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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우리 인생의 황금기를 위하여

[기고] 다같이 행복해지기 위한 커밍아웃, “우리 여기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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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9일 개막하는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작 <종로의 기적>은 아래 소개에도 나왔듯이 2년 동안 네 명의 게이들의 생활상을 담은 작품이다. 필자는 <종로의 기적>과 지난 해 11월 인천인권영화제의 성소수자 인권 이야기마당 등에서 접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 인권영화제 개막에 즈음해서 성소수자 인권문제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성적소수자-존재하지만 드러나지 못하는 이들

11월 28일, 제15회 인천인권영화제의 행사로 ‘후천성 호모포비아?-잃어버린 성소수자 인권을 찾아서’ 이야기마당이 열렸다. 성소수자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호모포비아(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호모포비아가 사회적으로 내면화되어 집단적 차별행동으로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영화 <종로의 기적>을 만든 이혁상 감독이 먼저 성소수자가 일상에서 겪는 차별 문제를 이야기했다. “성소수자는 어느 공간에서든 가만히 있어야 하므로 늘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차별 행동을 하지 않으면 호모포비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성소수자를 선 안에 침묵하게 하는 것, 드러나지 않게 만드는 그 끊임없는 긴장이 호모포비아입니다.”

<종로의 기적>은 2년 동안 네 명의 게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첫 번째 주인공이기도 한 게이 준문 씨는 군에 입대할 당시 신체검사 전 “남성과 성관계가 있었냐”는 가벼운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는 이유로 군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어야 했다.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었고 “너는 여자 변기 써라”는 동료의 야유에 치욕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병, 이성애자로 교화해야 하는 병으로 취급받았다. 위계질서의 우위에 있는 이성애자가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현실과 달리,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잠재적인 성폭행자나 범죄자로 취급되었다. “병영사회는 남성의 태도를 학습하는 사회이며 격렬한 호모포비아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이혁상 감독이 본 영화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제 시스템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성적소수자들이 있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차별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성소수자가 외치는 말이다. “여성이 평등한 사회와 성소수자가 평등한 사회는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평등한 사회와 성소수자가 평등한 사회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삶을,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영화제 폐막공연을 한 게이 코러스 G-Voice의 단원이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었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자영업자도 있습니다.” 성소수자는 뭔가 다를 거라고, 대도시에서 디자이너 같은 특별한 일을 할 거라는 편견과 달리, 성소수자는 대기업에든 공장에든 가게에든 도시든 시골에든 어디에든 있다.

성소수자인권운동을 하는 사무직 노동자 욜의 말이다. “제 삶에서 24시간의 대부분은 회사에서 노동자로서 사는 삶입니다. 게이로서 사는 시간보다 회사 안에서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회사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있습니다. 회사 시스템은 가족을 상정하고 이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사내 복지나 승진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제 일상의 모든 것이 비밀이 되는 겁니다. 다른 이의 삶은 가족으로서 보게 되지만 그 사람은 내 삶을 모르는 거죠. 끊임없는 거짓말을 해야 하고 거짓말의 한계를 느낍니다. 숨어서 다니는 이 공간에서 얼마나 유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적소수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해고되거나 퇴사를 강요받기도 한다. 성적소수자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사회에서 기본생존까지 위협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속에서 동료의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게이인 병권은 씁쓸하게 묻는다. “나는 저런 걸 누리지 못하고 살아야 하나?” 박탈감. 사람을 사소하고 궁색하게 만드는 것. 그는 성적 소수자에게 차별없는 일터를 만드는 운동을 한다. 세상에 이성애자만 있는 게 아니지만, 성적소수자는 눈으로 보기 전에 판단되는 사람이 아니다. 드러나야 하고 드러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불안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고 같이 살아야 하므로, 성적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사회에 요구하는 것이다.


성적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를

사회의 호모포비아가 심해지면서 성소수자들은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받았다고 친구사이 활동가 이쁜이가 전했다. “바른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과 같은 기독교 극우단체는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광고를 내고 호모포비아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성적소수자에 대해 혐오와 반대를 천명하는 이들은 그들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지적한다. “차별을 선동하는 광고는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표현의 자유’도 누가 누구를 상대로 하는 주장인가가 중요하다. 백인이 흑인을 비하하는 것,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는 것,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근대에 강력한 국가주의가 들어서면서 거대한 국가권력에 비해 약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표현, 집회, 사상의 자유 등을 인정했다. 즉, 지배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권리일 때만이 표현의 자유는 진보적 가치로서 존중되는 것이다.”라는 점을 말했다.(<월간 인권연대> ‘29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3.23)’에서)

호모포비아는 사회의 보수화와 함께 선동과 증오를 만들어내는 차별 행위다. 이성애 가족을 강조하고, 정상, 비정상을 구분하며 차별금지법이 이슈화될 때마다 호모포비아는 심해진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이 추진될 때, 동성애자반대국민연합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이런 여론을 의식한 법무부는 성적 지향을 비롯한 7개의 차별사유를 삭제했다. 2010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자 동성애 반대와 혐오를 표방하는 단체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성적소수자에게 그들의 정체성은 이슈가 아니라 생활이다. 성적소수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보수화에 따라 “자신의 권리가 되돌아가는 것 같다”는 불안을 느끼고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색한다.

