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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은 멀고, 매연은 뿌옇다. 언니, 우리 힘내요”

[기고] 현대자동차 금양물류 성희롱사건 피해자 상경 농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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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여기까지 왔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성희롱 당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금양물류 성희롱 사건 피해자)가 서초경찰서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지 나흘이 되었다. 처음 올라오던 5월 31일에는 안 그래도 심란한데 오전부터 흐리더니 기어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밤새 내려 피해자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14년을 일하던 현대자자동차 하청업체의 관리자들에게 성희롱 당한 것도 억울한데, 국가인권위 진정 냈다고 해고당하고 나서 유난히 바람 불고 춥던 지난 겨울을 아산공장앞 농성장에서 스티로폼 하나 깔고 버티며 피해자는 화병이 더해갔다. 국가인권위의 성희롱인정,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을 인정받던 지난 1월만 해도 희망적인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적어도 가해자가 진심담은 사과는 하겠지. 아무리 현대자동차가 대기업이고 힘이 세도 뭔가 말은 있겠지. 피해자도 대리인인 나도 참으로 소박한 기대를 바보처럼 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찬바람 속에 농성하는 피해자를 조롱하며 지나갔고 현대자동차 관리자들은 폭설을 가리려고 덮은 비닐 한 장마저 빼앗아 갔다. 힘있는 자들의 폭력이란 두렵기도 하지만 치사하기도 하구나 싶어 피해자와 함께 가슴이 아프고 화가 넘쳤다.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피해자의 참담한 마음은 고통을 더해갔다.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앞이라도 가서 농성하겠다는 피해자의 결의를 들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성희롱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과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한복판 부자동네 빌딩사이에서 부르짖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법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최소한 인간사이의 양심과 예의가 있지. 어찌 성희롱 피해자가 서울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어 막상 결의하고 보니 웬걸,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앞은 집회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현대자동차에서 일당 10만원 주고 고용한 용역들 20여명이 날마다 한 달 후의 집회신고를 내며 서초경찰서 앞에서 줄을 서있기 때문이었다.

기가 막혔다. 성희롱 당하고 해고된 것도 억울한데, 집회한번 하려면 20일을 서초경찰서 앞에서 노숙해야 하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하루 집회 할 수 있는 날을 허가받을 수 있고 다시 20일을 용역 뒤에 줄서야 또 다른 하루의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독하게 마음먹고 용역들 뒤에 줄서지 않기로 했다. 이왕 서초서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거라면 서초서 앞에 집회신고를 내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성희롱 피해자 집회의 자유 쟁취를 위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양재동 본사앞도 아니고 서초서로 올라온 첫날 비닐 한 장으로 이번에는 눈이 아닌 비를 가리며 처량 맞게 앉아 피해자와 둘이 다짐을 했다. "이왕 시작한 것 반드시 복직해서 올라가자" 그랬던 것이 나흘전이다.


하지만 며칠 조용하던 서초경찰서에서 오늘 아침에는 시비를 건다.

서초서 형사들이 농성장 옆에 붙여놓은 유인물을 "보기 흉하다"고 떼 가며 다른 현수막들도 치우라고 협박을 한다. 합법적인 집회의 현수막을 시비 삼는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보기 흉하다는 말에 더 화가 난다. 어쩌면 경찰 니들은 현대자동차 관리자들과 똑같니.

지난 겨울 아산공장 정문 앞에서 농성하는 피해자에게 현대자동차 관리자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왜 여기 있냐. 가라"고 오히려 화를 냈었다. 아무리 현대 밥을 먹는 관리자라도 그렇지. 어떻게 성희롱 당하고 해고된 억울한 여성에게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내뱉는가 말이다. 파렴치한 것들을 보며 분노했는데, 이번에는 경찰들이 합법적인 농성장의 물품을 시비 걸며 보기 흉하다고 한다. 보기 흉하다고.

부자인 현대자동차 눈치를 보며 집회신고를 위해서는 줄을 서라는 법에도 없는 짓을 시키고 있으면서, 그런 일방적인 현대자동차 편들기에 성희롱 당한 여성이 집회조차 못하고 억울해 하는 절규가 서초경찰의 눈에는 보기 흉한 것이다. 보기 흉하다고. 무엇이 보기에 아름다운가? 관리자들이 몸을 달라면 몸을 주어야 하는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보기 좋은가. 어찌 성희롱 당하고 해고된 여성의 억울함에 흉하다는 말 하는가. 어떻게든 복직하겠다고 웅크린 여성 노동자의 고통이 어찌 보기 흉하다고 하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를 내며 항의하니 유인물만 떼어 가면서 정문을 지키는 나이어린 의경에게 지시를 한다.

"금속노조 조끼 입은 것들은 화장실 갈 때도 신분증 받아서 확인하고 들여보내."

그것도 성희롱이라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농성하는 성희롱 피해자가 화장실 갈 때마다 경찰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으라는 말인가.

부랴부랴 피켓을 만들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화장실 갈 때마다 신분증 내고 허락받으라는 것도 성희롱이다. 서초 경찰서장 무릎 꿇고 사과하라!"

다행인지 뭔지, 실제로 화징실 갈 때 신분증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눈에는 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갈 길은 멀고, 매연이 뿌옇다. 언니, 우리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