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는 안 봐도 비디오라 지극히 예견된 일이었다. 연봉 2천도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고 넘치는데, 어디서 연봉 7천짜리가 파업을 해? 노동자는 하나라더니 니들 쪽팔리지도 않아? 정규직 배만 채우면 장땡이야?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이다. 노동자들이 파업만 들어가면 튀어나오는 몹쓸 말의 파편들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야간노동’ 때문이다. 야간노동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데, 지속적인 수면장애, 급작스런 돌연사, 노동재해 증가와 암 발병 등이다. 그러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은 사실, ‘잠 좀 자자, 잠 못 자서 죽기 싫다’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제 좀 잠 좀 자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자는 거다. 그것도 2009년 약속한 사항이고 올해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기로 했으니, 이를 지키라는 거였다.
이들이 7천을 받든 안 받든 그건 이번 파업에서 거론될 일이 아니다. ‘한밤중에는 잠을 자야 사람이 살 것 아니냐’는 아주 소박하고 상식적인 주장으로부터 비롯된 파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번 묻자. 니들도 이젠 좀 다른 논리를 펼칠 때도 되지 않았니? 파업 때문에 손실 규모가 얼마고 수출이 안 되고 장기화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낡은 여론전. 여기서 나까지 7천만 원을 받내 안 받내 하는 공방을 벌일 생각은 없다. 생산직이 7천만 원 받으면 뭐가 어때서? 독일에서는 교수보다 청소노동자가 더 받는데?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다만, 하루빨리 고임금론과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를 깨부수고 허접한 공방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유성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유성기업 고임금론의 정체를 경영분석으로 까발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영분석’이다. 그런데 이거 가관이다. 노동자들이 준 임금표와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인 감사보고서 상에는 어마어마한 심연이 가로놓여져 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7천만 원이래?
금융감독원에 등재되어 있는 유성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사내이사 네 명(유홍우, 유시영, 이기봉, 최창범) 중 한 명이 가져가는 연봉이 1억4천만 원으로 연간 5억6천만 원을 네 명이 가져갔다. 그런데 2010년 3월 주총에서 정한 ‘이사보수한도액’은 8억 원이다. 이들 이사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자리 꿰차고 앉아 거저 가져갈 수 있게 만들어놓은 상한선이 8억이라는 얘기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 중 일부] |
48%의 주식을 유홍우 일가가 가지고 있는 혈족회사인 유성기업의 배당금이 어떻게 배분되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주주들이 가져간 배당금은 25억 원인데 이는 당기순이익의 20%를 배당금으로 가져간 셈이다. 유홍우 일가가 가져간 배당금은 12억5천만 원일 것이다. 2010년 말 현재 유성기업의 1,260억 원이라는 이익잉여금 또한 사내유보분이니 유홍우 일가가 얼마나 두둑하게 배를 불리고 있는지 자명하게 알 수 있다.
이제 노동자들이 다달이 받는 급여명세서와 비교해보자. 노동자들의 임금표에 의하면, 근속 15년차에 월 3백만 원 받는다. 그러니 연봉 3천 6백이다. 7천?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그런데 이만한 액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잔업, 철야, 특근도 마다하지 않고 뺑이를 쳐야한다. 입사한 지 7년 된 노동자의 임금표를 살펴보았다. 근속 7년차 노동자가 심야 야간노동 52시간에 휴일 특근 21시간을 해서 받은 급여가 180만 원이다. 여기서 또 각종 세금과 보험을 공제하고 나면 월 130만 원이 조금 넘는 급여를 받고 있다.
자, 그렇다면 상여금을 합한 이 노동자의 연봉을 추산해보자. 끽해야 2천5백만 원이다. 대체 연봉 7천은 어디서 나온 숫잔가? 백번 양보해서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인 감사보고서 상에 기재된 부가가치 내역을 보더라도 7천이란 숫잔 나올 수가 없다. 부가가치 계산에는 급여, 퇴직급여, 복리후생비 등이 전부 합쳐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직접임금과 간접임금이 합쳐진 계산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퇴직급여와 복리후생비를 통상 임금이라고 보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 명약관화한 사실을 대통령과 장관만 모르고 있단 말인가?
유성기업 노동자. 그들은 11번의 교섭이 이루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안을 내놓은 적이 없는 회사를 향해서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줬다. 유성기업 노동자 임금의 4배를 받고 있는 유성기업 사내이사들. 이들이 한 일이 뭔가? 용역깡패 동원해서 노조탄압하고 파업한 지 며칠도 안 돼 공권력 투입해 달라고 한 게 다다. 이들이 누린 고액연봉과 부의 축적은 하나같이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의 결과일 텐데 말이다. 자본과 정부가 앞장서서 ‘파업노동자 고임금론’을 들먹이면 들먹일수록 그들의 추잡한 만행과 협잡이 드러날 뿐이다. ‘파업노동자 고임금론’은 케케묵은 낡은 이데올로기, 유령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