호모포비아는 동성애만을 혐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임신중단(낙태), 촛불시위 등의 사안에 대한 반대입장과 연관되고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등 인권에 대해 역주행한다(<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임보라 참고).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이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차별의 근거로 이어질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8조는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했고 제1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그와 같은 권리를 성적소수자도 누릴 수 있어야 했다. 이미 영국은 ‘평등법’, 독일은 ‘평등대우법’ 제정을 통해서 성적 지향을 비롯하여 성별, 인종, 장애 등 여타의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이성애자 남성이 정상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암암리에 성적소수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임을 나에게 드러내지 말라.” “나는 묻지 않겠으니 너는 말하지 말라.” “너희는 보이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적소수자에게 표현할 권리와 자유가 없다는 것은 인권 침해이자 인간 차별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성적소수자에 대해 근거없는 혐오와 편견, 낙인을 공고히 하지 말아주십시오.”

성적소수자를 인정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사회의 이성애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장애인이동권의 확대가 노인과 아이, 임부 등 교통약자들에게 혜택이 함께 돌아갔듯이 성적소수자의 인정은 가부장제로 억압당한 모든 약자들의 인권과 같이하는 문제이다.

영화 속의 병권은 성소수자인권을 위한 전단지를 나누며 이렇게 말한다. “좋은 세상이 오려면 활동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돼. 그 힘을 받으려면 계속 활동할 수밖에 없겠지. 내가 바뀌건 세상이 바뀌건, 나로 인해 그 누군가가 바뀌건.” 등장인물인 욜도 같은 말을 한다. “처음엔 운동이고 세미나 글귀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내 안에서 심장을 뛰게 하는 것, 나의 삶이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이런 부분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게 수단이 될 수도 있으니 나는 내가 겪은 일을 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 영화 속 주인공들과 영화 밖 성적소수자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커밍아웃을 하며 그것이 다음 세대의 평등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의 황금기를 위하여

성적소수자를 HIV와 연관해 공격하는 폭력도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2010년 9월 29일 조선일보 광고)”는 광고 카피가 버젓이 나오는 현실이다. 바성연은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률이 일반인보다 730배 높다는 근거 없는 숫자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이즈정보센터는 HIV 감염경로가 이성간 성 접촉으로 인한 감염률이 59.7%로 동성 간 성접촉보다 더 높다는 것을 밝히고, 세계적인 통계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두려움을 없애는 경로를 생각해야 합니다.” 욜의 말이었다.

언론에서 감염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HIV와 성적소수자 문제를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그와 함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커뮤니티 내의 HIV 감염자에 대해서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밀이 되거나 말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온 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떻게 편견을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구성원을 포섭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HIV에 대한 바른 이해, 과장된 공포의 극복, 제약회사의 이윤추구 속에서 약품공급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HIV 감염인의 인권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질의응답 시간에 참가자 여기동 씨가 한 말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나 <종로의 기적>같은 영화를 보고 이전에는 듣지 못한 이야기라며 일부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공포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드러낼수록 호모포비아도 더 비례해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같이 가는 문제입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죠. 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에서 더 드러날 텐데, 우리가 지혜롭고 더 용기를 내어 같이 가야 합니다.” <종로의 기적>을 만들면서 감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그 위험들’을 생각하며 작업을 했다.

“커밍아웃은 끊임없는 숙제다. 매일매일 다르게 써야 하고 또 다른 숙제가 있다”는 영화 속 준문 씨의 말처럼 끝없이 고단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성적소수자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목소리를 통해 사회에 굳게 내면화된 차별에 항거를 이미 시작했다. <종로의 기적>에 나온 한 주인공으로 최영수 씨가 있다. 시골 게이였던 그는 혼자 오랜 시간 정체성을 고민하고 외롭게 살다가 자신과 같은, 자신을 긍정해주는 친구들을 종로에서 만나 G보이스에서 신나게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줄로 세우는 질서를 넘어간다, 우리의 길로!” 노래하며 그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웃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누리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연습을 하던 중 뇌수막염으로 쓰러졌다. 무지개 깃발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그의 영정 앞에서 친구와 가족들은 울었다. 그는 죽기 직전에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단 한 번의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삶에서 자기 인생의 황금기를 누릴 기회는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단 한 번의 시간, 그것이 우리 삶을 인간다운 것으로 만들고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 위해 성적소수자들은 싸우고 있고 마찬가지 이유로 그 싸움에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