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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계곡-삶에 대한 모독과 싸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연속기고] 팔레스타인 ‘땅의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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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 더욱 심한 억압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이라고 말할 때, 그 중의 어디가 떠오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자(Gaza)나 예루살렘(Jerusalem)을 손꼽을 것이다. 아니면 라말라(Ramallah), 나블루스(Nablus), 제닌(Jenin), 헤브론(Hebron) 등 요르단(Jordan) 강 서안 지구의 도시들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어로 된 팔레스타인의 소식이 아직 부족한 지금, 팔레스타인의 소식 대부분이 앞서 열거한 도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언론기관이 보내는 특파원들이 걸어 다니는 지역, 여러 나라에서의 연대활동가들이 현지 생활하면서 활동하는 곳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식도 그것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 더욱 심한 억압이 숨겨 있는 법이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난민’ 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 황야에 늘어서 있는 천막들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 어떤 이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난민이나 캠프에서의 생활은 사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현대적인 도시 생활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로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앞서 말했 듯 우리 시각의 한계에서 생긴 ‛편견’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올해 특히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지역에 주목한다. 이 글에서 이야기할 요르단 계곡도 그 중 하나이다 [1]. 이 지역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갈릴리 호(Sea of Galilee)에서 남쪽으로 흘러나온 요르단 강이 사해(Dead Sea)의 일부분을 이루는데 이 강의 흐름이 만든 계곡 지역이 바로 요르단 계곡으로 그렇게 보면 여기도 성경의 무대이다. 그리고 그 이름 그대로, 이 지역은 이웃 나라인 요르단, 그리고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이 있고, 팔레스타인 연대에 관심이 깊은 분이 알 법한 이야기로 설명하자면, 오슬로 협정 안에서 팔레스타인이 A, B, C의 세 지역으로 나눠졌는데 요르단 계곡은 그 99.5%가 C지역이다. C지역이라는 것은 요르단 계곡이 원래 1948년의 휴전라인인 그린라인 안에 있는데도 팔레스타인 측에 전혀 주권이 인정되지 않은 채 보류된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이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주권의 부재라는 것이 여기서 사는 사람들의 무권리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알론 계획’에 따라 ‛민족 청소’를 당하는 요르단 계곡의 팔레스타인인들

1948년의 나크바(Nakba. [2])를 거쳐 요르단이 병합한 서안 지구, 그 중 요르단 계곡은 비옥한 땅을 이용해 농업 개발이 진행되고 잘 사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1967년의 6월전쟁[3]으로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요르단 계곡은 다른 지역보다 한층 높은 지배와 수탈을 겪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그 중심 정책인 국경 방위를 이유로 요르단 강 일대를 군사봉쇄지역으로 지정하여 팔레스타인인을 배제했다. 이러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의 배경에는 당시 이스라엘의 여당이었던 노동당 간부 이갈 알론(Yigal Alon)에 의해 세워진 이른바 ‛알론 계획[4]’이 있었다. 앞으로 있을 점령지 반환 문제를 검토하면서 알론은 전략 기타 이유로 중요한 요르단 계곡 및 사해 해변을 이스라엘에 병합시키고 나머지를 요르단에 반환하겠다고 말했다. 이 계획은 주변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의 이해를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쟁에 의한 국경의 변경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법 위반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이 계획을 채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의 A,B,C 구역 구분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 계획을 바탕에 두고 입장을 주장할 수 있었다. 오슬로 이후의 국제 사회가 말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2국가 분리안도 이스라엘의 생각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 아래 진행해 온 이 지역의 ‛민족 청소’(Ethnic Cleansing)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가혹하다. 요르단 계곡 지역의 총면적 2,400km²가운데 46%가 언급한 군사봉쇄지역인데 또다른 50%는 1967년 이후 세워진 이스라엘인들의 점령촌이 점거하고 있다. 즉 나머지 4%가 팔레스타인인이 농업과 거주를 할 수 있는 지역인데, 요르단 계곡에서 C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이 전체의 99.5%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측의 주권이 그나마 인정된 부분은 0.5%인 셈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이 남은 땅 대부분 지역에서 주권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채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요르단 계곡에서는 67년 이후 새 건물의 건축, 수리가 불허됐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오래되고 좁아진 집에서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0.5%인 A,B 구역에 속하지 않는 가옥에 대해는 계속적으로 파괴 공격이 가해져 왔다. 수도, 전기의 공급이 중단되고, 새 집뿐 아니라, 병원, 학교 등의 공공시설도 허락되지 않고 있다. 가옥이 파괴된 사람이나 가축들은, 우리가 예전에 팔레스타인인의 생활을 그렇게 생각했듯이, 아직 천막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요르단이 병합했을 당시엔 162 가구의 농업용수 정비가 마련되었지만, 67년 이후 팔레스타인인은 이 용수을 포함한 요르단 강의 수자원 이용을 금지당했다. 남은 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조차 근처에 세워진 점령촌의 거대한 우물에 의한 물 수탈, 그리고 폐수로 인한 심한 오염때문에 상당히 부족하다.

