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27일부터 시작된 주민발의 운동은 올해 4월 26일까지 서울시민의 1%인 약 8만 2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야 조례안을 시의회에 발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서명운동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학생인권조례 서명운동이 실패할 여지가 커졌다’는 지난 1월 24일 <동아일보>의 1면 기사가 나온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기사의 내용 중 현재까지 5,000여 명의 서명 밖에 받지 못했다는 부분은 과장되고 왜곡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1만 명의 서명을 약간 넘게 받은 상황에서 앞으로 4월 26일까지 약 2개월 동안 7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기사가 지적한 대로 솔직히 쉽지 않은 엄연한 현실이다.
주민발의 운동의 실패? 학생인권 운동의 실패!
물론 운동이 항상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 사실 그동안 운동이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던 것이 현실 아니었나? 또 어떤 이들은 주민발의 운동이 실패하더라도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서울시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할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주민발의 운동의 ‘실패’가 ‘주민발의 운동 자체의 실패’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의 주민발의 운동은 전체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의 상징이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일군의 보수 언론이 주민발의 운동의 성패에 스토커 같은 관심을 보이면서 주민발의 운동을 깎아내리는 기사를 틈틈이 보도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주민발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여론의 흐름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주민발의 운동이 실패한다고 생각해 보자. 분명 보수 언론은 주민발의 운동의 실패를 두고 학생인권 보장에 대해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고 거부했다는 식의 논조로 대대적으로 보도를 내보낼 것이고 이는 무시 못 할 여론의 흐름을 결정할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서울시 교육청의 체벌 금지나 학생인권조례 등의 정책 추진이 쉽게 진행될 수 있을까?
정치적 후폭풍은 서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북, 경북, 광주, 경남, 충북 등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물론 올해 3월부터 발효될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해 추진한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에도 정치적 정당성을 키워 줄 수도 있다. 결국 주민발의 운동의 실패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나아가 학생인권을 위한 운동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위기의 원인: 운동 주체들은 무엇을 했는가?
어쩌다 주민발의 운동이 이런 위기 상황에 처했을까? 의제 자체의 어려움? 일전에 주민발의 운동에 성공한 친환경급식조례와 광장조례의 경우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간단한 내용과 더불어 누구든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이 컸다. 그와 반대로,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담긴 내용이 방대하여 그 전반을 소개하는 것이 어렵기도 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구시대적 시각이 남아 있는 사회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최근에 몇몇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부각된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폭력 사건들로 인해 학생인권에 대한 여론도 악화된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가운데 주민발의 운동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명쾌하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단순히 조례 제정 운동이 의제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위기에 처하지만은 않았다는 의문. 나는 이 문제를 짚어 보고 싶다. 주민발의 운동을 해 왔던 운동 주체들의 문제는 없었을까? 주민발의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매진해야 할 지금 이 시점에 논란을 만든다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남은 기간 동안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어 결국 주민발의 운동이 실패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라는 깊은 고민과 우려가 있다. 나는 운동 주체의 문제, 특히 학생인권운동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전교조와 교육운동의 문제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전교조, 실천 없는 고민
교육감 선거 이후 전교조 서울지부는 다른 시민사회인권단체들과 함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를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조례 제정 운동의 방식도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주장하면서 본부가 주민발의 운동을 결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주민발의 운동과 더불어 서명 조직화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약속했다. 전교조 본부 역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전교조의 앞선 결정들에 대해 그때도 그러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런 결정만큼 실천도 이루어졌는가?
지금까지 받은 서명의 수를 언급하고 거기에서 전교조가 원래 얼마를 책임지기로 했는지 지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문제의 핵심을 짚어 내고 해결하는 데 불필요할 뿐더러 서로의 구차함을 확인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짚어야 할 점은 전교조란 조직 내부에서 이 주민발의 운동에 대한 실천을 끌어내기 위한 사업들이 제대로 전개되었는지, 아니 그러기 위한 시도라도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다. 전교조 지도부는 주민발의 운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로 학생인권에 소극적인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꼽았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조합원들의 의식 변화와 실천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회-분회 차원에서 교육과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라도 했는가? 참여가 배제된 권력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주민발의 서명운동이 하향식으로 추구된 것은 아닌가? 아니 하향식이라도 주민발의 운동을 제대로 집행하려는 시도라도 했는가?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최근 경악할 만한 소식이 하나 있었다. 전교조 서울지부가 집행위원회를 열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에 대한 진로를 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바로 주민발의 운동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 집행부는 주민발의 형식의 운동을 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모색한다는 안을 내놓고, 다수가 이를 찬성하는 가운데 표결을 통해 결정하려 했으나 소수의 지회장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결국 다음 집행위로 유예되었다고 한다. 올해 집행부가 교체되었다고 하지만 추진 중에 있는 사업을 갑자기 바꾸려는 시도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실천을 해 보지도 않은 채 조례 운동의 중단을 선언해 버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특히 이 집행위 회의는 서울본부가 다시 회의를 통해 주민발의 운동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로 결정한 이후 진행되었다. 서울지부가 서울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연대 단체에게 어떠한 의견을 구하거나 상의도 진행하지 않은 채 주민발의 운동의 중단을 추진했던 것은 과연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대 운동에 기본적 신의, 아니 상식이 남아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든다.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 전교조 운동이 학생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수준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생인권은 교사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 혹은 철학의 수준을 보여 주는 리트머스시험지라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교사라는 노동자는 학생들을 만난다. 학생이 없으면 교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교사에게 학생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규정짓는 중요한 대상이다. 학생인권은 바로 교사가 만나는 학생이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를 드러낸다.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하나의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함께 교육을 만들어 나가는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근의 학생인권 담론은 교사에게 학생관의 변화와 더불어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전교조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었는가?
