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만 해도 최저임금이 지금처럼 중요하지는 않았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의 최저선이었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것보다 높은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최저임금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라 경제는 나날이 발전한다는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빈곤하고 고달프다.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도 200만 명에 이르고, 임금노동자 중위임금의 2/3 미만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470만 명에 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비즈니스 프랜드리’를 외치고 오로지 기업의 이윤이 최고가 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최저선까지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언제라도 해고당할 수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임금을 올리라고 요구할 수 없는 노동자들,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을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전가하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노동을 평가절하 당하는 노인과 청소년, 여성들이 대다수 저임금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조직률도 높지 않고 조직이 되었다 하더라도 언제라도 해고라는 위협에 시달린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릴 수 없기에, 최저임금이 인상되기를, 그래서 자신의 임금도 조금이라도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같은 풍경의 최저임금 투쟁
조직된 노동자들이 나서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모든 노동자의 생활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최저임금 투쟁은 너무나 소중하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투쟁을 시작한 2001년부터 최저임금은 꾸준히 높아졌고, 전체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총액의 평균값에 대한 최저임금 수준도 꾸준히 늘어서 2001년 30.5%에서 2010년 38.6%로 상승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최저임금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하다.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위원들이 씨름을 하지만 경총의 동결주장과 공익위원들의 자본가 편들기 전략으로 2008년부터는 인상률이 한자리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심지어 민주노총이 ‘국민임투’를 하겠다고 한 2010년에는 2.75%, 110원 인상이 고작이었다. 올해도 경총은 최저임금 동결안을 내놓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현실화는 너무나도 절실한데, 현실은 그 절실함을 배반한다. 왜 그러한가? 지금의 최저임금 투쟁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이 50%를 요구안으로 내놓는다. 마치 임금인상 투쟁을 할 때처럼 힘 관계에 따라서 적절하게 조율될 수도 있는 ‘요구안’이다. 이에 경총은 ‘동결안’으로 맞불을 놓는다. 평균임금이 50%와 동결안을 놓고 서로 공방을 하다가 적정한 시점이 되면 공익위원들이 납신다. 그동안 1인가구 생계비도 조사하고 물가상승률도 조사하지만 이것은 모두 생색내기일 뿐이다. 공익위원들은 그 조사와 무관하게 해마다 자신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최저임금 인상 범위’를 내놓고,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그 범위 안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게 된다.
▲ 2010년 최저임금위 앞 노숙농성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날이 되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위원회 앞에 모여 집회를 하고 밤을 샌다. 하지만 이미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범위 안에서 밀고 당기기가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의 집회는 노동자위원들에게 힘주기 이상도 이하도 안 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노동자측 교섭위원들은 밤샘 농성을 한 노동자들에게 ‘이것 밖에 못 따냈다. 죄송하다’를 이야기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그렇게 합의한 것에 항의하지만, 자신과 상관없이 농성을 하루 해주러 왔다고 생각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끝났구나’ 생각하고 농성장을 떠난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다음 해부터 새로 공포된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될 것이고, 그것은 여전히 생계에 턱없이 못 미칠 것이다. 아무리 노동자들이 진을 치고 농성을 하고 집회를 해도 공익위원들에 의해 제한된 인상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일회성 동원일 뿐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요구가 반영되는 최저임금 투쟁이어야
민주노총에서는 올해는 ‘국민임투’를 제대로 해보자고 한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바꿔보자고 한다. 그런데 올해의 최저임금 투쟁은 위와 같은 풍경에서 벗어나고 있는가? 그래서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아직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저임금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자신들이 노력하거나 함께 투쟁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대리하여 결정해주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높게 결정되면 좋고 아니면 아쉬운 것일 뿐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투쟁에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그 어떤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투쟁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저임금 투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선 요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전체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법제화하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인상 요구안을 내는 과정에서부터 민주노총은 이미 빈곤선 이하의 임금을 제기하고 있다. 빈곤선은 평균소득의 2/3인데, 민주노총은 빈곤선에도 못 미치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을 요구안으로 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5,410원, 월평균 113만원의 요구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의 고통을 반영하지 못한다. 4대보험 등을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 1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으로는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교섭 과정에서 언제라도 더 낮출 수 있는, 수정 가능한 ‘요구안’일 뿐이다.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한다. 최저임금 현실화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면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에 우리의 요구를 강제하기 위한 투쟁전술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전술은 최저임금위원회 앞과 경총 앞에서의 집회가 대부분이다. 막상 교섭이 시작되면 교섭위원들에게 모든 것이 맡겨지고 최종 결정도 교섭위원들의 몫이다. 하다못해 말도 안 되는 최저임금을 고수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항의하는 진입전술도 없다. 일단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그 결과에 대해서 찬성이나 반대를 이야기할 수도 없고, 단지 수용만 해야 한다. 그야말로 대리교섭의 전형이다. 한 푼이라도 더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 최저임금위원회 교섭에 매달릴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 점이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투쟁이 불붙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요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노동자들이 생활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임금이 필요한지 묻고, 그 과정에서 최저임금 요구안을 결정하고, 최저임금 교섭 과정에서 수시로 노동자들에게 교섭 상황을 알리고, 교섭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교섭 과정에서 더 이상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교섭을 깨고, 노동자들에게 그 과정을 설명하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최저임금은 진정으로 저임금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투쟁‘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의 결정방식을 바꾸고, 저임금을 없애는 투쟁에 나서야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의 기준을 마련하는 최저기준을 설정하는 정치적인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최저임금 투쟁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매달려서 교섭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하게 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무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총과 공익위원들이 노동자위원을 압박하면서 타협하게 만드는 지금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조에서는 절대로 최저임금 현실화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와 결정방식을 다시 만들어나가는 제도화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로 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생계비와 물가인상분이 반영되어 법정 최저임금이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생계비와 물가인상률에 근거하여 기준이 정해지고 그것보다 더 높은 최저임금이 결정되도록 정부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요구를 정하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의 결정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럴 때 최저임금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제도화 투쟁은 지금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노동자들의 선언과 투쟁이 있을 때 시작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임금 구조를 없애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저기준이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당연히 그것보다 높아야 한다. 그런 저임금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올해 서울지역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집단교섭과 집단투쟁을 통해서 청소노동자들이 반드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선언했고 투쟁으로 최저임금을 넘어섰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함으로써 누구나 생활할 수 있는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최저임금은 ‘최저선’이 되고 우리의 임금은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고착시키는 각종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중간착취를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파견 용역 등의 간접고용, 공공부문에서의 최저가낙찰제도, 최저임금이 전체 임금이 되게 만드는 포괄임금제도, 단시간노동 등 생활의 권리를 파괴하는 각종 구조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투쟁 못지않게 이렇게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고착시키는 구조에 맞서는 투쟁에 함께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하루 밤샘을 해줌으로써 뭔가 역할을 했다고 뿌듯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최저임금 투쟁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저임금 노동자들이, 이제는 투쟁의 주체가 되어서 최저임금의 결정방식과 저임금 구조를 변화시키는 투쟁에 나서보자. 그럴 때 시혜적이고 대리적인 ‘국민임투’가 아닌 진정한 생활임금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