산업도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 검문소의 존재, 점령촌에 대한 보호 정책 등으로 팔레스타인 농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배포한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이 지역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유일하게 일자리를 구하는 방법은 점령촌 내에 있는 공장과 같은 이스라엘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현재 국제적인 BDS운동[5] 가운데 큰 비난을 받고 있는 카멜 아그렉스코(Carmel Agrexco)[6]나 아하바(Ahava)[7]는 이지역의 점령촌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네타냐후 등장으로 과속된 가옥파괴

2009년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다시 정권을 잡은 후 요르단 계곡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해졌다.

네타냐후는 알론 계획을 이어받은 ‛알론 플러스’를 1997년에 발표한 사람이기도 한다. 이 계획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네타냐후의 리쿠드 당은 노동당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지만, 2001년 리쿠드 당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정권을 탈환한다. 샤론이 2003년에 시작한 고립 장벽(Separation Wall)은 네타냐후가 발표한 알론 플러스에 보이듯 원래의 알론 계획에는 없었던 것이다. 고립 장벽은 서안 지구의 그린 라인을 크게 침입해서 세워진 광대한 점령촌을 ‛이스라엘 땅’에 연결시키도록 세워져 있다. 2010년 여름의 조사[8]에 따르면 현재 총 810km의 계획 중 64%인 520km가 완성된 상황이다. 재정 부족과 재판때문에 건설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데, 그 대신 국제 사회의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은 요르단 계곡에서 가옥 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네타냐후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발언을 비롯한 점령촌 추진의 움직임이 미국에서 큰 불쾌감으로 받아들여짐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 정권은 요르단 계곡에 대한 공격을 다시 한층 강화시켰다. 국가자원부(Ministry of National Infrastructures)의 우지 란다우(Uzi Landau)는 지난 4월 서안 지구에 대한 물 공급의 중단을 언급했다. 팔레스타인인의 농공업 폐수가 심하여 점령촌에서 쓸 지하수가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며! 팔레스타인 측의 사회 기반 마련을 방해하고, 마음대로 거대한 점령촌 개발을 진행시켜 놓은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니다.

란다우는 샤론 정권의 출범 당시의 경찰장관이자 제2차 인티파다의 계기가 된 샤론의 알 아크사 침입 사건 때도 현장에서 경찰 부대를 지휘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샤론이 가자에서 일방적인 철수를 계획하자 이에 반대하여 정권 다툼를 시도하는 등 우파 중의 우파로서 정치활동을 해 온 끝에, 현재 아비그도르 리베르만(Avigdor Lieberman)이 대표하는 극우정당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당(이스라엘 우리집 당)의 No.2로서 연립 정권에 참여하고 있다. 2차 네타냐후 정권은 이러한 극우파가 오른쪽에서 극단적인 점령 정책을 제기하고, 네타냐후가 대외적으로 이러한 극단적인 현상을 완화시키려 노력하는 척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정권의 정책을 오른쪽으로 수정하는, 이러한 역학으로 운영되는 모양새이다. 따라서 요르단 계곡같은 곳은 더욱 억압이 심해지고 있다.

란다우의 발언 후 4월 11일 요르단 계곡 바르다라(Bardala) 마을에서 물공급이 중단됐다. 12일에는 아인 알-마리파 (Ein al-Malih) 마을이 군사봉쇄지역으로 선언을 당하고 농민, 유목민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15일에는 히르바트 알-파리시아 (Khirbat Al-Farisiya)마을에서 농민들이 소유한 양수 펌프 4대가 이스라엘 당국에 몰수당했다. 이러한 공격이 원래 언급한 지하수 오염과 상관없다는 것은, 10일 후인 25일 군과 경찰의 지원을 받아 알-마리파 마을에 나타난 침략자들이 마을 코앞에 천막을 짓고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9월 26일 네타냐후 내각은 서안 지구에서의 점령촌 건설 중단 연장을 취소했는데, 그 후 10월 6일에는 알-파리시아에 바로 옆에 있는 메호라(Mehola) 점령촌에서 주택건설이 시작되었다. 마을의 파괴가 점령촌의 확대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7월 19일에는 다시 알-파리시아 지역의 두 마을에서 74채의 가옥이 파괴당하고, 52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07명이 집을 잃었다. 8월 5일에도 4가구의 집도 새롭게 파괴했는데,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레츠(Haaretz)는 일련의 군사행동의 근거로 ‛불법’ 건축물에 대한 법집행을 강화하라는 정부의 명령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르단 계곡이 점령지임을 생각할 때 ‛불법’적으로 집을 짓는 것은 점령자 측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외에도 지금 격화되고 있는 점령민에 의한 약탈, 방화, 폭력 등의 불법행위도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인권단체 예슈 딘 (Yesh Din)의 발표 (2011년2월)에 따르면 이 몇 년 동안 민원이 제기된 642건의 점령민 의한 인권 침해 사건 가운데, 이스라엘 검찰이 기소한 사안은 고작 9%라고 한다. 폭력사건의 78%, 재산침해사건의 93%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되었다.

