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주는 역사적 의미
연두 빛 신록이 라일락 향기를 담아 붉은 장미를 꽃피우는 5월이다. 노동운동사에서 5월이 상징하는 바는 매우 크다. 붉은 5월, 뜨거운 5월. 이런 수식어에는 역사성이 묻어있다. 시카고에서 투쟁한 노동자들에게 총기를 난사하여 사살한 자들, 법정에서 자본과 권력이 만든 법으로 노동자들을 형장의 이슬로 만든 자들에 대해 분노한 전 세계 노동자들이 메이데이를 노동자 계급의 날로 정했다. 1889년 파리, 제2차 인터내셔널에서 ‘만국의 노동자 단결’과 ‘노동자 해방’을 향한 투쟁을 결의하는 역사적인 날이 선포되었다.
한국에서의 5월도 붉은빛이다. 1980년 5월의 광주학살로 빚어진 '노동자, 민중들의 피', 1991년 강경대 열사에서 시작된 열사정국과 전노협 파괴공작에 의해 의문의 죽임을 당한 박창수 열사의 '분노의 5월’... 어용 한국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을 폐기하고 ‘노동절’을 쟁취하고, 착취와 탄압에 맞서 가두 투쟁과 민주노조운동 정통성을 사수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으로 매년 5월 총파업을 조직했던 전노협의 5월도 ‘붉게 번지는 들불의 5월’이었다.
민주노총 건설의 역사적 배경과 전체주의 노선
조직발전전망에서 '한국노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의 중앙조직을 건설한다는 의미는 한국노총은 더 이상 노동자계급의 벗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판단 때문이었다.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군사독재정권에 아첨하고 찬양했다. 활동하는 노동자들을 색출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보기관에 제공했다. 한국노총이 끊임없이 불러대는 정권과 자본을 향한 용비어천가 속에 노동자계급의 피와 땀이 사라졌다.
1973년도 대의원대회 자료집을 통해 한국노총은 운동방침을 밝혔는데, "우리는 국가이익 우선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계급투쟁적인 극력한 운동방향을 배제하고 건전한 노동조합주의를 지향하면서 국민경제발전의 기반위에서 노동자의 복지향상을 증진시켜 나가려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임금인상 일변도의 활동노선을 지양하고 생산성 향상운동을 통한 분배원천의 증대라는 노사공동이익의 영역을 찾아 서로 협력하는 보다 건전한 기업풍토를 이룩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국가주의를 내세우고, 국민경제발전의 기반위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임금인상조차 포기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자본과 권력을 위한 활동을 노골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한국노총은 '복지사회건설'이라는 기만적 노선을 자신의 노선이라고 강변해 왔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을 속이고 노동운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지도부의 입신출세를 위한 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것이 군부독재시절 한국노총의 모습인 동시에 전체주의 노선의 표본이었다.
전체주의 노선은 국가 코포라티즘, 유기체적 노동조합노선 또는 도덕주의적 노동조합노선을 의미하는데, 이 노선은 노동조합이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 노선은 국가 및 국민 전체 이익 앞에서는 노동자의 요구를 주장할 수 없다. 때문에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노선이라기보다는 자본과 권력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명분용 노선이라고 하는 게 과학적 표현이다.
전체주의 노선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생활을 향상시키는 경제적 기능에 관심 없으며 국가의 발전에 저해되는 요구를 억누르고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전체주의 노선이 존재할 수 있는 정세는 군사독재 국가의 공식노동조합에서 나타난다. 즉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한국노총이 그러한 전철을 밟아왔다.
2011년.
피눈물로 싸워온 노동자 투혼이 깃든 역사적인 5월에 낡아빠진 전체주의 노선이 등장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민노총’, 즉 제3노총이라는 게 바로 그 노선이다.
‘국민노총’이 주장하는 노동운동방향의 첫 번째가 “노동운동의 이념투쟁 지양과 상생협력 정착”으로 명시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기본활동의 근본이 노동자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활동이며 이 의식이라는 것은 이념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 의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기득권의 이념이 정치, 사회, 문화를 모조리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내세우는 이념지양은 자본의 이념만을 인정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면 노동자 계급의 이념은 어디 있는가.
