하의 2010년 사목교서가 정추기경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추기경의 발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명동 재개발 3구역의 ‘세입자들은 여전히 도외시 되어’있고, ‘사람보다는 돈을 중심으로’ 여기는 시행사들의 횡포에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정추기경은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또한 명동성당에 피해만 없다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명동 3구역 영세상인들’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다.
아무리 1년이 지난 사목교서의 정신이라 하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는 어디로 갔나? 서울대교구 측도 매한가지다. 지금 자행되고 있는 시행사들의 횡포로 인한 영세 세입자들의 고통은 그들의 “기본권이나 생존권”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아니기에 “좀 더 적극적”이 아니라 “전혀” 나서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정추기경을 향한 성명’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 가좌동 성당이 재개발로 존치 위기에 몰리자, 추기경이 직접 나서서 ;재개발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당시 성당 측이 재개발 문제에 뒷짐을 지고 있다가 정작 성당 존치 문제가 발생하자 반발하기 시작해 빈축을 산 적이 있다. [출처: 한상봉 기자] |
성당은 안전하니 할 말이 없으신 걸까
교회는 지역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천주교 신자건, 아니건 그것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어차피 다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만일, 정추기경이 가좌동 성당에서 한 발언이 그 지역 전체주민의 삶에 관심을 보인 결과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함이 마땅하다. 아니, 그 말씀 자체로도 지극히 옳은 발언이다. 하지만 명동 재개발 사태를 통해 이미 그 진정성은 처음부터 담보되지 않은, 결국 ‘사람으로서의 교회’가 아닌, ‘건물로서의 교회’ 하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 셈이다.
재개발 상황에서 사람이 아닌 건물을 염려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평화신문> 2011년 4월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가좌동 성당이 가재울 뉴타운 4구역 내 관공서용 택지 옆에 자리를 잡아, 이전 신축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뉴타운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사는 신자들을 비롯한 많은 서민들이 재개발의 미명하에 벌어지는 불의에 신음하고 있다. 성당이 안전하니 이제 하실 말씀도 없으신 것인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명동 재개발 3구역에 대한 명동성당의 대처는 ‘재개발’을 바라보는 정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입장의 결정판이다. 과연 예수께서 이들을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이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다음은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 교구장이었던 카를로 마르티니 추기경과 한 젊은이의 대화다.
젊은이: 예수님이 2000년 전처럼 젊은이들을 움직여 사도로 만드신다면,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당시 바리사이처럼 대하실까요?
마르티니 추기경: 아마 그러실 겁니다. 그분은 교회 고위 당국자들과 싸우실 것이고, 온 세상 이 그들의 사명임을 상기시키실 겁니다.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그들의 울타리 너머를 보게 하는 것이지요.
(<예루살렘 밤의 대화 - 추기경, 청춘의 물음에 답하다>, 분노출판사,2010)
예수님의 ‘성전 정화사건’(요한 2,13-22)을 기억하는가? 얼핏 보면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칠 흠 없는 재물을 파는 상인들과 성전에 바칠 돈을 성전화폐로 환전해 주는 환전상들의 생계수단을 뒤 엎으신 아주 비정한 행동으로도 보일 수 있는 그런 행동을 예수님께서는 왜 하셨던 것일까? 바로 이런 장사꾼들의 뒤에는 성전 사제들이 장사꾼들로부터 일정액의 뇌물을 받고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용인해 준 것을 예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서시자마자 이런 비리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신 것이다.
개발이익과 명예욕에 눈먼 교회의 상징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예수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겸손, 온유, 사랑, 자상함, 자비, 긍휼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평생을 가난한 이들, 억눌린 이들, 눈물 흘리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권력자들과 타협하는 삶을 사셨다면, 우리가 신앙의 근본으로 여기는 ‘십자가’도 ‘부활’도 없었을 것이다.
정작 교회가 품어 안아야 할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부인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놓여있고 그들은 결국 도시를 떠도는 삶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예수의 삶과 괴리되어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눈물 흘리는 자들의 삶을 외면한다면, 더욱이 이런 태도가 교회 자신의 이익을 탐하기 위함이라 한다면, 이는 더 이상 교회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토록 경계하셨던 물신(物神)을 유일한 신앙으로 섬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명동성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맞바꿔 버린 개발이익, 그 안에는 그토록 가난한 사람들을 품어 안으셨던 예수께서 오늘날 명동성당을 바라 보셨다면, ‘카페 마리’ 한 쪽 구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들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지 않으셨을까? 개발을 통해 얻어질 교회의 수익과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 전 이루고 싶어 하는 ‘염원’에 눈이 먼 ‘2011년 한국 천주교회의 불행아’가 현재 명동성당의 자화상이다. (제휴=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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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