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의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는 지난달 11일부터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건물 주위에 집회신고를 해 왔다. 집회명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촉구 결의대회’이며, 시간도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풀(full)로 채웠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민주노총 앞에서 비정규직 결의대회가 열린 적은 없다.
집회를 개최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집회신고를 하는 경우를 흔히 ‘유령집회’라고 부른다. 유령집회를 신고하는 경우는 대부분 ‘방어집회’가 그 목적이다. 이번 집회신고의 목적 역시 방어적인 성격이 짙었다. 한국노총 산하의 타워크레인 노조가 민주노총 건물 주위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조가 의도적으로 집회신고를 해 왔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노조 관계자는 “한국노총 측이 이유도 없이 민주노총 지역본부에 집회신고를 냈고, 우리가 집회신고를 내기 전날 영등포에 있는 구 민주노총 건물에도 집회를 신고했다”며 “그들이 민주노총 앞에서 집회를 할 일은 없겠지만, 만약 집회를 한다면 시민들에게 노노갈등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어서 (집회신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민주노총 총연맹이나, 상급단체에서 방어집회는 옳지 않다는 입장이어서 집회를 취하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언론에 먼저 나간 것 같다”고 밝혔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사실상 이번 집회신고 사건은 고용을 둘러싸고 노조간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 원인이었다. 민주노총 타워크레인 노조는 임단협에서 ‘조합원 우선 채용’을 얻어냈으며, 이에 한국노총 타워크레인 노조 측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타워크레인 노조 측은 “임단협에 명시가 돼 있지만, 실제로는 회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고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노조는 현장집회를 하려고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한국노총 타워크레인 노조에 소속돼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에 대한 민주노총의 맞불 작전이라고 하기에는, 지금까지 유령집회를 둘러싸고 벌인 민주노총의 사투가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방어집회는 사용자측에서 노동조합의 집회를 막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이며, 민주노총은 이를 전면적으로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만 하더라도 동희오토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기아차 본사 앞 집회를 따내기 위해 경찰서 앞에서 24시간 ‘집회신고투쟁’을 벌여왔다. 현대자동차 이외에도 삼성전자, 삼성물산, SK 등 대기업들은 노조의 집회를 막기 위해 ‘교통문화캠페인’, ‘근무환경보호캠페인’, ‘사원복지 결의대회’등의 이름으로 집회신고를 싹쓸이 했다.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 역시 본사 앞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혜화경찰서 앞에서 120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현재까지도 현대자동차의 유령집회 신고 때문에,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피해자는 현대차 본사 앞이 아닌 서초경찰서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의 촛불 문화제가 유령집회신고에 가로막히자, 민주노총 법률원은 “옥외집회금지통보취소소송과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무엇보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수호한다던 민주노총은, 정작 타 노조의 ‘집회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을 면키 어려워졌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유령집회신고를 한 것은 건설노조산하인 타워크레인분과라 우리도 상황파악 중”이라며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유령집회신고를 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는 엄연히 민주노총 산하조직으로 어떤 사정이건 민주노총 내부에서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하지 못할 목적으로 유령집회신고를 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사 타워크레인분과에서 민주노총 중앙 사무실이 자신들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더라도 방법이 맞지 않은 일이면 즉시 철회했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볼 때도, 민주노총 일부에서 부분적인 이유라하더라도 그 수단으로 유령집회가 사용되었다면 민주노총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져야 한다. 용역업체가 유령집회를 신고한다는 사실보다 현대차가 유령집회를 신고한다는 설명이 더 정확한 이유도 같은 이치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가로막은 유령집회를 규탄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목소리가 민망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이 일로 유령집회의 문제점을 다시 환기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