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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500조 벌 때, 최저임금은 110원 올랐다

[인터뷰] 21세~70세 빈곤층 ; 저임금, 불안정 노동 끝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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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났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좋았어.”

김종남(가명, 70세) 할아버지는 평생 화물차를 운전했다. 화물운전사 조수는 할아버지의 첫 직업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도 화물차 위에 있었다. 그렇게 40년이 넘게 화물운전을 했지만 6년 전, 허리가 매우 안 좋아졌고 일어날 수 없었다. 짐을 실어 나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통장에 있던 2000만원은 움직이지 않는 25톤 트럭의 유지비와 할부금, 치료비를 내는데 다 사용했다. 그래도 모자란 생활비와 치료비를 위해 1000만원 가량을 대출 받았다. 여전히 일은 할 수 없었지만 빚쟁이들은 자꾸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종로의 한 지하철역에 몸을 누이기 시작했다. 집도 돈도 차도 없이 아픈 몸과 빚만 남았다.

할아버지는 왜 가난해졌는지에 대한 자신의 진단으로 몸이 아프게 된 것을 꼽는다. 60이 넘어서도 새로 나온 차를 구입할 정도로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아프게 될 줄은 몰랐다. 할부금도 다 내지 못한 거대한 트럭은 한 달에 150만원을 꼬박꼬박 잡아먹었다. 의료보험 혜택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돈을 벌고 있을 때 의료보험이나 적금을 들기 위해 시도해봤다. 하지만 수입과 거처가 일정치 않으니 적금이나 보험을 들었다가도 자꾸만 해약하기 일쑤였다. 지출해야 하는 돈은 바로바로 계산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통장에 넣어두는 것이 아저씨가 했던 유일한 재테크였다.

  이명박정부는 기초생활보장에 근로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일하지 않는 사람들로 낙인찍고, 공공부조에 징벌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2010년 1월, 빈곤사회연대에선 근로능력판정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현재 할아버지는 16만원의 참전유공자비와 9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으며 두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24만원 중 20만원은 고시원비로 나가니 생활비는 단 4만원이다. 오래전에 떠난 부인과 자식들에게 기대기는 싫고, 기초생활수급도 받지 못 하고 있다.

평생 일을 하고도 가난한 것, 이것이 현재 많은 노인빈곤층이 처한 일이다. 이들이 가난하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재개발로 인해 평생 일궈온 집에서 쫓겨나 더 적절하기 못한 주거나 일자리로 밀려난 것, IMF때 사업에 실패해 아무리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과 싸우고 있는 것, 중산층으로 살았지만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된 뒤 차츰 가난해 진 것.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가 일을 했거나 혹은 지금도 일하는 중이다.

일하고 가난한 사람들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3주간 6명의 수급/비수급 빈곤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21살의 청년부터 70세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지금까지의 노동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빈곤층으로 유입된 결정적인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모두 불안정하거나 임금이 낮은 노동시장에 장시간 노출되었다는 것은 같았다.

가난하다는 것은 맛있는 것을 못 먹는다든지 여행을 가지 못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때를 놓쳐서 일을 하기 힘들어진다든지 일을 쉬는 동안 생활비로 모아둔 돈을 다 사용해서 더 이상 교육을 받을 수 없다든지, 더 나은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싶었지만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 어떤 종류라도 당장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불안정한 저임금의 노동, 더 나아질 수 없는 삶의 굴레로 빠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Q: 인건비가 낮은 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어, 힘들지. 왜냐면 인건비가 싸니까. 생활하다보면 일하는 사람들 일주일에 한 오일정도밖에 못해 사실은. (하루 일하고 생활하면)돈 사만원도 안남아, 그러다보면. 그러니까 하루 이틀 (일 못 구하고)다니다보면 돈이 안 남는 거지, 사실. 소주한잔 먹다보면 밥 못 먹고. 아침엔 일 나가야하고. 피곤한 거지. 그러니까 5일도 못 하는 거야. 사실은. 다른 사람도 다 그렇지 뭐. 걔들이 많이 하는 애들이 5일이야. 근데 그 사람들이 5일 해도 힘들지. 남는 게 없잖아.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이진구씨(가명, 59세)

