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정위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위원 명단. 한국노총도 논의에 참가하고 있다. |
노사정위원회가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4월 19일 <매일노동뉴스>는 “노사정위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업체폐업=해고’ 관행 개선될까”라는 내용으로 보도했고, 20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잇따라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원청업체 사용자와 사내하청(사내하도급) 노동자가 사업장 안전 문제 등을 논의하는 ‘노사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그동안 원청업체들이 하청노동자들에 대해 ‘우리와는 고용관계가 없다’며 대화 자체를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처로 평가된다.”고 평가했다. 노사정위원회는 19일 보도자료를 내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초안은 확정된 바 없고, 현재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에서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핵심 내용은 모두 ‘노력한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초안인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보장이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내용이나 진일보한 내용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리어 불법적인 사내하도급을 용인해 비정규직 사용을 확산시키는 내용이다.
근로계약의 경우 ‘서면으로 명시하여 교부’하도록 했고, 해고할 때는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했다. 근로기준법 17조 및 27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단, 근로계약 체결의 경우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원할 경우 교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교부하도록 한 것 뿐이다.
고용안정을 위한 조치는 모두 ‘노력한다’라는 실효성이 전무한 내용이다. 고용승계에 대해 이전 하청업체는 “새로운 수급사업주의 협의를 통해 희망하는 자에 한하여 사내하도급근로자의 고용이 유지되도록 노력하며”로 되어 있고, 새 하청업체 역시 “그 업무에 종사하던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도록 노력하며, 이 경우에도 종전 근로조건이 저하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로 명시했다.
원청도 똑같다. 원청은 업체를 변경할 때 “새로운 수급사업주와 협의하여 종전 수급사업주 근로자(사내하도급근로자)의 고용이 유지되도록 노력한다”로 되어 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내용이다.
근로조건에 대한 보호도 하청업체는 “임금이 적정하게 책정되도록 노력하며”이고, 원청은 “적정한 도급대금을 설정하되,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하거나 낮은 단가를 강요하지 않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역시 실효성이나 강제성이 전혀 없다.
원청 노사협의회 참가해 의견개진 하라고?
그나마 의미가 있는 조항이 원청과 사내하청이 공동협의회를 구성하라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1안으로 “원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 내에 있는 수급사업주 및 사내하도급근로자의 대표(내지 근로자위원)와 함께 (가칭)공동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한다.”고 했다. 공동협의회에서는 고충처리, 안전, 근로시간 운용, 복리후생시설 이용, 우리사주조합 가입, 직업훈련 등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조차 부담스러웠는지, 원청 노사협의회에 비정규직 근로자위원이 참가해 의견개진 기회를 주는 것을 2안으로 제시했다. “원사업주 소속 근로자위원과 협의하여 사내하도급 근로자위원이 노사협의회에 참석하여 사내하도급근로자의 근로조건, 복리후생 등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노력한다.”
그나마 의미가 있는 1안을 사측이 거부하면, 2안이 된다. 하청노동자가 원청 노사협의회에 참가해 의견 개진하는 것이 진일보한 내용도 아닐뿐더러 실효성도 없다.
불법파견 은폐 가이드라인
합리적(적법) 사내하도급을 위한 조치도 황당하다. 사내하청업체는 “필요한 생산관련 시설․부품 및 소모품을 자기 책임 하에 조달하거나 임차하여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한다. 다만, 생산품의 품질을 제고하고 통일성을 유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 원사업주와 수급사업주가 사전에 협의한 경우에는 원사업주로부터 시설․부품 및 소모품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대차의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있는 사내하청업체가 원청과 협의해 독자적인 시설․부품 및 소모품을 지원받으면 ‘불법파견’이 아닌 ‘합법하도급’이 된다는 것이다.
원청은 하청의 인사노무관리에 간섭하지 않고, 원하청 노동자가 혼재작업과 교대제 운영을 하지 않도록 하되, 아래의 경우는 간섭할 수 있도록 했다.