지금 현장에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배치하며 부당한 인사발령과 정리해고 등으로 절망의 늪에 빠진 노동자들의 자살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 판국에 ‘국민사랑을 받는 노동운동’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이 노동자 삶을 팽개치고 국민사랑을 받는 노동운동이 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개념 속에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파멸시키는 꼴이다.
또 이들이 주장하는 상생협력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발전한다는 취지인데, 기본적인 억압과 착취가 자본의 이윤과 맞닿아 있고, 자본에게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라고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상생은 노동자 노예화의 의미일 뿐이다.
이번에 민주노총을 탈퇴하며 국민노총을 주장하는 서울지하철노조는 ‘국가발전 견인하는 노동운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주장은 군부독재 시절 한국노총의 노선이었다. 현 시기 전 세계 노동운동에서 이러한 주장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경우를 발견할 수 없다. 민주노조의 정통성을 지닌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치욕적인 노선이 대두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민주노총이다
지난 5월 1일, 민주노총은 121주년 세계노동절 행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현실화, 노조법 전면개정, 민생파탄 책임 이명박 정권 실정과 반노동자 정책을 규탄하며 국민과 함께 정권 심판 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또 축사에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연단에 올라 이명박 정권의 “노사관계 선진화, 노동유연성, 법질서 확립이라는 노동정책은 비정규 양산과 노조탄압, 노동자 인권탄압을 가져온 게 이명박 정권의 노동정책이라고 비판하며 민주당은 노동존중사회, 사람이 중심되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역설했다. 뭐 묻는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꼴 아닌가.
민주노총이 강변하는 국민과 함께 정권심판을 하겠다는 주장이나, 민주당이 비판하는 현 정권의 비정규 양산과 노조탄압, 노동자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필자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현 민주당 세력이 집권했던 시기, 노동자계급에게 고용불안을 제도화시킨 것은 ‘비정규법안’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것이다.
참여정부는 반 노동자적 정책에 대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민주노총 지도부와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독재정권 못지않게 했다. 이러한 자신들의 태도와 행위에 대해 해명이나 사과 없이 무엇을 비판한다는 말인가.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명한 입장 표명 없이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는 손학규의 주장은 기만일 뿐이다. 민주노총이 야권연대라는 명분으로 세계노동절 기념식 자리에 민주당 대표를 초청한 것은 노동운동의 역사성을 짓밟은 일이다. 몰계급적이며 노동자의식을 혼란스럽게 한 일이다.
복수노조 시행을 앞둔 현 시기에 인정하든 않든 노조운동의 중앙조직은 세 개로 확인된다. 어쩌면 이후에 더 많은 중앙조직이 생겨날 수도 있다.
민주노총 건설은 노동조합 조직을 또 하나 만든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노동자의 조직다운 중앙조직 하나를 만들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 근거는 한국노총의 사업 작풍과 행태로 봤을 때, 한국노총의 조직노선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국민노총’의 운동방향에 대해 비판하는 이유 또한 그들이 지향하는 노선이 노동자계급의 입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민주노총의 조직노선과 정치노선이 확인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국민노총을 비판하기에 앞서 민주노총 스스로 운동방향과 노선에 대해 노동자계급에게 천명해야 한다. 만약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정치세력화의 기조가 여전히 배타적지지방침의 범주에 갇혀 있다면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국민노총의 뉴라이트화 논리와 그 성격은 다르지만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국민노총이 한국노총보다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있다는 판단은 그들이 표방한 노선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노총의 주력 노조들이 민주노총 소속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국민노총을 비판하기에 앞서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냉철한 평가를 해야 한다. 조직구조의 재생산에 대한 전망, 변혁노선을 체계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복수노조 시대에 운동노선이 확인되지 않으면 ‘민주’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없고, 노선 없는 운동은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