장석웅(55)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신임 위원장은 5일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를 전격적으로 시행해 교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임기 2년의 전교조 위원장에 취임한 그는 본지와의 첫 단독 인터뷰에서 “‘오장풍’ 교사 파문 직후 곽 교육감이 교사들에게 대비할 기간도 주지 않고 체벌 금지를 도입하는 바람에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교조 위원장이 친전교조 성향인 곽 교육감의 정책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
-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로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애로를 호소한다.
“교사 생활을 30년 했다. 나도 문제 아이들은 자장면을 함께 먹고 낚시도 가서 도닥인다. 때로는 한 대씩 두드려 패기도 하고 소통한다. 체벌은 물론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 협의가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쉽다. 이 사안을 일부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다.”
_ 장석웅 “곽노현 체벌금지 우려”, <중앙일보>, 2011년 1월 6일자
한 차례 이슈가 되었던 신임 전교조 위원장의 인터뷰. 나는 그가 두 가지를 솔직히 고백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가끔은 ‘한 대씩 두드려 패기도 하며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체벌 금지에 대해 원론적인 찬성을 하지만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 우린 후자의 경우를 눈여겨봐야 한다. “학생관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데 우리는 현실이 어떻다는 답을 보내고 있다.” 체벌 금지 및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변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 현장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현실론’을 언급할 뿐인 무기력한 교사운동의 문제를 짚은 어느 교사의 표현은 이에 대한 평으로 굉장히 적절하다. 장 위원장의 인터뷰는 (전교조 위원장으로서 그러한 답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는 둘째 치고) 전교조 조합원이 학생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의 일반적 수준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전교조 운동이 가지고 있는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철학의 빈곤은 고민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철학, 특히 운동의 철학은 고민을 넘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천 없이 사변에만 머물러 있는 철학의 빈곤 속에 빠져 있음을 드러낸다. 현실은 변화하고 있고 무엇보다 주체들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운동이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곤혹스런 상황을 모면하려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이 전교조 운동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는 아닐까? 그동안 길게는 2006년 전교조가 주도해서 만든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 때부터 최근 전교조 창립 20주년을 맞아 ‘제2의 참교육운동 선언’을 발표한 때까지 매년 학생의 날마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 왔나. 그러나 학생인권 정책들이 현실화되는 이 시점에 전교조는 얼마나 무기력한가? 그 다짐들이 의례적 수사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는 차마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조직은커녕, 교육이나 토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학생인권이란 가치가 요구되고 있는 이 시기에 원론적으로 찬성한다는 당위론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다. 오히려 학생인권 정책의 정착을 위한 시스템 개혁 요구를 공세적으로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학생인권 보장 요구에 환영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교육 시스템의 전면 개편을 요구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동안 주야장천 요구해 왔던 교실당 학생 수 감축, 교사 임용 확대 등 시스템적 개편 운동으로 전면화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이것은 소중한 기회가 아니었을까? 아니 이런 고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벌 금지나 학생인권조례가 너무 충격적이었나?