점령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스라엘 당국은 공식적인 대응으로 비판을 피하려고 했다. 지난 2월 28일 네타냐후는‛불법’ 아웃포스트의 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평화단체 피스 나우(Peace Now)에 따르면, 3개의 아웃포스트를 철거한 반면 97개의 아웃포스트를 합법화한다고 한다. 철거를 전면에 내밀고 점령 정책 전체를 보수하겠다는 작업은 2005년 샤론이 강행한 가자에서의 일방적 철수과 닮은 꼴이다. 당시에 철수 정책에 반발했던 가자의 이스라엘 점령민들이 이주해 간 곳은, 동 예루살렘에 ‛합법적’으로 세워진 새 점령촌이다.

아직도 ‛왜 탱크 외벽을 두드리지 않았냐!?’고 소리 지를 것인가?

이스라엘이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고 국제사회의 법윤리에 따를 것이라는 생각은 달콤한 망상일 뿐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은 사방이 이스라엘에 둘러싸인 곳이 되어버렸다. 2국가 공생이라면 듣기 좋게 들리지만, 가자의 사례를 보면 고립 장벽과 팔레스타인인이 없어질 그곳은 또 하나의 ‛하늘만 열린 감옥’이 될 것이다.

오슬로 협정이라는 ‛항복문서’를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에 강제한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가산 카나파니 (Ghassan Kanafani)의 소설 「뜨거운 태양 아래서」에 나오는 탱크로리 운전 기사처럼 탱크안에 숨었다가 익사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봐요들, 왜 탱크 외벽을 두드리지 않았소!?’하고 소리 지를 것인가. 요르단 계곡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는 한, 팔레스타인이라는 탱크는 이제 사람이 죽을 만큼 두껍다.


[각주]-----------------

[1] 확인을 위해 말하자면 이번 특집에서 다루지 않은 지역이, 아무 문제 없이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다루지 못한 지역에 대해서는 앞으로 가능한 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웹진의 기사나 트위터를 통해서 알리고 싶다.

[2] 팔레스타인의 땅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세우자고 하는 사상(시온주의 [Zionizm]) 을 가진 유대인 무장세력의 봉기로, 유대인을 제외한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국외로 피난할 수밖에 없었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여 이 피난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졌다. 이 역사적 사건을 팔레스타인인 및 아랍 측에서 '나크바'(대재앙의 뜻)라고 부른다.

[3] 아랍 국가들 특히 이집트 및 시리아에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이 이를 이유로 주변 아랍국가를 공습, 공군력이 사라진 각국에 무력으로 진공하여 가자, 서안 지구 등 팔레스타인 전역뿐 아니라, 시리아의 골란 고원(Golan Heights),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Sinai Peninsula)까지 점령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이 이 전쟁을 유대교의 신화에 연관지어 6일 전쟁이라고 하는 반면 아랍 측에서는 6월에 생긴 일이기 때문에 6월전쟁이라고 한다.

[4] 알론 계획에 대한 해설적인 문서는 찾지 못했으나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그림으로 이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http://www.defensibleborders.org/images/map3.jpg). 이것을 개편한 네타냐후의 알론 플러스는 다음에 있다 (http://www.fmep.org/reports/special-reports/greater-jerusalem/map-netanyahus-allon-plus-final-status-map).

[5] BDS운동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및 기업, 공공단체, 문화학술단체 등이 이스라엘 의한 점령과 전쟁 정책 추진하는 데에 기여한는 것들에 대한, 불매와 참여•참속•개최의 불허 (Boycott), 투자철수 (Divestment), 제재 (Sanction)를 제기하는 운동이다. 2005년 팔레스타인의 정치 당파, 노동조합, 협회조직, 사회시민단체 등 171단체가 횡단적으로 연명해서 시작된 후, 전세계의 참여를 받아 거세게 전개되고 있다.

[6] 카멜 아그렉스코(Carmel Agrexco) 는 농산물을 거래하는 이스라엘의 무역회사. 서구사회에서는 슈퍼마켓에 이스라엘에서의 1차 산업생산물을 살 기회가 많고, 카멜사도 비교적으로 흔한 존재이기때문에 그동안 유럽 각국에서 커센 불매운동이 진행되었다.

[7] 아하바(Ahava)는 사해의 소금, 미네랄을 이용한 화장품을 만드는 기업이자, 한국에서도 각종 인터넷 몰,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잘 알려진 기업이다. 이 제품과 기업의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사해를 이스라엘의 고유물처럼 선전하는 이스라엘 의한 문화수탈도 너무 심각한 문제다.

[8] 고립 장벽에 대한 계속적인 반대 운동을 국제/국내 사회에 요청해 온 팔레스타인의 사회 단체 The Grassroots Palestinian Anti-Apartheid Wall Campaign (http://stopthewall.org/index.shtml) 이 발표한 「고립 장벽(2010년 )」 (The Apartheid Wall 2010 Fact Sheet http://www.stopthewall.org/downloads/pdf/2010wallfactsheet.pdf) 에서는 이 총 길이 뿐만 아닌 다양한 장벽에 관한 현재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