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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땅, 제주의 강정마을로 다시 떠납니다

[기고] 강정마을은 제2의 4.3이며 대추리이며 용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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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하였습니까? 바다 건너 멀리 있는 강정 마을을 찾아 떠나는 제 마음은 무척 아픕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마치 적을 대하듯 마을 주민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주민들이 구속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제주는 더 이상 ‘평화의 섬’이 아닙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제주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제주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러한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제주는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역사는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누가‘ 평화의 섬’제주를 파괴합니까? 지금 제주는 4.3사건이 재현되는 듯합니다. 주민들은 해군기지를 반대하면서 벌써 4년째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해군은 “주민 스스로 요구한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결정된 사업”이라며 거짓을 내세우며 대다수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했고, 안보 논리만을 앞세운 채 주민들을 무시했습니다.

정부는 주민들에게 돈으로 유혹하고, 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모든 행정적, 법적절차를 끝내고 강제로 밀어붙여 왔습니다. 기지를 건설하는 업체인 삼성물산과 대림 등 건설자본은 주민들을 상대로 고소와 소송을 일삼고 있습니다. 도지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강정 바다를 절대보존구역에서 해제시켜 해군기지 건설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해군은 국가 안보를 위해 제주도에 반드시 해군기지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해군기지는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사용될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산물입니다.

  문정현 신부는 가난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고목의 뿌리와 같은 굳은 연대를 믿고 있다. [출처: 한상봉 기자(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찢어진 마음으로 찾은 제주 강정마을

저는 2007년 평택 대추리에서 나온 후 아픈 마음을 가지고 강정마을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해군은 몇몇 주민을 포섭해 후보지역도 아니었던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예정지로 기습적으로 결정하고, 국회에선 어마어마한 예산을 통과시킨 상태였습니다. 주민들은 정부와 해군의 강행 추진에 심한 분노와 절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미약하지만 주민들에게 힘이 되고자 그해 겨울 제주의 특산물을 팔아 재정적 지원을 한 것으로 강정마을 주민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강정주민들과 인연을 맺은 후 시간이 될 때 마다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힘들게 싸우고 있는 유가족, 철거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종종 제주의 소식이 들려 왔지만 안타까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나온 후 평생 몸담았던 교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의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교회의 성찰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신음하고 절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외면과 무시였습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서 숨쉬고 살아야 할 교회가 자꾸만 세상과 벽을 쌓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내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교회의 잘못을 마주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절박한 목소리로 ‘우리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애타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전화였습니다. ‘몸이 두개였다면 하나는 육지에, 하나는 제주에 두련만 내 몸은 하나인데 나 보고 어쩌란 말인가! ‘명동기도가 끝나면 강정에 들러보마 ’고 전화를 끊었지만 그 목소리는 귓가에 쟁쟁했고 제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다시 찾은 강정. 주민들은 더 지쳐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지난 4년 동안 짓밟히고 무너진 마을공동체입니다. 4․3사건으로 일가 친척을 잃어버린 제주 도민들은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정 주민들은 이제 제사도 함께 하지 못한다 합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온다는 소식 이후 찬성과 반대로 나뉜 형제, 사촌끼리 왕래조차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 동네에 살면서도 인사조차 불편해졌다고 합니다.

한 주민은 내 손을 붙들며 “우리 남편, 잃을 것 같아요. 싸우다가 죽을 것 같아요. 우리 좀 살려주세요.”하며 울먹였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4년이라는 고통이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져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싸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겠습니까. 이런 강정 주민을 보고 있노라면 4․3사건으로 인해 가족과 친지들을 눈뜨고 잃어버린 그 아픔이 재현되는 것만 같아 무거운 마음뿐입니다.

지금껏 저는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국가권력에 의해 죽거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아파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인혁당이 그랬고 대추리, 용산 참사 현장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육지에서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강정을 외면해 온 것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정마을은 제2의 4.3이며 대추리이며 용산입니다

저는 다시 강정마을로 떠납니다. 정부와 해군에 대한 분노보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보다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강정 주민들의 절규가 내 가슴을 치고 내 몸뚱이를 제주로 향하게 합니다. 내가 그곳에 있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지 강정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주민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빚진 듯 무거운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마도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강정마을이 어떤 곳인지 직접 와서 보십시오. 강정마을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보호구역이자 제주도에서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입니다.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군락지와 붉은발 말똥게의 서식처가 있는 곳입니다. 강정은 자연과 인간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땅과 바다입니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강을 이루어 바다와 만나 하나가 되고 은어가 헤엄치며 우거진 숲길이 있는 생태의 보고입니다. 넓은 바다를 향해 기묘하게 서 있는 구럼비가 있고 그 사이로 용천수가 샘솟는 신비스러운 곳입니다. 이곳을 콘크리트 땅으로 덮어 버릴 수 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평화를 원하면 강정은 지켜져야 합니다.

저는 가난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고목의 뿌리와 같은 굳은 연대를 믿습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과 연대하려는 선한사람들을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희망버스에서 봤습니다. 이름도 없이 찾아와 연대했던 사람들의 힘과 양심을 믿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이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힘을 보태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주에 온다면 올레길 7코스인 강정마을을 꼭 방문해 주민들이 외롭지 않게 격려해 주십시오. 올 수 없는 분들은 트위터등 온갖 인터넷 매체들을 이용해 이 투쟁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주십시오.

오랜 투쟁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정주민들을 위해 투쟁기금 마련에도 함께 해 주십시오.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제주강정평화상단을 꾸렸습니다. 강정에서 직접 만든 전복젓갈을 비롯해 참조기젓갈, 다시마, 소금, 고등어를 판매합니다. 식탁에 맛깔난 음식도 올리고 하루저녁만이라도 강정주민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전국적 연대와 참여만이 죽어가는 강정마을을 살릴 수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의 힘이 모일 때 현실이 됩니다. 다시 한번 굳건한 연대를 호소합니다.

강정마을 소식을 알려면 http://cafe.daum.net/peacekj
길위의 신부와 트위터소통 @munjhj


길위의 신부 문정현 드림
덧붙이는 말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