교육운동, 실천 없는 운동
나는 최근 주민발의 운동과 나아가 지금의 학생인권 정국 속에서 (감히 표현하건데) 전교조 운동을 포함해 교육운동 진영이 가지고 있던 밑천 역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본부에도 몇몇 교육운동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어떠한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단체도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는 단체들도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비판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
북극을 정확히 찾기 위해 끊임없이 떨리는 나침반처럼 언제나 그 단체들은 원칙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스스로의 운동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고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만한 옳은 입장을 내놓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주장을 사람들이 잘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칙을 운운하며 강하게 소리 높여 얘기함에도 그 주장에 사람들이 잘 수긍하지 않는 것은 그 주장들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지만 서명을 얼마나 받아 냈냐는 책망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주장한 사람들이 왜 정작 자기 조직 내에서 아래로부터의 실천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특정 단체, 특정 개인만의 흐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교육운동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어떤 사안이 터지면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지만, 그 사안을 정말로 막기 위한 구체적 실천도 계획도 수립하지 못한 채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다. 어쩌면 지금의 교육운동이 어떠한 구체적 실천도 하지 못하는 것은 발로 뛰는 행동 없이 입으로 엄포만 외쳐 왔던 운동의 결과는 아닌지 고민해 본다.
적극적으로 실천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서울본부에 이름을 걸고 참여하는 교육운동단체는 그나마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조차 하지 않는, 아니 주민발의 운동에 관심조차 없는 교육운동단체들이 수두룩하다. 각각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 이해하지만 교육감 선거에는 그렇게 높은 참여도를 보인 이 단체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쉬움을 숨기기는 어렵다. 이 단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학생인권 정책에 무관심한 단체들, 그리고 두 번째는 서울시 교육청이 추진하면 되는 일을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판단하는 단체들.
전자의 경우는 굉장히 심각하다. 최근 교육운동을 넘어 진보운동이 위기라고 얘기하는 것은 운동이 재생산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나는 교육운동이 이 현실에 대해 큰 반성을 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체제가 끊임없이 유지되고 충원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적인 재생산 구조가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바꾸는 교육운동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계층만이 특권을 누리는 이 사회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주체를 생산해 내는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감수성을 불어넣는 작업, 즉 학생인권을 중요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업에 이른바 교육운동을 한다고 하는 단체가 관심이 없다면 사회 전체 혹은 교육 전체의 변화는커녕 자기 단체의 존립은 가능한지 걱정될 따름이다.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이 추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 앞서 이야기했듯 주민발의 운동이 실패했을 때 교육청의 정책 추진 역시 힘들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변화가 교육감 선거에서 이겼다고, 교육행정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변화는 위에서부터는 물론 아래에서부터도 진행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을 지지하는 민주진보 교육감을 당선시켰다 하더라도 주민발의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일어나고 있는 체벌 금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의 학생인권 조치에 교총 등 보수적 교육단체들이 저항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 이들의 반인권적인 저항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청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진행하고, 더불어 주민발의 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위세를 압도할 만큼 학생인권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주민발의를 꼭 성공시켜야 한다. 이것이 주민발의 운동에 교육운동단체들이 손 놓고 보고만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역전 만루 홈런을 기대하며
다소 거칠게 얘기를 던졌다. 물론 주민발의 운동의 위기는 전교조 운동, 교육운동의 문제만이 원인은 아니다. 시민사회, 인권, 노동, 그리고 청소년 운동 자체도 너무나 관성적이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 줬다. 어느 누구도 지금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전교조 운동과 교육운동의 진영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교육의 변화를 최우선적으로 꿈꾸고 지금까지 교육의 변화를 선도해 온 이들이 그들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여전히 그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대가 없었다면 이러한 비판도 없었을 것이다.
주민발의 운동은 아무리 커다란 어려움이 존재해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 주민발의 실패가 가져올 부담을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서울본부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주민발의 운동을 추진하기로 다시금 결의했다. 이제 서울본부는 반드시 4월 26일까지 8만 2,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 운동을 성공시켜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 긍정적인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그동안 참여하지 않았던 풀뿌리 단체, 종교단체,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적극적인 참여를 약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아 우편으로 보내 주거나 웹은 물론 거리에서 지지와 후원을 전해 주고 있다. 운동 진영과 시민들의 참여 속에 조금씩 주민발의 운동의 희망이 보이고 있다.
또 한 가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진행된 일꾼 연수에서 주민발의 운동을 이어 가는 것으로 분위기가 모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에 진행될 집행위의 결정을 살펴봐야겠지만 이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리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남은 2개월 동안 말뿐인 연대를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는 교육운동 진영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이다. 주민발의 운동은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목표이자 더불어 운동의 변화를 위한 계기여야 한다. 교사와 교육운동이 청소년의 삶과 연대하는 계기, 교사와 교육운동이 관성에서 벗어나 실천으로 거듭나는 계기. 그 계기는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전교조 운동과 교육운동이 다시금 부활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2011년 4월 27일, 전교조와 교육운동 진영의 변화를 통한 주민발의 운동의 성공을 기대해 본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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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성격상 필자는 익명으로 처리합니다.
*이 글은 <오늘의 교육>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