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계약만료를 알리는 ‘짧은’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습니다. 재계약 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럴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이별을 알리는 모습과 태도 자체에도 참으로 속상했지만,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느꼈던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또,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비애였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뉴스나 신문 등을 통해 얘기되던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애환이 바로 그제야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참으로 야속하지요.
그래도, 조금 늦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얘기들을 전하고 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애써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왔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였고 동시에 우리가 졸업한 ‘진보’의 대학,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에 대한 애정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용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해나가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우리가 졸업한 학교이자 우리의 일터이기도 한 학교에서, 우리의 선생님들을 향해 또 우리의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을 향해,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피켓을 들며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참 낯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익숙지 않은 경험 속에서 때론 더 많은 상처를 받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어떨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더욱이 다른 곳과는 달리 적은 인원이 이러한 것들을 감당해야하니 힘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한편에서 아직은 ‘젊다며’ 우리에게 이직을 권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공개간담회, 피켓팅, 서명운동, 후원주점, 항의방문 등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한 많은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결코 쉽게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에겐 이 투쟁이 그동안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울함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평가받고 또 그것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멈추고 학교를 떠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일 해왔으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있기에 우리를 계속해서 이곳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너무나 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와 주장에 대하여 학교 역시 나름의 요구와 주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다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다름이 차이와 차별이 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나가는 방식으로 조율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중심에 사람에 대한 따뜻한 고민들이 풍성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이 때로는 더딜지도, 또 때로는 뼈를 깎는 자기 아픔을 동반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문제를 덮어두고 간다면 언젠가는 곪아 터질 것이 분명합니다. 더 이상 문제를 덮어두려는 것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들을 할 것이며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포함하여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갈등이 평화의 반대말일까요. 예전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행복한 미래를 꿈꿨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율하고 그 안에서 대안을 찾는 모든 이의 말할 권리와 이를 통해 얻는 경험이 서로 도움이 되는 그런 결말을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성공회대학교가 ‘미래의 모습’을 ‘현재의 반성’에서 찾고 지금의 갈등이 또 하나의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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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2008년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를 졸업한 성공회대 졸업생으로, 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이기도 하다. 오는 8월 18일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성공회대가 올해 2월 계약만료 6명의 계약직 행정직원을 해고한 뒤 3월부터 복직 및 정규직화 투쟁을 벌여왔다. 현재 일어일본학과 및 중어중국학과의 학사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