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괴롭힘에 시달렸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밤새 뒤척이다 고작 1-2시간 눈을 붙이는 게 전부였다. 출근하자마자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직장상사가 무서워 입을 뗄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온종일 토하기를 여러 차례. 바닥에 쓰러진 채로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칠곡가톨릭병원에 가니 바로 대구가톨릭대학병원으로 응급이송시켰다. 그날부터 한 달 넘게 거의 죽은 목숨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퇴원 후 1개월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발부했다. 하지만, 회사는 요양을 허락하지 않았다.
퇴원 후 한 달여가 지났다. 처방전을 받으려고 소변과 혈액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여기가 당신 놀이터냐. 요양원이냐. 양심도 없고 뻔뻔하다. 연차 휴가가 없으니 무단결근 처리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눈물을 떨어뜨리며 지각처리라도 해 달라고 사정했다. 소름끼친 답이 돌아왔다. "내가 왜 그렇게 해 줘야 하느냐. 병가와 연차휴가가 없으니 알아서 해라. 입원하는 쪽으로 머리가 워낙 잘 돌아가는구먼."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청원휴가를 하루 받았다. 제적증명서를 제출하자, 서류를 집어던지더니 "복무까지 사기 친다"며 패악질을 부렸다.
KT 여성해고자 김옥희씨의 일기 형식의 메모 내용이다.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체신청(현 KT)에 114 교환원으로 취직했다. 그렇게 30년을 교환안내 업무를 맡아 일해왔다. 지난 2001년 민영화를 앞둔 한국통신(현 KT)은 114 업무를 분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출을 거부했다. '114 잔류자'로 남은 그녀. KT는 조직적으로 그녀를 퇴출하려 했다.
무연고지 전보조치가 수시로 이뤄졌다. 사직거부 후 8년여 동안 그녀는 대구에서 왜관, 북포항, 울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울릉도로 유배당했다. 2006년부터는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봇대를 타는 '개통업무'를 지시했다. 수행 불가능한 업무로 실적 부진 자로 분류돼 업무촉구서 등을 받았던 그녀는 정년퇴직 11개월을 남기고 해고통보를 받았다.
충북에서 근무하는 '114 잔류자'인 한미희씨와 육춘임씨. 그녀들도 2006년부터 전봇대를 타야 했다.
한미희씨가 전신주 오르는 업무를 두려워하자 전화국 국기게양대에 매달리는 연습을 시켰다. 육춘임씨에게는 전화국 마당에 임시 전주를 심어놓고 오르내리도록 강요했다.
청주에서 근무하던 육춘임씨는 2001년 이후 충주, 제천, 괴산, 영동, 보은, 다시 영동으로 2002년부터 최근까지 6차례나 전보조치했다. 영동에서는 회사 차량을 제공하지 않아 5km를 배낭을 메고 걸어가 개통업무를 해야 했다. 회사는 그녀들에게 실적미달에 따른 경고장, 업무촉구서 등을 남발했다.
반기룡씨의 양심선언으로 KT가 회사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났다. 양심선언자의 자료와 피해자들의 진술에도 '노사문화대상'을 수상한 KT는 여전히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