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강령 개정의 핵심은 사회주의 관련 구절을 삭제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당의 강령적 목표를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삭감하려 한다. 후퇴의 공식 명분은 “당이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이나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감안”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11년 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당시와 비교해도 그 위기의 정도와 규모가 훨씬 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 강령에서 반자본주의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는 것은 명백한 이데올로기적 후퇴다. 이번 강령 개정은 그래서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객관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 세력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2008년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당”에서 사실상 “자주파들의 당”으로 바뀌었다.
자주파는 현 시기 남한 변혁은 민주주의 단계라고 본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먼 미래의 일일 뿐이지 변혁 목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실천에서 뜻하는 바는 민주대연합 전략, 곧 이명박 정권에 반대해 노동자 정당과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민주당)이 연합하는 전략이다.
이런 변혁단계론에 따라 자주파는 이미 2003년에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려 시도한 바 있다. 1년 넘게 끈 논쟁 끝에 자주파의 기도는 패배했다. 2009년 정책당대회를 앞두고도 강령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불발로 끝났다.
그러므로 객관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는 실은 자주파 고유의 강령과 전략을 민주노동당에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것이다.
사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미 2009년 말부터 민주대연합 전략을 당의 핵심 노선으로 삼고 실행에 옮겨 왔다(이것이 이정희 대표가 강조하는 “유연한 진보”의 실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비롯해 각종 선거에서 이뤄진 ‘범야권 연대’가 그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이 전략이 선거 영역을 넘어 계급투쟁의 영역으로까지 그 적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불가피한 특정 사안을 두고 불가피하게 연대(전술적 제휴)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상시적으로 연대(전략적 연합)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연합의 완성태는 연립정부가 될 것이다. 노동자 정당이 자본가 정당의 하위 파트너가 돼 한국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것 말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강령 개정 기도는 이런 당의 실천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사후 조처인 것이다.
진보대통합과 강령 개정의 관계
일부 사람들은 진보대통합을 위해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공식 정치에서 자본가 정치의 헤게모니를 진보정치로 대체하려면 진보정치세력의 연합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진보대통합을 지지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구절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사유가 전혀 아니었다. 북한 문제가 진정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이른바 일부 ‘평등파’가 “종북주의” 같은 모욕적이고 부정확한 용어로 민주노동당 전체를 매도하고 국가 탄압에 희생당한 당원들을 제명하려 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지만, 일부 자주파 지도자들이 북한 핵실험을 북한의 자위권이라는 식으로 무비판적으로 옹호한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현재 진보대통합 논의에서도 북한 문제가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도리어 강령에서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부분을 도려내려 한다. 이것이 진보대통합에 이롭겠는가.
또,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정작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함으로써 아직 당 내에 남아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반자본주의자들)을 당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반면,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 계승 발전” 삭제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이나 국민참여당 같은 친자본가적 자유주의 정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눈은 그래서 자신들보다 오른쪽에 있는 세력만 바라보는 외눈박이다.
이렇듯 민주노동당의 우경적 강령 개정은 당 지도부의 우경적 연합 전략(민주대연합 전략)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우경적 계급연합 전략은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 “수권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수권정당”이 되려면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중소상공인(과 대농)들 속에서도 당원을 늘려야 하는데, 이들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의 중요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 선거중심주의와 민주노동당을 노동계급 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바꾸기.
중소상공인이 개인으로서 노동자 정당에 입당할 수 있다. 이때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계급을 배신하고 노동계급의 규율에 복무하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독일의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부르주아 출신이었지만 노동자 운동과 그 정당의 건설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따라서 중소상공인의 민주노동당 입당을 고무하기 위해 노동자 정당의 강령을 후퇴시키려는 것은, 가망성이 거의 없지만, 노동계급을 당의 핵심 계급 기반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이 주창하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긴장을 빚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진보정당의 강력한 사회적 기반은 노동조합(지도자들)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강령 개정안은 노동계급과 나머지 사회 세력(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거의 대등하게 놓고 있다.
선거 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다 보니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강령이 투표에 언제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러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계급투쟁 수준이다. 계급투쟁이 침체기라면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 극소수일 것이고, 반대로 경제 위기가 심각하고 계급투쟁이 고양된다면 대중의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을 설득할 수 있게 된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열 명을 탄생시킨 배경은 노무현 탄핵 반대 투쟁 물결이었다.
정치적 상징 제거하기
현 민주노동당 강령은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힌다. 반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 계승 발전”)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고 돼 있다(국가사회주의라는 용어는 형용모순이다. 사회주의는 계급 없는 사회이고 따라서 계급 지배 기구인 국가도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는 나치즘의 정식 명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실로 옛 소련권 체제는 20년 전에 붕괴했고, 유럽 사회민주당들이 추구한 사회민주주의는 대중의 사회 변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제3의 길’(사회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정책)로 질주했다.
민주노동당의 현 강령은 이런 경험에 근거해 스탈린주의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를 지향하겠다고 표방한 것이다.
물론, 그 사회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무엇보다 어떻게 그 사회에 이를 수 있는지(혁명이냐 개혁이냐)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원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약점이기도 했지만, 이런 모호함이 초기에 다양한 정파들을 민주노동당에 결집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사회주의적 정치 실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예컨대, 의원들이 국회에서 대중이 겪는 고통과 참상을 폭로하고 때때로 투쟁을 엄호하곤 했지만, 국회 연단을 이용해 반자본주의 선전을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 구절을 삭제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상징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운동의 이데올로기를 크게 후퇴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