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언제부터일까요. 이 세상 구석구석의 아픔들을 바라보려 노력하던 대학생들은 자신들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변했습니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어른들에게 자리도 양보하지 않고, 옛날처럼 이 사회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과거의 대학생과는 달리, 현재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농민들이, 철거민들이, 아픈 사람들이 절규하고 자신을 불태워 연대를 요구했음에도 대학생들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불법’이니까,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것은 ‘이기주의적인 것’이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20대의 보수화’라고 하거나, 요즘 젊은 애들을 싸가지가 없다고, 개념이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벼랑으로 밀려나는 우리들
그치만, 아십니까. 실은 우리 20대가, 대학생들이 너무나 아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게으르고 무기력한 20대, 정치에 관심 없는 나쁜 20대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더욱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프니까 알아달라고 속으로 수없이 기대했건만, 그 말을 들어주지 않고 ‘모두가 다 너희들 탓’이라고 손가락질 받게 되어, 우리는 기성세대, 부모, 이 사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저 우리는 속으로 조용히 울어야 했습니다. 그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입시경쟁이니 취업경쟁이니 하는 가혹한 시련들을 혼자서 끙끙대며 버텨내야 했습니다.
청년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남은 절반 중의 절반은 실업자이며, 또 남은 절반의 절반만이 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리고 그 정규직이래봐야 평균근속 연수가 6~7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아시나요. 혹은 대학등록금이 1년에 1000만 원에 육박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졸업하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아시나요. 그리고 그런 가혹한 세상에서 우리 대학생들에게, 사회는 ‘모든 것 너희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며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취직하라’고 이야기했다는 건 기억하십니까.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벌어도 학자금 대출 빚 갚는 것도, 짤리지 않고 정년 동안 일해도 집 한 채 구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냥 ‘너희들 탓’이라고만 했지요.
어린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해 성적이 낮다고,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으로 취업을 하지 못했다고, 우리들을 이 사회는 그냥 무책임하게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이를 악물어야만 했지요. 그런 우리들에게 이기적이라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려갔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그토록 필요했음을
그러나 모두가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부산 영도 앞 바다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떠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을 김진숙, 그녀를 한 번 대학에 초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그녀는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하며 강연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강연의 끝에서 그녀는 머뭇머뭇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 말이 우리들의 가슴을 휘저었습니다. 우리들이 아는 한 누구도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한 기성세대는 없었으니까요. 그저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비난만 들었던 우리들로서는 그 말 한 마디가 큰 위로로 전해졌습니다.
부모세대인 당신들을 마냥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97년 외환위기에서 거리로 내몰린 당신들이 자식들에게 폭력을 가할 때,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을지라도 당신들께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나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넌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했던 마음 이해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 모두를 이토록 아프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들이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들에게 가혹했기 때문인데, 당신들께서는 이 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바라보았으니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상대가 무엇을 할 필요도 무엇이 될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존재 자체가 너무나 소중할 때 쓰는 말이라지요. 그러나 당신들께선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조건을 기준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던 사회의 시선 그대로 우리를 대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실 ‘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조차도 나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하므로…
조용히, 그저 힘껏 손을 잡아주기를
그러나,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기에 조용히 속으로만 아파하던 우리들이 이제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바로 ‘등록금’이라는 우리들의 문제를 갖고 말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거나 대변해주지 않기에 우리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사회에 “아프다”고 소리쳤지요.
만약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가 실현된다면 우리 20대는 처음으로 ‘승리’의 경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건 우리들에게 큰 정치적 경험, 자산으로 남을 겁니다. 하면 되는구나, 패배감과 절망감으로 아파하는 우리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입니다. 우리에게 ‘등록금’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등록금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기에, 우리는 등록금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과 싸울 생각입니다. 청년실업, 최저임금, 경쟁…, ‘신자유주의’ 한국사회를 온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고민해보려 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당신들께서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습니다. 잘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고, 왜 그런 빨갱이 짓을 하느냐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혹은 아예 무관심하게 쳐다보기도 할 테고요.
하지만 김진숙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것처럼, 저는 당신들께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이 물려주고자 했던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았지만 그건 당신들의 탓만은 아닙니다. 그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탓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이 사회를 만들어나가게 될 우리 젊은 세대를 뒤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했다면, 이제는 서로가 미안함, 고마움 가득 손을 내밀어 ‘연대’했으면 합니다. 그 연대의 손 꼬옥 잡고서 열심히 걸어가는 우리의 등을 지켜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께 내미는 이 연대의 마음을 꼭 받아주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