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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이 합의 파기 책임진다고?

[기고] 유성기업, 한진중에서 벌어지는 밑도 끝도 없는 ‘합의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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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이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며 사퇴했다. 사퇴를 둘러싸고 ‘밥그릇 싸움’, ‘뒤끝시위’, ‘그만둬도 아쉬울 게 없는 전관예우의 나라’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어찌됐든 불의를 다스리고 부정을 처단하며 선량한 백성들의 안위를 살펴야 하는 형조판서가 떠나는 길목에서 던진 한마디는 이 어지럽고 혼탁한 정세에 ‘한 점’을 찍었다.

높은 님들의 세상에서 벌어진 합의 파기는 그렇게 온화한 풍경이지만, 이곳, 낮은 세상에서의 합의 파기는 피투성이 상처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동지가 산화해 간 85호크레인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최단시간 공권력투입과 조합원 전원연행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지금도 비닐하우스 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모두 일방적인 ‘합의 파기’였다. 한진중공업의 2007, 2010년 노사합의와 유성기업 노사의 2009년 합의는 그냥 파기됐다.

유성기업 노사는 2010년 1월 주간연속2교대제 및 월급제에 합의했다. 올해 5월까지 진행된 특별교섭 내내 회사는 교섭안을 내지 않았고, 결국 노조를 합법적인 파업권을 얻었다. 한진중공업 노사도 2007년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고, 정리해고 등 단체협약상 정년을 보장하지 못할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지만 이를 어기고 2009년 12월 정리해고, 2010년 2월 정리해고 중단 합의 후 다시 2011년 2월 정리해고를 시작했다.

그렇게 노사합의가 밑도 끝도 없이 파기되면서, 노동자들은 두들겨 맞고, 머리가 깨지고,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마지막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있다. 왜 유성기업에 일주일 만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는지, 왜 중무장한 300명의 용역깡패들이 쇠파이프로 내리 꽂고 해머로 위협하는지, 왜 십 수 년, 수십 년 일해 온 공장을 철조망과 바리케이드 사이로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지 정작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모른다.

합의와 약속을 그냥 휴지조각처럼 찢어 버린 자본은 건제하다. 건제하다 못 해 오만방자하다. 아무도 자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노동부, 경찰, 검찰 그 어디에서도 자본을 처벌하지 않는다. 유성기업 사측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 중에 ‘평상시에는 관계기관(노동부, 경찰, 검찰 등)과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고...’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합의파기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본이 건제한 이유는 ‘범죄’를 눈 감는 이 관계기관들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몸뚱이가 되어 천박한 자본주의의 향락을 즐기며 오늘도 벌건 눈으로 노동자들을 때려잡는다.

이게, 이 낮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합의 파기’의 모습이다. ‘아무도 책임지는 자 없으니 사퇴로써 책임지겠다’는 우아한 한마디가 통하는 높은 님들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이곳의 모습이다. 이곳엔 책임져야 할 ‘것’들이 오히려 득의양양 목소리를 높이며, 맞은 놈 또 때리는 것이 그냥 일상이 된 세상이다.

오래 살다(?) 보니 검찰총장 나리가 올바른 말을 할 때가 있구나 싶었다. ‘합의’는 쌍방 간의 밥그릇 정치다. 어떤 일방이 더 많이 갖기 위한 것은 싸움판이거나 전쟁이다. 서로의 밥그릇을 인정하면서 또한 존중하면서 행하는 것이 합의다. 그런 의미에서 한진중공업과 유성기업에서 벌어지는 것은 싸움판이자 전쟁이다. 어느 일방(자본)이 다른 일방(노동자)의 밥그릇을 올곧이 자기 것으로 다 집어 삼키려는 그런 전쟁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