“사내하도급근로자의 작업방법․작업량․작업속도 및 근로시간에 관여하지 아니한다. 다만,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하거나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작업방법․작업량․작업속도 및 근로시간에 대하여 수급사업주에게 개선 또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자동차의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업무를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작업량과 작업속도 및 근로시간이 정규직보다 적을 경우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불가능해진다. 하루 4시간만 일한다면 차량 절반이 오른쪽 바퀴가 없는 채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해설 및 검토 자료에서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관련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면서 현장에서의 혼돈을 줄이기 위하여 적법한 도급관계를 위한 일정한 지침을 제공하는 안”이라며 “노사 양자 모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에 대해 노사의 합의를 도출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내용을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2안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인 것이다.
대법원 판결 비웃는 가이드라인
이 내용은 ‘공익위원 검토의견’이다. 노사정위원회는 4월 7일 공익위원 검토의견 수준으로 4월 8일 5차 전체회의에 제출해 의견을 수렴한 후 ‘공익위원 공식안’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의 논의와 패키지로 협상할 의도로 사내하도급 공익안 발표를 최대한 늦추자고 했고, 5차 전체회의에서 공익위원안 발표가 연기됐다.
근로기준법의 내용보다 상회한 내용이 전혀 없고, 고용승계나 3자 노사협의회 등 의미 있을 만한 내용은 ‘노력한다’거나 의미없는 2안을 제시해 아무 실효성도 의미도 없는 ‘공익위원 검토의견’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자동차의 사내하청에 대해서는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이, 조선소의 사내하청에 대해서는 2010년 3월 25일 대법원 판결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대법원 판결을 비웃는 내용이다.
민주노총과 사내하청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고 있지 않은 노사정위원회에서 사내하청의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했고, 이제는 그것을 폐기하자며 노조법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점거파업 때 노동부장관이 말한 내용이다. 그는 지난 해 11월 29일 비정규직의 파업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법”이라며 “내년 초까지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초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올 초 청와대 업무보고에서도 3월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즉,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사내하청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규직화해야 할 대상이다.
물론 청소와 경비, 식당노동자들처럼 현행법상 불법파견으로 보기 어려운 노동자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논의도 민주노총은 물론 당사자가 포함된 논의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한국노총과 노사정위가 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대답해야 한다
양 노총 위원장, 배신행위 사죄 없이 공조 복원 … 2006년 이용득의 야합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16개월 만에 악수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4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만나 2시간 가까이 시국좌담회를 열었고, 사상 처음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양 노총은 “이명박 정권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정기조를 전면 전환하라”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정부와 한나라당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양대노총은 현 정부와 모든 대화를 중단하고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양 노총은 △내각총사퇴 △민생대책 마련 △노동법 재개정 △사회공공성 강화 △구속‧수배자 사면 △남북대화 등 6개 항에 대한 대정부 요구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재완 노동부장관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정치투쟁의 연장이며 철 지난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법을 무력화하고 도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정부로서 용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반성 없는 한국노총과 말 없는 민주노총
이날 좌담회에서 양 노총 위원장은 “공조는 진정성과 실효성이 중요하다. 두 노총이 역사·조직상황 등 차이가 많지만 지금은 양대 노총이 하나로 연대해 노동계 힘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공동행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양대 노총이 분열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한국노총이 정부에 구걸하지 않고 투쟁을 결의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전히 많은 노조 활동가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양 노총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약속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왜 한국노총과 공조 복원을 거부해왔다가 갑자기 공조를 하기로 했는지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지난 시절 노동자계급을 배신했던 역사에 대해 어떤 사죄도 하지 않았다. 좌담회 보도자료에도, 시국선언문에도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5년 전 이용득이 한 일
한국노총이 2009년 12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는 법안에 합의해 2010년 한 해 내내 전국의 사업장에서 전임자 문제로 투쟁이 벌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고 이명박을 지지했기 때문도 아니다. 이용득과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파기했지만,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2006년 이용득이 위원장이던 9월 11일. 그는 민주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 허용을 3년 유예에 사용자들과 합의했고, 이를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짓밟았다. 한국노총에서 농성을 하던 조합원들은 감옥에 갔다.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 것도 이용득이었다.
지금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이 탈퇴한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해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려고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대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