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6월 13일 포이동 판자촌에 불이 났다. 사람들은 금싸래기 강남땅에 판자촌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정부의 늦장 화재진압에 짜증이 났다. 어차피 판자촌사람들이 눈에 가시였는데 잘 됐다는 식이다. 아마도 과거 그랬듯이 강제이주 시키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는 신속하게도 임대주택을 제공하기로 했다며 큰소리를 친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
사람들은 말한다. 임대아파트 주면 좋은 환경으로 이사 가서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은 이래저래 힘들기만 하다. 좋은 조건을 제시 했는데 왜 안 받느냐는 사회적 질타와 화재로 인한 복구가 늦어지면서 악취와 더위 속에서 수습중이다. 곧 장마가 온다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임대아파트. 포이동266번지 사람들에게 좋은 조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허울 좋은 말이다. 500만원~1000만원의 보증금과 월 7만5천원~15만원의 임대료. 그리고 각종 관리비는 모든 것이 타고 재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토지변상금이라는 말도 안되는 빚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집을 사거나 차를 구입할 수도 없다. 국가에서 토지변상금을 이유로 바로 차압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임대아파트는 꿈이다. 평생을 차압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1979년 대통령령에 의해 자활근로대가 조직되었다. 자활근로대는 거리부랑자, 전쟁고아, 넝마주이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명목으로 도시빈민을 한 지역으로 강제수용 시키고 강제노역을 시키던 단체다. 하지만 1981년 자활근로대원들의 집단수용으로 사고가 빈번해지자 분산정책을 통해 강제 수용자들을 10개 지역으로 나누어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포이동 266번지도 그 중 한 곳 이였다. 군대식 통제를 통한 감시와 함께 인권을 짓밟히며 살던 사람들은 1988년 자활근로대의 해체와 함께 아무런 주거대책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
이후 이들에게 날아온 것은 토지불법점유에 대한 토지변상금 청구였다. 불법점유라니. 도시빈민을 돕겠다던 정부의 정책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들어 내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2006년 기준으로 한 가구당 토지변상금은 5000만원~1억8000만원이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이주하고 싶어도 이주할 수 없는 조건에 놓여있는 것이다.
포이동 아름다운 공동체를 그리다
문화연대는 지난 주말 이윤엽 작가와 함께 포이동266번지를 찾았다. 빌딩 숲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멈춰버린 시간인양 사람들은 임시숙소에 늘어진 채로 누워 있었고 주변에 위치한 고물상의 낡은 고물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화마로 불타버린 집들은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그 속에서 날짐승들의 사채가 썩어 악취가 진동을 한다. 태양은 작열하여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한 쪽에선 수도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마을 입구에는 작은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어르신이 신원확인을 요청하신다. 워낙 험하게 탄압을 받아서 인지 매우 날카로운 눈빛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경계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이들에게 방문은 구청 사람들과 용역들이 대부분이었고 섬처럼 존재한 마을은 고립되어 있었다.
마을 주변 펜스를 돌아보던 중 마음이 짠한 느낌이 들었다. 외국브랜드의 최고급 승용차들이 빵빵 클락션을 울리며 지나가고 마을 바로 앞 양재천에는 고가의 브랜드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한다. 간혹 여기가 불난 곳이야? 하며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다.
늦은 오후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찾아온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빈곤사회연대를 중심으로 포이동266번지에 대한 강연과 음식 나누기 등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문화연대도 이번 기획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포이동266번지를 찾은 것이다. 포이동266번지를 찾아온 학생들과 마을입구 펜스에 이미지 작업을 하기로 하고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살고 싶은 공간, 마을 분들이 원하는 공간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자고. 빌딩과 고층건물이 서울을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이 공간만은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이윤엽 작가의 진행으로 이미지 작업에 들어갔다.
빨간집, 노란집, 파란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형상이 그려지고 녹슬고 허름했던 펜스는 점점 꿈같은 마을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어스름 저녁이 될 즈음, 삐까번쩍 차림에 산책을 하던 주변마을 사람들이 이미지를 보기 위해 모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뚱한 표정이다. 어느 꼬마아이가 “나도 그려 볼래” 하고 달려오자 그 아이의 엄마가 이야기한다. “안돼 더러워”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저 멀리 빌딩 숲으로 가버린다. 주민 중에 한 아주머니는 멀리서 그림을 바라보다가 “저기, 저기 나무아래 있는 집이 꼭 우리 집 같구만...” 하시며 불타버린 마을 속 자신이 살던 집을 회상하기도 하신다.
잠시 잠깐일 게다. 포이동 아름다운 공동체 그림이 주는 희망도. 화마가 휩쓸고 간 포이동266번지, 불에 타고 그을린 마을을 뒤로한 채 주민들이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기 까지는 아직도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 불빛을 받은 그림 아래에서 포이동266번지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누가 뭐래도, 잿더미 위에서라도,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 7월3일, 오후7시(일) 포이동266번지에서 “힘내라 포이동, 희망문화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