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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은 어떻게 해고되었나?

[칼럼] 노동은 자본의 유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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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이 명박 정부는 국가고용전략 회의를 열며 노동 시간의 유연화를 앞당겨 시행하고 있다. 고용, 임금, 노동 시간의 세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노동자를 포격하는 전쟁이 리비아 사태와는 다르게 비가시적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자체 모순으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전체적으로 하방 압력을 거세게 받고 있다.

이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게 시급노동자의 위치로 내몰리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고 뭐고 그냥 시간 당 돈을 받으며 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이든 생활임금이든 기본소득이든 노동조합이든 푼 돈 받아 끼니나 해결하며 살라는 것이다. 양 손에 돈 백은 커녕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아가며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대학교에서 성 억압, 남녀 차별을 받아가며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본이 보기에 노동은 유령 그 자체다. 대학에서 궂은 일 도맡아 가며 돈 백도 안 되는 돈 받아가며 복도 후미진 곳 장롱 같은 곳에서 숨어 사는 노동자들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에서 용역업체의 고용승계 거부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출처: 대구지하철 청소노동자 원직복직 투쟁 지지모임(cafe.daum.net/ggfight)]

지난 1월 5일부터 대구지하철 청소용역업체의 야간기동반으로 8년 동안 일했던 비정규직여성노동자 2명이 대한상이군경회 청훈용역으로 업체가 변경되면서 고용승계에서 제외되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 상반기부터 12월까지 대구에서는 계명대 동산의료원 식당노동자들이 이중적인 하청으로 잘려 현재 대구 사회운동의 지난한 노력으로 극히 일부가 불안정한 상태로 복직되었다. 동산 투쟁이 갈무리되기 무섭게 다시 대구에서 대구지하철 노동조합 소속 여성노동자들이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또 다시 투쟁의 전선에 나서고 있다.

홍익대에서 거둔 청소노동자들의 승리와 달리 대구에서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조합은 노동조합원인 두 명의 해고에 대해 수수방관하면서 투쟁의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다. 노조가 해고자들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용역업체의 말만 듣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노동조합일 수 있는가? 작년 동산 투쟁 때에도 그랬지만 노동자 아닌 인간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가로막고 나서는 한심한 작태가 또 다시 연출되고 있다. 노동자가 스스로 자본의 유령임을 인정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조합은 대구의 노동자 민중 세력과 더불어 부당하게 해고된 두 명의 여성 노동자의 복직 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동조합의 간판을 내리고 자본의 품으로, 여성 노동자들에게 폭언을 일삼던 대구지하철 남성현장소장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측과 교섭을 통해 해고된 여성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노동조합이 사측의 해고명분에 힘을 실어준 행위는 노동자를 배신한 행위이기에 자본의 그림자로 살아가야 한다.

노동은 자본의 그림자도 유령도 아니다. 대학 건물 후미진 곳에, 지하철 안의 비가시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유령들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은 지칠 줄 모르고 노동자를 유령화하려고 한다. 노동자를 비품 처리하여 사물화 하는가 하면 유령으로 둔갑시켜 좀비 화 한다. 죽은 노동으로 만들면 자본이 순환되지 않으니 죽이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산 노동으로 부활시키자니 자본 축적에 장애물로 등장한다. 따라서 노동자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를 유령화하거나 좀비 화 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묶어 버리고 필요 없으면 크리넥스처럼 버리는 일이 금수강산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니라 산 노동의 피를 흡혈하는 자본의 금수강산禽獸江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용을 이야기하되 불안정고용으로 귀결되고 안정을 이야기하되 불안정으로 귀결되며 보호를 이야기하되 비보호 내지는 폐기처분으로 귀결되는 것이 최근 자본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이고 그 전략에 미조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 명박 정부의 국가고용전략의 핵심은 노동자를 통해 21세기 판 사람장사를 하는 것이다. 영화 <황해>에서 주인공 구남이 6만 위엔의 돈(자본)에 묶여 사람을 죽고 죽이는 판으로 내몰리듯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절정기에 노동자들은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는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가운데 용역업체, 하청업체들이 개입해 자본의 이익을 나누어 가기 위해 노동자들을 자본의 유령, 자본의 그람자라는 족쇄에 묶어 두려고 한다.

왜 하필 청소노동자, 지하철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지난 1 -2 년 사이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는가라는 정세 판단이 요구되는 시절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본의 위기가 이윤율의 하락과 함께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 시장 전체를 저임금 불안정화하려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실업예비군을 필요로 한다. 내가 문제가 있고 팔자가 더러워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는 일정 부분을 자본의 외부에 실업예비군으로 저장해 놓는 시스템이다. 정 자본주의가 안 돌아가면 그 저장소에서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꺼내다 쓰면 된다. 그게 아니면 굳이 임금을 줘 가며 노조나 만들 실업 예비군을 노동시장 안으로 들여올 필요가 없다. 실업자는 이래서 생기는 것이다. 현재 정세는 높은 임금과 각종 시혜로 정규직의 노동 운동의 발목을 묶어 놓고 비정규직 노동을 최저임금, 간접 고용, 파견 노동, 하청, 하청에 하청 등으로 노동 시장을 저임금 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 시장의 전반적인 임금 하방 압력이 시작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 효과가 지난 1 -2 년 사이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대구에서는 지난 3월 23일 대구지하철 청소노동자 원직복직 투쟁을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비정규여성노조가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비정규철폐운동에 매진하려는 움직임을 이미 시작하였다. 자본은 노동자의 시간, 노동자의 신체, 노동자의 정신을 숙주로 삼아 오로지 자본 축적만을 기도하는 괴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동자들은 자기의 신체가 왜 훼손되는지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혼을 자본에 팔아넘기기기 시작했다. 노동이 자본에 기대고, 가본에 기생해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거꾸로 되었을까?

춘래 불 사 춘. 봄이 왔으나 봄이 온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노동과 노동 운동이 한 겨울에 아직도 갇혀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 용역업체, 비정규여성노조는 현재와 같은 해고사태가 원직복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구에서 대구지하철 청소노동자 원직복직 투쟁을 지지하는 모임이 지지연대세력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더불어, 이 기회에 민주노조 운동이 영혼을 자본에 팔아넘기지 않는 운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주자. 노동은 자본의 유령이 아니라 주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