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흥건설산업의 인천 신항만 공사현장에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12시간 주야맞교대로 일하던 180여명의 고용허가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월 24만원 식대를 공제하고, 12시간으로 인정하던 근로시간을 11시간으로 삭감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대하며 두 차례에 걸쳐 6일 간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했다. 다행히 별 충돌 없이 회사와 합의했고, 공사현장은 다시 분주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최초 사건 발생 8개월이 지난 시점인 올해 3,4월 말 회사의 고소 없이 인지수사를 진행한 경찰에 의해 업무방해, 공동폭행 상해, 강요죄로 10명이 전격 체포․구속되고 검찰에 의해 각각 징역 3년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구형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와 ‘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 무죄석방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활동을 통해 뒤늦게나마 한국사회에 알려졌다.
그리고 6월 23일(목) 이주노동자들의 선고공판이 진행된다.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은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을 주동하고,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동료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했다”고 주류 언론들을 통해 여론을 호도해왔다. 하지만 대책위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진실은 180도 달랐다. 또한 국선변호인에게 사건을 인계를 받은 후 6월 16일 마지막 한 차례만 제대로 된 변론이 진행했음에도 수사와 재판 과정 전반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고, 반노동적으로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10명이 아니라 180명 모두가 주동자인 자생적 파업
경찰과 검찰은 현장관리자의 증언만으로 구속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이번 파업의 주동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회사와의 합의 과정을 보면 경찰과 검찰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이 확인된다. 사측은 지도부와의 교섭이 아니라 식당에 180명 전체가 모여 회사 측의 의견에 대해 환호와 야유로 통과여부를 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명의 피의자 중 한 명은 태흥건설에서 일을 시작한 지 3일 밖에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는 점에서 검경의 억지수사를 반증하고 있다.
반면 변호인단은 파업주동자를 지목한 현장관리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는데, (합법적 권리라고는 하지만)그는 무엇이 두려웠는지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며 피의자와 방청객들의 퇴장을 요청한 후 텅 빈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
한편, 파업 참여를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경찰과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피의자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본 재판에서 다뤄지고 있는 폭력사건은 파업과 무관하게 사사로운 다툼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모두 합의하여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들이었다. 퍼즐을 맞춰도 한참 잘못 맞췄다.
통역도 제대로 안 되는 재판이 공정할 수 있는가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의 장벽’이었다. 법원에서 고용한 베트남 통역사는 변호사, 검사, 판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통역해온 것 같았다. 재판을 함께 방청했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대책위 원옥금 활동가는 통역의 50% 이상에서 오역과 내용의 불충분함을 지적했고, 재판 내내 통역사의 통역이 원활하지 않는 부분에서 보충을 하는 역할을 했다. 정확한 지적에 통역사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재판이 돼서야 이주노동자들은 재판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경찰 조서는 짜깁기 리포트인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엉터리로 짜깁기 한 경찰의 조서였다. 이날 재판에서 경찰이 피의자들에게 조서를 정확히 숙지시키지 않은 채 사인을 강요했음이 드러났다. 변호인단은 A 피의자의 조서 내용을 B 피의자에게 그대로 갖다 붙여놓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인을 받은 사실을 찾아냈다. 그동안 이런 문제제기 없이 조사와 재판이 얼렁뚱땅 진행됐으니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3개월 동안 경찰서, 구치소에 갇혀 느꼈을 고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재판부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개별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의 전체 노동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 전반에 영향을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재판부는 무죄선고를 통해 서양에서는 19세기에나 존재했던 악법인 ‘업무방해를 빌미로 한 파업 노동자 처벌’을 폐지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검찰이 강조한 것처럼 이 재판의 핵심은 ‘업무방해의 성립여부’이다. 업무방해로 파업한 노동자를 처벌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국제노동기구(ILO)와 UN사회권위원회는 수차례에 걸쳐 업무방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구미 KEC, 유성기업 파업 등 최근 일어난 파업에 대해서도 업무방해로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으며 노동탄압의 연장선에서 이번 사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무죄선고를 통해 고용허가제의 희생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고용허가제가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불가피하게 파업으로 내몰았고,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효성을 평가받는 고용허가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본보기 삼아 이주노동자들을 탄압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파업이 아니라 고용허가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도적 측면에서라도 이주노동자들은 무죄를 받아야 한다. 이들은 2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 받게 되면 즉시 출국해야 한다. 대부분 미화 1만 달러의 입국 비용을 빚지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남용으로 인해 출국당한다면 본인 뿐 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남은 삶에 커다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사 항소를 하더라도 구치소나 다름없는 보호소에 구금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신변의 제약이 너무 크다. 또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차례의 소환장 발부도 없이 체포되어 3개월씩이나 억울하게 구속되어 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 전체의 문제
선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선고와 관계없이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시장 최하층에서 내국인 노동자와 갈등하기를 강요하는 정부의 인종차별적 반노동자적 행태에 끊임없는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를 활용한 정부와 자본의 노동 분할 전략에 맞설 때만이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