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는 법인화 추진의 필요성으로 1) 법인화는 세계적 추세, 2) 법인화를 통해 대학 스스로가 체질을 개선하고 내부혁신 할 수 있는 계기 마련, 3) 초일류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자율권 확보, 4) 획기적인 재정 확충과 교육, 연구 역량의 강화, 5) 법인화 국립대학의 모델 대학 구현과 국가경쟁력 강화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충분한 논리적 인과관계와 실증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와 경쟁에 대한 신화적 믿음에 근거한 허구적 주장이다. 특히, 필자는 서울대법인화는 건강하고 비판적인 “지식공동체”의 와해를 촉진하여 실질적으로 대학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며,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법인화는 등록금 인상의 지렛대
이 처럼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이 부족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립대학은 부족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충당해 왔고, 그 결과 우리나라 국립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그 절대액수에서 다른 나라의 국립대학에 비해 아주 높은 편이다. 달리 말해,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이 충분치 않아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더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법인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법인화를 통해 국립대학이 다양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주장하지만, 실상 연구비, 기부금, 수익사업의 수익금 등이 획기적으로 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고지원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사실 등록금 이외에 재원 확보의 뾰족한 방안은 없다. 이미 서울대는 ‘2007~2025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에서 서울대 법인화를 계획하면서 ‘대폭적인 등록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학내합의를 이루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그나마 취약한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더욱 더 취약한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경쟁과 성과 위주의 법인화는 지식생태계 복원을 가로막는 길
법인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법인화가 그간 국가의 보호아래 안주하여 발전이 지체되어 왔던 국립대학이 경쟁의 압력 속에서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대학의 경쟁력은 해외 학술지 출판 논문 편수, 노벨상 개수, 대학의 연구비 수주 액수 등과 같은 표피적이고 성과주의적 업적의 획득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학에서, 혹은 어떤 국가의 대학 사회에서, 건강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가 살아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공동체가 얼마나 역동적인지와 같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는 1)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조화로운 발전, 2) 자생적인 학문재생산구조의 확립 등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전한 아카데미즘을 바탕으로 한 1) 기초학문과 순수학문의 발달, 2) 독창성과 자생력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학문체계의 구축, 3) 대학원의 활성화와 국내 박사의 취업기회 확보를 통한 학문재생산구조의 확립, 4) 대학 간 균형발전을 통한 지식 네트워크의 저변확대 등이 요구된다. 즉, 대학의 경쟁력 향상은 학문사회에서 건전한 아카데미즘이 확립되고 그를 통해 순수학문과 기초연구가 활성화됨을 통해 그 나라 학문의 자생력과 독창성이 강화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건강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의 성장과 발달을 저해한 가장 큰 요인은 “국가와 시장에 의한 학문의 자율성 침해로 인한 건전한 아카데미즘의 미성숙”이다. 특히,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이중적 지배를 강화하는 현재의 학술 및 교육정책은 연구자들이 순수학술활동과 기초연구보다는 국가 지배 엘리트와 자본의 이해와 필요에 부응하는 단편적이고 실용적인 연구에 내몰리게 강요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체계화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근대적 학문과 고등교육은 국가관료들의 이해와 필요에 부응하는 실용화가 강요돼 왔고, 그 결과로 한국의 학자집단은 국가 관료들이 떡고물처럼 던져주는 정부용역 프로젝트에 길들여지면서 순수한 학술적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는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수립하지 못했다. 이러한 척박한 학문적 환경은 2000년대 들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학술/교육정책에 의해 더욱 더 악화되고 있다. 특히,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미비한 상태에서 많은 교수들이 제자들의 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해 주기 위해 정부나 기업의 용역 프로젝트에 매달리게 되는 현재의 상황은 아카데미즘의 이상에 기초한 ‘지식공동체’를 한국의 대학사회에 성장하게 하는데 가장 큰 장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쟁과 업적주의적 평가의 압력을 강화할 법인화는 서울대의 교수, 학생, 교직원들을 학문과 교육 활동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경쟁보다는 각종 재원을 끌어오기 위한 정치적 로비의 경쟁으로 내몰 가능성을 훨씬 크게 지닌다. 이는 일본의 법인화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법인화 이후 일본의 대학 교수들은 연구 활동보다 각종 보고서 및 서류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처럼 법인화는 붕괴되고 있는 서울대의 지식공동체를 더욱 가속적으로 붕괴시키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법인화법, 반드시 폐기돼야
따라서,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한다고 해서 서울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국립대학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야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붕괴되었던 ‘지식공동체’가 복원되어야 하고,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던 순수한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진작도 대학의 경쟁력 제고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 방법이 법인화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이 글에서 일관되게 주장하였듯이, 고등교육을 살리고 ‘지식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법인화 법안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재앙이 될 것이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과 학문정책에 대한 전반적 재편이 필요하다. 대학사회에 건전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가 건설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을 개정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늘려야 한다. 고등교육법의 개정을 통해 국립대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대학의 자율성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OECD국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부담비율을 대폭 늘려, 고등교육재정이 GDP 대비 1.5% 이상이 지원되도록 늘려야 한다.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지식공동체의 복원을 이루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며,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인화 법안의 날치기 통과로 인해 촉발된 현재의 갈등상황은 그 동안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지식과 문화가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21세기에 고등교육을 새롭게 살리는 것은 4대강에 수 십조의 돈을 이유 없이 빠뜨리는 것 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고등교육과 학문의 방향성, 나아가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국립대 개혁방안은 특정 경제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교과부의 관료집단 일부나 특정 정치인에 의해 밀어붙이기로 처리되어서는 안 되고, 보다 넓은 국민적 합의의 도출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국가적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