건설일용직의 문제는 일자리를 매일 구하기 어려운 것이나 불법 하도급으로 인해 임금이 낮은 것 뿐 만이 아니다. 특히 안정적인 거처가 없는 사람들은 쉴 공간이 없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일을 하기 어렵고, 보상이 낮아 계속 일을 할 의욕도 잘 생기지 않는다. 단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 할 뿐이다. 이진구씨는 술을 좋아한다. 돈을 모아보려고 노력한 적도 많지만 몇 달을 힘 다해 모아봤자 몇 주만 일을 못나가도 병원비며 방값이며 금세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애써 모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술이나 한 잔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내일도 늦지 않게 인력업체에 나가는 것이 삶을 유지하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방에서 술 한잔하는 돈이야 많아도 오천원이면 해결되니 어떤 취미생활보다 값이 싸다. 어차피 모아도 모이지 않는 돈이라는 것을 이미 인생에서의 많은 실패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선연(가명, 62세)씨는 2005년 현재의 동거인을 만난 뒤 둘이 삼년간 600만원을 모아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당시에는 돈을 더 많이 모아 더 잘 살 수 있길 바랐지만 62세인 본인과 60세인 동거인이 청소노동을 통해 돈을 모으기는 적잖이 어렵다. 둘이 일을 할 땐 한 사람 봉급은 모두 저금을 하고 있지만 둘 중 하나나 둘 다 일을 쉬게 될 때 이 돈을 쓰기 시작하니 생각만큼 돈이 모이지 않는 것이다. 더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될 나이가 찾아올까봐 마음이 급하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생각할 때 일이 좀 꾸준하게, 월급이 적더라도 그런 일을 해볼 수 있었으면... 생각이 들지. 나는 여기 이사와가지고 공공(근로)신청하면 떨어져서 한 번도 못했어. 두 번 다 떨어졌어. 일 년 지나고 또 신청해가지고 안 돼 가지고 할 수 없이 ○○자활 찾아간 거지. 일 좀 해서 돈 벌어도 또 떨어지고 나면 갖고 있던 거 또 쓰니까.

이렇게 어렵게 모은 많지 않은 돈도 빨리 사라져버리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가난하고 불안한 일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충격을 완충할만한 사적인 네트워크도, 공적인 부조도 갖고 있지 않다. 불안정한 삶과 저임금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삶에 위기의 징후들은 너무 쉽게 자주 찾아온다. 이혼이나 해고, 단 몇백만원의 지출도 치명적이다. 다음 달의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노후를 대비한 적금을 깨는 순간부터 삶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언제나 당장 지출해야 하는 돈들은 많고 미래를 대비할 여분은 부족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1)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계층 실직자의 소득원천을 분석하였을 때 연금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7.2%로 15개국2) 평균인 42.0%보다 턱없이 낮았으며, 실업급여라고 응답한 사람은 0.0%로 아예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실업급여가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다녀야 하는 것을 통해 볼 때 빈곤층의 이전 직업경험이 안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나라 전 계층의 실직자 소득원천 중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6.8%인데 반해 15개국 평균은 50.0%로 연금의 울타리 자체가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난했던 경험은 기회도 빼앗는다

강미선(가명, 20세) 씨의 집은 ‘차상위계층’이다. 강미선 씨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주소를 이전하기 위해 골머리를 썼다. 성인자녀가 있으면 추정소득이 매겨지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나오는 차상위계층 지원금이 깎이지 않으려면 주소를 이전해 따로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했다. 통장으로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주는 것도 적발되면 가족들이 받는 지원금이 깎일 것이다. 미선 씨가 버는 돈이 너무 많아져도 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끊긴다. 대학을 가지 않은 미선 씨는 주소를 옮기고 얼마의 돈을 벌어도 괜찮은지 알아보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집세를 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대학에 가지 않았으니까)비대학생이기 때문에 그냥 성인으로 취급되어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취급돼서 일할 수 있다 어쩌다 했는데.. 아니 지금 사람들이 다 대학교 가려고 혈안 돼 있는 이유는 정규직으로 일하기 위해서라든지 그럴듯한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든지 그런게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부양을 하려면 하겠지만 돈을 한 삼백?벌면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게 아마 절대 못할 테고. 제 신분이? 하, 신분이래... 그래서 벌어도 백만원이하? 이런게 최대일텐데. 그런 사람한테 부양을 하라고 말하는 거잖아요?

