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비행기를 타러 인천 공항에 왔다. 메솟에 함께 갈 한국의 이우 고등학생 20명과 선생님 두 분이 나보다 이십분 전에 와있었다. 이우학교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개 국가에 해외통합기행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보내왔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메솟이다. 나는 2009년 말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고 나서 2010년 이우학교 해외통합기행 메솟 팀에 통역자겸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 메솟은 버마와 태국 국경에 있다. 네모 상자는 태국 쪽에 있는 난민촌 지역을 표시하고 있다. |
해외에 다녀올 때마다 힘든 것 중 하나는 바로 인천 공항 출입국을 통과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에서 주는 난민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출입국 통과를 받을 때마다 직원들은 내 여행 증명서를 마치 다른 세상에 가지고 온 것처럼 보고 항상 나를 출입국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공항 직원이 내 여행증명서를 보고 나를 출입국 사무실에 보냈다. 여행증명서 안에 찍힌 작년 6월과 9월에 태국과 독일에 다녀온 도장들과 외국인등록증명서를 보여주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조건 사무실에 조사를 받고 나서야 통과가 되었다.
이러다보니 일반 사람들보다 출입국 통과 신청 시간이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려서 직원에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출입국 통과 허가를 위해 줄을 서지 않고 사무실에 직접 와서 하면 되는 건가요?” 라고 물어봤다니, 그건 안된단다!! 그래서 결국 예전처럼 한국에 돌아올 때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줄을 서고, 다시 직원이 나를 사무실에 가라고 하고, 또 사무실에 가고, 줄을 서서 입국 도장을 받고 한국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랜 시간이 걸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러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 한국 정부가 발행한 난민여행증명서. 이것이 있어도 늘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는 문제가 된다. |
메솟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치앙마이까지는 비행기를 타지만, 치앙마이에서 메솟까지는 6시간 내내 차를 타고 간다. 메솟 지역 인구는 약20만 명중 60%이상이 버마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미등록 이주자(불법 체류자) 자격으로 살아 있고, 일부 사람들은 고용허가 비자를 받고 살고 있다. 메솟에서 차로 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유엔과 태국정부가 운영한 버마 사람들이 사고 있는 난민촌들도 있다. 태국과 버마 국경지역에서 공식적인 난민촌 9개에 15만명의 버마 난민들이 살고 있다. 메솟는 버마의 수도인 양곤과 447km떨어져 있지만, 버마의 '케렌'주의 '먀와디'와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태국과 버마의 경제활동이 매솟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태국 땅인 메솟이지만 버마어를 많이 쓰고 있으니 나는 대화하기가 편하다.
이우학생들은 1월 22일에 일정을 잘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지만, 나는 25일 메솟에 온 하자 작업장 학생들과의 일정을 위해 메솟에 남았다. 하자 학생들은 벌써 네번째 메솟 교류 일정인데, 이번에는 1월 25일부터 2월 4일까지 메솟에서 지내다 버마 국내에 들어 가서 활동가들과 시민들을 만나기로 했다. 한국 청소년인 하자 작업장 학생들은 버마 국내에 들어 갈 수 있는데, 정치적인 난민인 나는 버마에 들어갈 수 없다. 버마 국내 상황을 집적 눈으로 확인하고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나고 온 하자 청소년들이 정말 애를 썼다고 생각했다. 몇 년 내에 메솟과 교류를 해온 한국 청소년들은 머지않아 버마 국내에서도 교류할 수 있은 기획이 생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영니우 고등학생들과의 대화 |
메솟에 머무는 동안 한국 학생들과 함께 메솟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지역에서 버마에 온 난민과 운동가들이 만든 단체(정치, 평화, 여성, 어론, 노동자, 학생, 등), 병원, 학교, 절, 교회 등이 있다. 특히 만난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60개 이상의 초․중․고등학교들에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였다. 한국에서 텔레비전과 책, 신문으로만 만날 수 있는 정치 탄압과 내정을 피해온 난민들, 버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운동가들 등을 집적 만나서 민주, 인권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야기만 하는 뿐이 아니라 난민촌에서 난민들과 생활을 하고, 불법촌에서 이주민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 같이 먹고, 배우고 있는 한국과 버마 청소년들을 보고 출신이 다르지만 관심과 고민이 아주 비슷하다고 알게 되었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라고 하는 청소년들에게 국제시민사회가 좀 더 관심이 가지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버마에 있을 때부터 함께 민주화운동을 해온 선, 후배들 중에 몇몇을 메솟에 다시 만났다. 그리고 고향 친구들도 반갑게 만났다. 사실 내가 말하는 고향 친구는 사람이 아니라 바나나 나무, 코코넛 나무 등이다^^. 어렸을 때 이런 나무들의 아래에서 신나게 뛰어 놀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또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망고, 두리안 같은 과일들을 배가 터질 만큼 먹었다. 한국 청소년들과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나면, 가끔 버마 선, 후배들의 집에 놀러가서 술 한잔하면서 88년 당시 민주화운동 이야기들, 메솟과 한국에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메솟 시장 |
재밌는 것은 한국에 살고 있은 나보타 메솟 사람들이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메솟 사람들은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외신 언론통해서 남북한 관계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영화를 보고 한국 배우 같이 생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같이 온 한국 사람들이 왜 영화에 나온 사람들처럼 예쁘지 않냐?" 라고 물으면 난처하다. 그러나 메솟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 영화를 통해서 배운 한국말 '안녕하세요', '사랑해요'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국 영화에 감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버마에서나 메솟에 있는 한국 회사에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다. 한국 청소년들이 1988년에 시작한 버마 민주화 운동이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한 것처럼 남북한 통일에 대해 궁금한 버마 사람들도 많다.
