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오후 세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희망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희망버스가 도로가 복잡해 영도로 들어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누군가의 입에서는 한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당장 오늘 저녁 야간작업을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부터 잠 한숨 못자서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까지 희망버스가 빨리 도착해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비가 퍼붓던 전날과는 달리 날씨가 덥다. 담벼락에 기대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 '더위사냥'을 빨며 희망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는 단 것을 거의 먹지 않는데 오늘은 계속 단 음식이다. 던킨 도넛에 이어 더위사냥까지, 단것이 이렇게도 잘 먹히는 날도 있다니 나도 어지간히도 속이 허했나 보다.
'에이, 여기까지 와서 진숙이 누나도 못보고 .' 더위 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진 한 노동자가 분노인지 원망인지 모를듯한 말을 던진다. 얼굴을 보니 1차 희망 버스를 타고 왔을 때 한진중공업 공장안에서 본 적이 있는 노동자다. 불과 한달 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공장 담을 넘었다. 한진중공업 공장 안에서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고 크레인 위에 있는 김진숙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35미터 위에는 항상 김진숙이 있었다. 약간만 위로 바라보면 그가 있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주었다. 박종철 인권상을 직접 도르래에 매달아 그에게 전해주던 그날, 고단한 심신을 풀고 한진중공업의 한 노동자는 춤을 췄다. 춤추는 그를 보며 김진숙이 웃는다. 그날은 그랬다. 비록 우리가 간절히 원한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만났다. 웃고 춤췄다. 돌아가는 길, 남겨진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은 부둥켜안았다. '꼭 다시 올게요'. 그 약속은 한달 뒤 2차 희망버스로 이루어졌다.
7월 9일 오후, 2차 희망 버스에서 내리니 부산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중호우'라는 말이 실감나는 비였다. 한해동안 내릴 비의 절반 이상이 7,8월에 내린다면, 그 비의 절반 정도가 지금 내리는 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쏟아붓는 비였다. 비가 오는데도 부산역 광장에는 분수대가 왕성한 물줄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비오는 날에 분수대를 가동한 걸 보고 엉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수천명이 모여 있는 부산역 광장을 보니 곧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오랜만에 노찾사의 노래를 듣는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겉모습은 변하지만 목소리는 좀체 변치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노찾사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들이 부르는 '함께 가자 우리'의노랫말을 들으며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해고자들이 공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해고 안된 조합원들이 이쪽 희망버스 대열하고 함께 이동해서 공장 앞에서 만나는 걸로, 그렇게 계획을 했죠. 공장 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앞까지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막아버리니."
올해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노동자는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되었다. 자신은 해고 노동자이지만 그냥 이쪽 희망버스 대열하고 합류하고 있다는 그는 장벽에 막혀 공장쪽으로 이동할 수 없어서 트위터로 공장 앞 노동자들과 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전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고 한다. 일주일만 참자, 이틀만 참자, 하루만 참자, 두시간만 참자, 분 단위로, 아니면 초 단위로 희망버스를 기다렸다던 사람들. 지금 남은 유일한 희망은 희망버스뿐이지만 이 힘든 시간이 지나면 그도 희망버스를 타고 더 어려운 사업장으로 연대하러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연대해줘서 고맙고, 그 힘으로 또다시 연대하겠다는 사람들, 희망버스가 실어 나른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끝내 벽을 넘지 못했어도, 잠 한숨 못자서 머리가 아파도, 우리가 다시 희망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는 백가지도 넘는 이유. 희망버스가 나르는 건 지금,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라는 걸. 3차 희망버스 출발을 예고하는 뉴스가 아침 신문 위로 날아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