걱정은 이것만이 아니다. 미선 씨는 소득이 잡히는 것이 불안해서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직장을 알아보고 있으며 스무살에 집을 떠난 이후엔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한 달에 77만원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서울의 높은 집값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미선 씨는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집을 구할만한 돈은 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친구가 갖고 있는 보증금에 월세만 보태며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 강미선씨의 고민이다.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기를 계발하고 교육을 받는 장기적인 꿈을 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젊은 나이라고 하지만 미선씨에게 선택지는 결코 많지 않다.

가난에 대한 숱한 오해

지난 해 한 작가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최고은 작가는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시나리오가 계속 영화화되지 못하면서 점점 더 가난해졌다. 그녀는 가난, 병과 싸우다 자신의 방에서 생을 마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이 사회의 타살’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젊고 몸 건강한 사람이 나가서 다른 일이라도 했어야지 어리석다’고 탓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조금 들여다 본 경험을 통해 이해해 본다면 최고은 씨가 그렇게 단순한 선택지에서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닐 듯하다. 가난은 훨씬 연속적인 사건의 결과이며, 그 고비에 대한 대처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어렵기 때문이다.

빈곤의 문제가 사라진 듯 보이는 화려한 도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재는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도 언젠가 내가 늙으면, 병이 생기면, 갑자기 일하던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나 염려하며 가난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 현재 빈곤에 대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매우 강력하게 ‘근로’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라는 것은 이 사회의 강력한 주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빈곤층이 일을 해왔거나 지금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난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2010년 조계사에서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이 25일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출처: 빈민해방실천연대(준)]

올 봄, 30대 그룹의 자산이 1000조를 넘어 3년간 54.2%나 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경제위기에 우는 소리를 하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하청업체의 목을 조르고, 최저임금을 인하하자며 핏대를 세우던 대기업들이 엄청난 성장을 일구어냈다며 자신들의 노고를 경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때 삶과 꿈을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고, 청년들은 빚 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작년 최저임금은 ‘길 가다 우연히 주울 수도 있는’ 110원 인상에 그쳤다. 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주지 않은 신혼부부들은 집이 있는 사람들보다 돈 모으기가 훨씬 더디며, 월급만 받아 잘 살 날을 꿈꾸는 사람들은 바보취급 당한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나는 제일 후회하는 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95년 전쯤 집 한 채 마련했으면 지금처럼은 안살 거 같다는 거야. 아니면 아이엠에프 터질 때 남편이 보증만 잘못 안 섰어도 20년 동안 일하면서 내 차한대 없진 않겠지. 그래도 완전 최빈곤층, 이렇게 안 되고 사는 건 내 남편이나 나나 몸은 안 아프니까 그런 건데, 나이 더 들면 어떨지 몰라.”

20여년 구로의 전기공장에서 일을 해온 43세 여성노동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기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이 분이 바라는 것은 계속 일 할 수 있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애 낳았을 때 말고는 일 년 이상 쉬어본 적도 없다’는 이 분이 아직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43세인 지금도 ‘언제나 0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느껴야 하나? 이러한 불합리를 끝내야만 더 많은 빈곤층과 꿈을 잃은 사람들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 경험을 통해 적절하지 않은 일자리와 임금, 주거가 빈곤을 심화시키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빈곤사회연대>는 계속 조사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저임금의 노동과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각주)-----------------
1) ‘가난한 사람들의 일과 삶’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9.6)
2) 호주, 독일, 영국, 미국,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프랑스, 덴마크, 스위스, 핀란드, 한국의 자료를 비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