▲ 노래를 배우고 있는 한국-버마 청소년들 |
한국 학생들의 교류 일정에는 버마 민주화와 평화를 위한 투쟁하고 있는 단체들 방문, 초중학교들에 방문, 또래들끼리 하는 세미나, 토론회, 문화교류 등이 포함되었다. 난민촌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또래들이 함께했다. 한국과 버마 청소년들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 중에 초중학생 수업이 있다. 한국과 버마 청소년들이 섞여서 4개나 6개의 팀을 만들고, 팀별로 종이접기 수업, 그림 그리기 수업, 놀이 배우기 수업, 노래 배우기 수업 등을 준비해서 초중학생들의 교실에 간다. 초중학생들은 오빠, 누나들과 놀며 새로운 수업도 받을 수 있고, 학교선생님 밖에 만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버마 사람들에게 한국은 한국 기업과 영화 배우들이 있는 나라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와 오빠, 누나들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 청소년들과 3주내내 만나는 버마 학생은 약2천명 정도 된다.
버마 학생들을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눠볼 수 있다.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에 태어난 학생들, 불법촌(태국 지역에 체류 허가 없이 살고 있는 버마 사람들 마을)에 살고 있는 가족에 태어난 학생들, 그리고 부모님이 버마 분쟁지역에 있는데, 공부하고 싶어서 온 학생들이다. 난민촌의 경우에는 유엔과 태국정부가 보호하고 있어서 생활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대신에 이들은 난민촌 밖에 못가고 경제활동도 못한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난민촌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몇몇 외국인들이 여러 방법 통해서 난민촌 안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몇 명 없다. 그래서 난민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과 만나기 힘들었다. 매날 또 같은 반찬을 먹고, 또 같은 사람을 만나고, 또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같은 것만 보며 버스, 지하철, 피자 등이 어떻게 생기지 알지 못하고 있다.
▲ 메라(Mae La)난민촌의 모습 |
미등록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어떤 단어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불법촌이라고 썼다. 메솟에서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자) 단속을 매일 하고 있는데도 버마 사람들은 살아간다. 2003년 전이라면 학교 안까지 경찰과 출입국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단속한다고 했다. 선생님들부터 아이들까지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자)들이라서 낯선 사람들이 오다는 이야기만 들었으면 모두가 무조건 도망친다. 그러나 메솟 지역 버마 아이들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좀 좀 늘었다. 그 사람들의 덕분에 오늘 날에는 교복을 입고 있는 이유만으로 학교와 밖에 길에도 아이들에게 단속이 없다. 메솟 아이들에게는 교복이 학생 증명서와 체류등록증명서와 같은 의미가 있다. 그 아이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부모님들이 노동하면서 해결한다. 그 지역에 태국인 가족들도 있으니, 태국 지역 다른 동내와 같아서 학생들은 세상과 좀 만날 수 있다. 메솟에 pc방 같은 것들이 있어서 어떤 청소년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하고 있다.
메솟에 있는 학생, 선생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0년 당시에 메솟에서 초등학교가 필요해서 초등학교를 만들고, 2002년 후 중학교가 필요해서 중학교를 만들고, 2004년 후 고등하교가 필요해서 고등학교를 만들고, 지금 메솟 불법체류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만 초중고등학교는 60개가 넘어간다. 그 작은 학교들에서 200-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 학교들은 땅을 빌려서 대나무로 진 건물과 태국인들이 사는 집을 임대료해서 만든 학교들이다. 큰 학교 2개가 있는데 그 2개 학교에 공부하고 있는 학생은 약2,500명이다. 교실이 아니는 공간과 여러 가지 부족한 환경에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다. 한편에서는 다른 나라 땅에서 학교를 만들 수 있는 이주민들의 자신과 불법체류자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이해주는 태국 정부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초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정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후에는 공부에 관심이 떨어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고등학교 졸업해도 또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버마 사람들이 만든 학교들에 좀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인정해주는 국가가 없다. 고등학교 후 그 청소년들에게 피해할 수 없는 문제 하나는 학생이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자)가 되었다.
▲ 수업 마친 후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 |
불법촌과 난민촌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고등학교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어봤다. 각자의 관심 분야가 다양했다. “대학 가고 싶다!,” “컴퓨터, 영어, 디자인, 그림, 음악 등을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 “단체들에서 활동하고 싶다!” “돈 벌고 싶다!” 또한 대학에 하고 싶은 공부도 다양했다. 그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들이 각자가 다르지만 살고 싶은 곳이 또 같았다. 고향 버마에 돌아가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내집에 내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나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번 메솟 일정을 마친다.
* 마웅저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버마 8888 항쟁에 참가했고, 계속해서 버마 민주화 운동을 해오고 있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에 온 이후, 한국에서 정치적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버마 어린이와 함께 꾸는 꿈, 따비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http://www.withzaw.net/
* 방방곡곡99절절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기획 연재하고 있습니다. (www.glocalactivism.org)